“그만 떠나야 할 것 같아요.”
그녀에게 붙잡을 건 그 남자 하나뿐이었다.
끝이 보이는 관계에 지쳐가는 여자, 안수린.

“날 떠나려 했어. 그렇게 쉽게.”
어차피 이뤄질 수 없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그녀를 놓을 수 없는 남자, 강명후.

일단 네 다리부터 분질러 곁에 붙여 놔야 하겠지?
넌 오롯이 내 것이니까.
아무도 넘볼 수 없는 내가 가진 완전한 내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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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사람과 사랑을 좋아하는 행복한 망상가

출간작
사랑, 벗어날 수 없는
웨딩사진
내겐 너무 어린 아내
그들의 연애수칙
사랑에 길 잃다
파라다이스 외 다수

“그만 떠나야 할 것 같아요.”

“…….”
명후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아요.”
수린은 여전히 그의 눈을 외면했다.

“왜 여태 잘 지내다가?”

“외로워요.”

“외롭다고?”

“아저씨가 곁에 있어도 외롭고, 없어도 외로워요.”

“그래서?”

“아마도 혼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수린은 서둘러 옷을 입었다. 이별을 말하는 순간 서로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고 있기란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너무 오래 혼자 있었어요. 그만 혼자이고 싶어요.”

“날 떠나면 혼자가 아니고?”
그가 상체를 일으켰다. 수린은 등을 돌리고 그를 외면한 채 서서 어서 명후가 옷을 입어주기를 바랐다. 한참만에야 침대에서 일어난 명후가 주섬주섬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조금 시간이 흐른 후에 가정을 꾸릴 거예요. 마음이 정리되면 소개팅도 하고 맞선도 보고 어떤 식이든 중요하지 않아요. 남자를 만나 짧은 연애도 해보고 결혼도 하고 싶어요.”

“…….”

“내가 평범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범한 사람을 만나서 평범하게 가정을 꾸리고…… 아이도 낳고.”
등 뒤에서 이를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를 낳고 싶어요.”

이 아이를.
수린은 간신히 용기를 내어 그를 보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이렇게 명후의 시선을 피하면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말을 더듬지도 않게 되었고 오히려 담담해졌다.

“아저씬 제가 하고 싶은 건 뭐든 지원해주신다고 했지요? 전 결혼이 하고 싶어요. 가정도 꾸리고 싶어요.”

“정말 네가 하고 싶은 게 그거야?”
오히려 명후의 시선이 잠시 서성였다.

“네. 약속하셨으니, 이제 지키세요.”
명후가 수린의 말에 그녀를 물끄러미 보았다.

“알았어.”
한참만에야 그가 말했다. 침실을 뒤덮은 숨 막히는 정적을 부시는 소리를 내며 명후가 덤덤한 표정으로 옷을 마저 입었다.

“이번 주에 집을 비울게요.”
그가 옷을 모두 입은 것을 확인한 뒤 수린은 쇄기를 박았다.

“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이건 네 몫이야.”

“그간 화대를 정리해 주는 거예요?”
명후가 그녀를 잔뜩 노려보고는 이를 바득 갈았다. 수린은 애써 그런 그를 무시하고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말 마세요. 비울게요.”
명후가 한동안 그녀를 노려보았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
억겁의 시간과 같은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마침내 명후가 떨치듯 말했다. 슈트까지 챙겨 입은 그가 침실을 나가고 저 멀리서 현관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아랫도리에서 뜨거운 무엇이 쭈욱 흘러내렸다. 그의 정액임을 알아차린 수리는 그 자리에 무너져 버렸다. 이어 그녀의 울음이 침실을 온통 뒤덮었다.
이렇게 혼자 남겨질 것이 예정 되어 있었고 늘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그녀의 예상보다 더 간단한 일이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정말 이젠 끝인가.
정말 이대로?

끝은 그녀가 냈는데, 꼭 명후에게 버림을 받아 원치 않았음에도 그녀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벽이나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것만 같았을 때, 느끼던 바로 그 과호흡 증상이 왔다. 살기 위해 꺽꺽 숨을 몰아쉬며 남은 시간을 하루, 이틀, 사흘 지워나갔다. 얼마나 더 오래 혼자일지 따져보지 않았다. 앞으로 남은 모든 시간 혼자임을 굳이 되새길 필요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