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열병 같은 그대여.
그대는 그것을 알고 계시오?
열병은 사람의 목숨을 앗을 만큼 지독하다는 것을.
그대, 나의 지독한 열병 같은 사람아.


역모에 휘말려 고초를 겪은 부모를 위해 남장을 한 채 춘화(春畵)를 그리던 윤영지.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그 일’은 그녀를 녹월국 정통 후계자인 혜에게 인도하고,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그녀는 결국 혜에게 자신의 정체를 발각당하는데!


“지금 나의 사랑하는 백성, 영소 작가를…….”
영지의 맑은 눈이 한순간 혜와 맞닥트리자, 그의 눈가에 개구진 반달이 스며들었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그 열릴 듯 말 듯한 안타까운 맘결에 대고 열렬히 꼬시는 중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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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여쁜 나의 작은 새야.
소중한 나의 작은 새야.
발간 해님 떠오르는 꿈결의 끝까지
나의 작은 새, 너의 꿈에는 내가 함께 있을 테야.


서로의 정체를 알고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 영지와 혜.
하지만 격변하는 정세는 그들의 사랑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운명의 그날이 다가오자, 영지는 녹월의 미래를 위해 큰 결심을 내리는데…….


“보고 싶었어. 그대를, 나는 미치도록 그리워하였어.”
혜는 영지의 손등을 자신의 더운 손으로 덮으며 물음을 꺼냈다.
“그대도……, 나를 그리워하였는지……. 나를 잊고 살지는 않았는지……. 그대의 마음도 나와 같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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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나

닉네임 석류알갱(clover3121@hanmail.net)

느리고 더디게 생각을 풀어나가는 거북이.
그러나 느리고 더뎌도 언젠가는 반환점을 돌아 목표에 도달하지 않겠는가?
도달할 목표만 있다면 거북이가 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조금은 엉뚱한 사람.
느릿느릿 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 글에 나만이 낼 수 있는
향기가 온전히 입혀질 거라고 생각하는 낙천주의자.
작가연합 ‘나무그늘아래(http://cafe.naver.com/underatree)’에서 활동 중.

▣ 출간작

해토머리
약손

“지금 나의 사랑하는 백성, 영소 작가를…….”

영지의 맑은 눈이 한순간 혜와 맞닥트리자, 그의 눈가에 개구진 반달이 스며들었다.

“내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그 열릴 듯 말 듯한 안타까운 맘결에 대고 열렬히 꼬시는 중이잖아.”

은근한 목소리로 말하던 사내는 여인의 하얀 이마에 입을 맞추기 시작하자 반듯한 입매에서 전해지는 더운 열기가 배꽃 같은 하얀 이마를 필두로 하여 서서히 그 자리를 옮겨갔다.

“으음…….”

꼴깍. 타액과 타액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서로의 입안으로 흘러들어 갔다. 가지런한 치아가 마치 격랑이 바위에 부딪치듯 날카롭게 엉겨들자 뱀의 똬리처럼 혀가 뒤섞이며 더운 입김이 공기 중으로 스멀스멀 번져 나갔다. 뽀얀 손끝에는 안타까운 힘이 들어갔다.

“영소 작가.”

바람결에 꺾이어 살랑살랑 날갯짓하듯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혜의 음성 또한 살랑살랑 흩날리다가 어느 순간 영지의 마음에 가만히 떨어졌다.

“이리 더운 입맞춤을 받아주면서……. 어찌하여 그대는 내게 그대의 맘속에서 솟는 말을 꺼내어 들려주지 않는가. 들려줄 듯하면서도 입안에서만 굴리는 그 말이 나는 너무나도 듣고 싶은데…….”

연모하는 이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아닌 그저 ‘좋아한다는 말’이 듣고 싶은 사내, 이혜는 마주 닿은 이마를 비비며 안타까운 숨을 흘려보냈다.

그 안타까운 숨결에 영지는 혜의 눈을 바라보며 입술을 꾹 닫았다.

‘좋아한다는 그 말. 꺼내버리면……, 걷잡을 수 없이 마마께 빠져들 것 같아서요. 매순간마다 다부지게 다잡는 이 맘. 어느 순간 속절없이 무너져버릴까, 그것이 두려워서요.’

여인의 윤기 나는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혜는 마음이 시큰하게 에여 오는 기분에 그녀의 등을 보드랍게 끌어안았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다 잃고 나락으로 떨어져 내렸던 이 여인의 고된 삶. 어떻게 걸어왔는지 미처 그 길의 방향을 모두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분명, 청천벽력같이 독하게 펼쳐진 삶의 길 첫머리에서 윤영지라는 여인은 마음에 칼날을 품고 쓰디쓴 독주의 피눈물을 샘물처럼 속절없이 쏟아내었을 것이다.

“칼날에 돋친 시퍼런 서슬, 조금은 무디게 해도 좋을 것인데…….”

영지라는 여인에 대한 감정이 점점 더 깊어질수록 마음을 비추는 그녀의 눈에 깃든 감정의 조각들이 혜의 가슴에는 참으로 서럽게 다가왔다.

“독주 같은 피눈물이 치솟는 그 맘속의 샘, 이제는 맑은 물만 솟아내면 좋을 것인데…….”

혜는 다정한 손길로 사랑하는 여인의 뒤통수를 매만지며 속삭였다.

“그리 못 하겠다면. 그 칼날, 그 독주. 모두 내게 전해주면 좋을 것인데……. 그대의 눈에 비친 그 마음이 너무나도 모질어서, 순간순간마다 이 내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아프거든.”

위로를 해주는 것 같은……. 이해의 손길을 내미는 것 같은……. 정겹고 따스하면서도 또한 아픔이 곳곳에 스며든 그의 음성에 영지는 왈칵 솟는 뜨거움을 참지 못하고 사내의 목을 끌어안으며 속삭이듯 고백했다.

“훗날의 상황이란 것이, 계획한 대로 기약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불꽃에 기름을 치듯 치솟는 뜨거움에 입안이 순식간에 메말라 왔다.

“하오니 훗날을 기약해달란 말도, 그 곁자리를 제게 영원히 내어달란 약조도 원하지 않겠습니다.”

영지의 음성에 혜는 그녀의 작은 어깨를 붙잡으며 눈을 맞추었다.

“다만, 마마께서 작금에 품으신 그 맘을 소중하게 여기신다면…….”

“…….”

“저도, 이 찰나. 제가 마마께 품은 이 불경한 맘을 소중하게 여기겠습니다.”

“영소 작가.”

영지를 부르는 그 목소리에 묻어나는 떨림을 도저히 감출 길이 없어, 혜는 손안에 붙잡은 동그랗고 마른 어깨를 더욱 힘주어 잡았다.

“마마께서 제게 품으신 그 마음이 모두 다 타버려 재가 될 때까지. 제가 마마께 품은 이 불경한 마음 또한 모두 다 타버려 재가 되어 흔적 없이 사라질 때까지. 훗날에 대해 아무것도 원치 않고 대신, 지금 이 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 수만 있다면……. 그 말, 들려드리겠습니다.”

새하얀 소금밭에 홀로 떨어트려진 힘없는 미물의 애잔한 움직임처럼 영지의 목소리는 애달프고, 아프고, 안타깝게 흩어졌다.

“좋아합니다. 저도, 마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