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하고 거만한데다 사람을 깔보는 눈빛의 소유자.
-제우 그룹 부사장 국기서.

몸빼 바지가 잘 어울리고 뽀글이 파마가 어색하지 않은 외계녀와의 만남.
죽어도 그런 여자와 사랑에 빠질 일 따윈 없을 거라 단언했건만,

어라?
이 여자, 볼수록 매력적이다.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입술은 왜 이렇게 뇌쇄적이지?
꿀꺽, 이 여자, 맛 좀 보고 싶어진다.



나름 야망도 있고 목표도 또렷한데 연애만 젬병인 모태솔로.
-된장명인 손녀딸 민들레.

그냥 딱 보는 순간 화보에서 쑥 걸어 나온 모델 같은 남자와의 만남.
현실감이 너무 없어서 그런 남자와는 죽었다 깨나도 연애 같은 건 못 할 줄 알았는데,
어쭈?
이 남자, 세상에 널리고 널린 여자 중 내가 좋단다.
떼어낼수록 매달리니, 병에 걸린 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런데 이 남자, 왜 이렇게 섹시한 거니? 만져 보고 싶어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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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향捿響 (청휘淸輝)

2003. 9월 첫 종이책 출간.
만화가 김종석과 동거 중.
현재 그 남자와 웹툰 준비 중.


-고전 story
<무한련>, <쾌걸황후>, <왕릉후>, <붉은낙인>, <칠성쾌담>
<폭군>, <푸른 의관의 그녀>, <야수의 포효>, <무소화>
<화무>

-현대 story
<내 안에 흐르는 너>, <홀리다, 미혹>, <탐닉>
<골든 레이디>, <매혹적인 그들, 블랙>, <팥쥐에게도 서른이 온다>
<몸서리>, <명가의 작업실>, <오픈하트>, <블루힐>,
<꽃을 탐한 재규어>외 다수.

“헤어스타일은 대체 누가 결정해?”

“동네 미용실 아줌마가요.”

“그거 네 머리 아니야?”

“제 머리죠.”

“그런데 왜 남이 결정해?”

“그분이 전문가니까.”

“틀렸어. 안 어울려. 난 샤워하고 올 테니까, 기주랑 먼저 먹고 있어.”

들레는 난데없이 외모를 평가받고 멘탈이 붕괴되었다. 멍한 얼굴로 한동안 서 있다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서울로 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누가 외모에 대해 가타부타 말을 해 주진 않았다. 촌스러울 수 있다는 건 알지만, 집안 형편에 맞게 나름 수수하지만 잘 입고 다니는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누구도 해 주지 않던 말을 기서가 가차 없이 해 버리니 심장에 바람구멍이 뻥 뚫려 버린 기분이었다.

‘와아, 저 돌직구 직설!’
해도 너무하는 거 아닌가? 언제 외모 평가해 달라고 했나? 지는 또 얼마나 잘나서! 허, 참!
들레가 잔뜩 노기가 서린 쌍심지 눈으로 식탁 앞에 앉았다. 기주가 웃으며 숟가락을 들더니 반찬을 이것저것 떠먹어 보고는 엄지를 세웠다.

“너무 맛있어요. 손맛이 정말 좋아요.”
그나마 폭발 직전이던 분노 게이지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다 기주 덕분이었다.

“입에 맞는다니 다행이에요.”
웃음기를 띠고 기주를 바라보는데 기주의 등 뒤로 옷을 갈아입은 기서가 나타났다. 들레도 눈동자에 스캐너를 장착하고 기서의 옷차림을 위아래로 훑었다.

좌절!
블랙 브이네크라인 면 티에 슬림한 네이비 노턱치노팬츠를 입었다. 지적을 하려고 해도 할 만한 대목이 안 보인다. 갑자기 급격히 우울해졌다. 헤어스타일 또한 짧은데다 아무렇게나 매만진 듯 자연스러운 모습이 그를 더욱 매력적으로 돋보이게 하니, 그는 그저 외모 자체가 스타일의 완성인 듯 완벽한 모습이었다.

‘내 높은 자존감에 바이러스가 침투했어.’
기서가 들레의 맞은편에 앉더니 식사를 시작하고, 5분쯤 뒤에 한마디 했다.

“무난하게 요리는 하는군.”
너한테 평가받는 게 뭐라고! 하나도 안 중요해. 그게 뭐! 기뻐해야 할 일이야?
저절로 눈매가 확 치켜 올라갔다. 도깨비가 와서 형님 할 눈매였으나, 기서는 그녀가 그러든지 말든지 별로 관심도 없어 보였다.

“점심 땐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오지 마.”
너 땜에 오는 게 아니거든. 들레는 기서를 무시하고 바로 기주를 바라봤다.

“누가 오나요?”

“날 돌봐줄 전문가 선생이 하나 와요. 다방면으로 아주 똑똑한 분이죠.”

“아아,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저도 인터넷으로 조그맣게 사업을 하고 있어서 좀 바쁘거든요.”
나를 무시하지 말라고. 나름 사장이라고!
자랑삼아 꺼낸 말에 기서가 흥미를 보였다.

“무슨 사업?”

“된장, 고추장, 간장 등 장류를 소비자들에게 직거래 방식으로 판매하고 있어요.”

“직거래? 너희 집에서 된장을 직접 담그나?”

“네, 할머니 손맛이 워낙 좋고, 6대째 내려오는 장맛이라 이 동네 사람들도 죄다 우리 집에서 된장이나 각종 장을 얻어 가세요. 할머니는 워낙 인심이 좋으셔서 남들에게 주는 것을 하나도 안 아까워하시고요.”
물론 동네 사람들이 거저 가져가는 건 아니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노인들만 있는 집이다보니 동네 사람들이 직접 농사지은 각종 야채나 쌀, 과일 등을 무료로 대주고 있었다. 결국 조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이 상부상조하면서 살아가는 모양새였다.

“그럼 이 된장찌개의 된장도 너희 할머니 작품이고?”

“네, 저랑 엄마가 전수받아서 같이 일을 돕고 있어요.”

“네가 전수를 받아?”
기서가 이상하리만치 꼬치꼬치 캐물으며 관심을 보였다. 들레는 한쪽 눈썹을 치켜세우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그를 바라봤다.

“왜요? 맛이 그렇게 그냥 그래요?”
기서는 사실 이렇게 맛난 된장찌개는 처음 먹어 봤다. 그렇지만 들레가 기고만장해 하는 게 별로 보고 싶지 않아서 그저 그렇다는 식으로 대충 얼버무렸다. 그런데 할머니 손맛을 직접 전수받아 가며 배웠다고 한다면 얘긴 다르다.

“아니, 된장 맛은 일품이야.”
들레는 자부심이 깃든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당연하죠. 인터넷으로 주문도 상당하고 꽤 팔리는 편이에요. 나중에 서울에 우리 장을 직접 배송해서 판매할 수 있는 가게를 오픈하는 게 저의 야망이에요. 그래서 학교에서도 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는 거구요.”
기서는 아주 흥미로운 눈빛으로 들레를 바라봤다. 요것 봐라. 상상도 못 한 곳에서 기막힌 인연과 조우한 것이다.
된장류를 만들어 전국은 물론이고 해외까지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던가. 바로 국기서다. 기서가 하는 여러 사업 중 가장 핵심 아이템이고, 더 큰 비전을 채워 줄 중대한 사업이 바로 된장류였다. 그런데 우연하게도 된장을 만드는 여자와 맞닥뜨렸다. 이런 좋은 기회를 그냥 날릴 수는 없지.

“너, 나한테 은혜 갚은 제비 한다고 했지?”
들레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가 시선을 내리뜨고 불만 가득한 얼굴로 입술을 툭 내밀었다.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답이 고스란히 적힌 얼굴이었지만, 기서는 무시했다.

“한 번에 은혜 갚게 해 줄게.”
들레가 마뜩찮은 얼굴로 고개를 들더니 그를 바라봤다. 그래도 궁금하긴 한지, 유난스럽게 검은 눈동자에 자르르 윤기가 흘렀다. 마노석처럼 예쁜 눈을 가진 여자였다.

“너희 장독 좀 보여 줘.”

“네?”

“내용물도 전부 볼 수 있게 해 줘. 그리고 할머니를 뵙고 싶은데, 가능하겠어?”

“그야 어렵진 않지만…….”

“나도 된장류, 특히 우리나라의 음식에 굉장히 관심이 많아서 사업을 준비 중이야. 그래
서 네가 한다는 그 사업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서 그래.”

기주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형을 쳐다봤다. 지금 뭐라는 거지? 한국 일류 기업의 부사장인 주제에 마치 사업에 갓 입문한 사람처럼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저러다 걸리면 무슨 망신을 당하려고 저러나 싶어 심장이 다 쫄깃해졌다.
기주가 손을 식탁 아래로 내리고 기서의 무릎을 툭 쳤다. 그러자 기서가 시선을 돌려 기주를 보더니 씩 웃는 게 아닌가. 묘안이라도 떠오른 듯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뭔가 대단한 목표가 생기면 늘 저렇게 얼굴에 생기가 떠오르는 사람이 기서였다.

“할머니한테 말씀은 드려 볼게요.”
기서가 휴대폰을 꺼내더니 물었다.

“번호가 뭐야?”

“제 번호가…….”
들레가 더듬거리며 번호를 불러 줬다.

“내 번호 끝자리가 1208이야. 이 번호 뜨면 바로 받아.”

“네…….”
뭔가 좀 엮인 듯한 느낌에 뒷목이 뻣뻣해졌다. 들레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른 채 알 수 없는 불길한 예감에 연신 기서만 흘끔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