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를 숙명처럼 사랑했던 남자 한서준.
그 사랑을 처참하게 부숴버린 여자 윤이수.
그리고 3년 후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

몇 번의 우연은 필연으로 이어지고 또다시 두 사람은 운명의 고리에 묶여버린다.
과연 이수는 서준의 죽어버린 회색빛 심장을 다시 일깨울 수 있을까.
서준은 이수의 서러운 상처를 보듬고 끝내 그녀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이제 두 사람을 태운 운명의 수레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 그만 가겠어요.”

뭔가 모를 불길함이 온몸을 엄습해오자 재빨리 말하고 이수는 몸을 돌렸다.

탁!

서준이 들고 있던 술잔이 거칠게 테이블위로 내려졌다. 놀란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돌아보자 그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느긋하게 말했다.

“앉아, 3년 만에 만났는데 환영인사는 해줘야지.”

“우리가 다정하게 앉아 환영인사를 나눌 처지는 아니잖아요.”

“그건 당신 입장이고. 난 분명 지난번에 경고했어. 다시는 내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라고.”

“그래서요? 원하는 게 뭔지 빙빙 돌리지 말고 얘기해요.”

“여자가 필요해. 지금 여기서 날 만족시켜 준다면 원하는 걸 다 주지.”

노골적으로 모욕감을 안겨주는 서준을 이수는 설핏 미소를 머금고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도전적으로 물었다.

“그럼, 당신 심장도 줄 건가요?”

그 말에 서준은 픽 웃고는 입매를 비틀었다. 그는 몹시 기분이 더럽다는 듯 인상을 팍 구기며 말했다.

“내 심장은 누구 때문에 3년 전에 죽어버렸어. 그러니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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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은

열정적이면서도 가슴 따뜻한 로맨스를 소망한다.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소망하는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믿으며 오늘도 열심히 글쓰기에 도전한다.
현재 네이버 카페 <오아시스를 찾다>에 거주 중

출간작

[불꽃유희]

벽시계를 흘끗 쳐다본 이수는 조용히 전화기를 들었다. 일곱 시 이후로 내내 통화가 안 되었기에 말없이 퇴근한다 해도 뭐라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다이얼을 눌렀다.

-네, 한서준입니다.

피곤한지 전화를 받는 음성이 잔뜩 가라앉아 있었다. 곧바로 들려온 서준의 음성에 잠시 당황한 이수는 몇 번 속눈썹을 깜빡이고 입을 열었다.

“저 윤 주임입니다. 지금 어디세요?”

-회사로 들어가는 중이야. 당신은?

수화기를 막고 이수는 잠시 창밖으로 눈길을 주었다. 어둠이 내려앉은 창밖엔 오렌지 빛 가로등만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저 먼저 퇴근했습니다.”

거짓말을 한 이수는 긴장한 듯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송할 거 없어. 시간이 늦었으니 퇴근하는 게 당연하지. 그 때문에 전화했나?

묻는 말투에서 귀찮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느껴지자 무안해진 이수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네. 그럼 일 보고 들어가세요.”

전화를 끊고 이수는 서둘러 책상을 정리했다. 황급히 가방을 들고 출입문 쪽으로 걸어가는데 문이 벌컥 열리며 서준이 들어왔다. 너무 놀란 이수는 그대로 굳어진 채 웅얼거렸다.

“상무님…….”

“뭐지? 지금 스무고개 놀이라도 하자는 건가?”

“전 그저 상무님께서 신경 쓰실까봐…….”

“확실히 신경 쓰이게 하는군. 내가 저승사자라도 돼?”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만 가 봐.”

차갑게 일갈한 그가 몸을 돌렸다.

“윤이수.”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고 출입문을 향해 걸어가는 이수를 서준이 불러 세웠다.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그가 느릿하게 물었다.

“저녁 먹었나?”

“아니요.”

이번에도 거짓말을 할 수 없어 이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가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그럼 함께 가지. 나도 아직 저녁을 못 먹었거든.”

“아, 아닙니다. 집에 가서 먹으면 됩니다.”

“그럴 수야 없지. 야근까지 하며 열심히 일했는데 저녁은 먹여 보내야지. 왜, 혹시 내가 잡아먹을까봐 걱정돼?”

웃음을 머금은 그의 눈동자가 네가 자초한 일이라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여기서 더 뻗대봐야 비웃음만 살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기가 치솟았다.

“절 잡아먹고 싶은 생각은 있으신가요?”

“당연하지. 생각 있으면 홀딱 벗고 덤벼보든지.”

“아마 구역질나서 금방 뱉어버릴 텐데요?”

“당신 몸에서 썩은 내가 난다는 걸 알긴 아는 모양이군. 그런데 뭐가 두려운 거지?”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저 입맛이 없을 뿐입니다. 하지만 상무님이 정 원하신다면 가죠. 뭐. 식. 사. 하. 러.”

마지막 말을 한 자 한 자 끊어내듯 말하고 이수가 몸을 돌렸다.

“브라보, 윤이수! 뻔뻔한 캐릭터가 환장하게 마음에 드는군. 앞으로도 계속 그 캐릭터를 고수하도록 해. 그래야 내가 덜 미안해질 테니까.”

출입문을 밀던 이수는 움찔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잠시 후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은 화사하기 그지없었다. 그런 말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그런 동정 받을 만큼 나약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