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사고는 예은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 꿈도, 희망도, 사랑까지도....

라면 하나조차 제 손으로 끓이지 못하는 삶은 이미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고통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만난 옛 약혼자에 의해 그것조차 불가능했다.

“나? 119구급대원. 내 본분은 환자의 생명을 지키는 거야. 넌 영양실조에 심각한 탈수를 앓고 있는 자살 기도 환자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약혼녀가 몇 년 뒤 현성의 눈앞에 우연히 나타났다. 그것도 심각한 장애를 가진 채로. 하지만 장애는 그녀의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도 갉아먹고 있었다.

“동정이든, 참견이든 다 필요 없어요. 현성 씨 도움 따윈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요. 당장 내 앞에서 사라져요.”

차갑게 현성을 밀어내기만 하는 예은의 사랑과 그런 그녀를 세상 밖으로 이끌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현성의 사랑.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가슴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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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애진 지음

Email: aejin4044@yahoo.co.kr
활자로 된 것을 보면 정신 못 차리는 활자중독증 환자.
대범한 A형이라는 말을 많이 듣지만 실은 지극히 소심한 A형으로
역사와 현대를 넘나들며 가슴 따뜻한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을 가진 여자.
‘서향瑞香’으로 제12회 신영사이버문학상 수상.

출간작
「서향瑞香」(전2권)
「하얀 울타리」
「기억에 묻다」
「일월애日月愛」(전2권)등

“부탁할게요. 나 열심히 살게. 그러니까…… 앞으로는 절대 찾아오지 말아요.”

하고 싶은 말은 다 마쳤다는 듯 예은이 일어서자 현성은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거칠게 붙들어 제자리에 앉혔다.

“한예은! 잘 들어. 나 아직 너 사랑해. 그래서 남은 생도 너랑 함께할 거야.”

“…….”

왜 자꾸 자신에게 희망이 남았다고 말하는 것일까. 그의 의지가 단호하면 할수록 자신의 가슴을 더 아프게 한다는 것을 그는 정말 모르는 것일까.

“누구 마음대로요? 내가 싫다는데 현성 씨 혼자요?”

“우리 좀 솔직해지자. 너도 나 사랑하잖아.”

현성은 진실을 외면하려고 하는 그녀 때문에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사랑……. 후훗.”

그녀가 실소를 터트리자 현성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내가 얘기하지 않았나요? 사고가 나던 날 내 사랑도 끝났다고. 하지만 아직 현성 씨의 사랑은 끝나지 않았나보군요.”

예은은 귀로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가 정녕 자신의 목소리인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를 단념시키려면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치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쩌죠? 그 사랑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요. 그런 걸 사랑이라고 하나요? 그런 건 사랑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동정은 다른데다 나눠 주고 나를 찾아오는 짓은 그만둬줘요.”

예은은 여전히 자신의 어깨를 꽉 붙들어 누르고 있는 현성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