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날 버릴 수 있는 기회는 그때가 마지막이었어.”
사랑에 버림받았던 남자 고찬영.

“그럼 뭘 원해? 여기서 무릎이라도 꿇을까?”
사랑을 버렸던 여자 이연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순간부터 돌부처처럼 굳어 있는 그림자. 연우가 분명했다.
내 친구였던 이연우. 내 아내였던 이연우. 내 첫사랑.
찬영은 연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손을 내밀었다.
피할 줄 알았던 연우가 머뭇거림도 없이 그의 손을 잡았다.

“오랜만이다.”

“……그래.”

“잘 지내지?”

“응, 꽤 잘 지내.”

풋풋한 숙녀에서 어엿한 여자가 되어 버린 연우의 담담한 미소에
찬영은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그 따스함에 긴장한 근육들이 비명을 질러 댔다.
10년 만의 해후가 미치게 좋아서.








단발까까에서는 발행일기준 2개월內 로맨스, 일반소설,신간을 정가30%에 매입 합니다.
( 만화, 야오이만화소설은 제외)

서정윤

■ 점점 사라져 가는 봄에 태어난 사람.
1년 365일 목표가 늘 다이어트인 사람.
해피엔딩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

■ 출간 예정작
『풀 베팅』

■ ebook 출간작
『풀 베팅』
『차오르다』
『그림자의 낙인』
『파국』
『은밀한 거래』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룸 키를 받아 드는 찬영을 지켜보는 연우는 말이 없었다. 이게 꿈인 것만 같았다. 하도 힘을 주어 손목이 욱신거리는데 그것마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이러지 말라고 소리라도 질러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놔 달라고 손이라도 뿌리쳐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 찬영 앞에서 한순간에 바보가 되어 버렸다.

엘리베이터 버튼을 힘주어 누르는 기다란 손가락. 찬영의 손가락에 끼인 반지가 눈에 들어왔다. 문양 하나 없는, 한 돈도 되지 않는 가벼운 링 반지. 눈에 익은 자신들의 결혼반지에 연우의 눈 속으로 통증이 습격했다. 그게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마지막 관문이라고 생각해.”

문을 열기 직전 찬영이 속삭였다. 마지막이란 말이 주는 상실감. 그들에게 남아 있던 것들을 끊어 내는 행위. 어설픈 이별을 마감 짓는 행위.

스르륵 눈을 감는 연우의 몸이 벽으로 거칠게 밀쳐졌다. 얼굴이 뜨거운 두 손으로 감싸인 채로 입술이 막혀 버렸다. 연우는 밀어붙이는 찬영을 말없이 받아들였다. 이게 미친 짓인 줄 안다. 10년 만에 만나 고작 찾은 곳이 호텔방이라니. 미친 사람들처럼 불붙은 욕정으로 허덕이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당연하게 느껴지다니.
조급하게 단추를 풀어헤치는 찬영의 손길에 눈가가 뜨거워졌다. 맨살을 쓰다듬는 사내의 손길에 바르르 전율하는 몸이 제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찬영은 이미 이성을 잃었다. 정류장에서부터 그랬다. 순순히 따라오지 않으면 들쳐 메고라도 오늘 연우를 놓지 않을 셈이었다.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벼르고 별렀었는데. 안 놔, 아니 못 놔.

연우의 입술에서 입술을 떼지 않은 채로 단추를 풀었다. 자꾸만 격렬해지는 손놀림에 옷가지들이 찢길 것만 같다. 헤집은 블라우스 사이 드러난 브래지어를 밀어 올리고 젖가슴을 손으로 거머쥐었다. 물풍선처럼 탱탱하고 보드라운 살덩이를 거머쥐고 터트릴 듯 주물럭거렸다. 들어 올린 스커트 아래로 손을 밀어 넣어 탱탱한 엉덩이를 힘껏 그러쥐었다. 행여 거부할세라 그녀의 다리 사이에 허벅지를 끼워 꼼짝도 못 하게 만들어 버렸다.
배려는 없었고 잠식만 있었다. 무자비한 침범뿐이었다.

닥치는 대로 물고 깨물고 탐닉하던 입술에 찝찔함이 느껴졌다. 엉겨 붙은 두 개의 입술 사이로 스미는 짠맛에 포악스러울 정도로 몰아붙이던 몸짓이 스톱되었다.

“…….”

눈을 뜨자 감긴 연우의 눈가로 흐르는 눈물이 보였다. 파르르 떨리는 턱이 눈에 들어오고 숨죽인 흐느낌이 들려왔다. 순간 정신이 확 돌아왔다.

흐트러진 옷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얀 속살들. 몸을 파는 거리의 여자도 그런 식으로 막 대하지는 않았을 텐데 아무래도 정신이 나가 버렸나 보다.

“빌어먹을.”

거칠게 몸을 떼어 내고 찬영은 방을 가로질러 창가로 향했다. 분출하지 못한 욕망에 거친 숨을 몰아쉬며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탁 내려쳤다.

일부러 울리려 했던 건 아니다. 그냥 이성을 잃고 돌아 버렸다. 내가 나를 놔 버렸다.

“미안하다.”
쇳소리가 흘러나왔다. 거기엔 차마 감출 수 없는 욕망이 실려 있었다.

“싫으면…… 돌아가도 돼.”
거짓말.

연우는 씨근덕거리며 자신을 바라보지 않는 찬영의 뒷모습에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쳤다. 왜 울고 있는지, 언제부터 울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좋은 거니? 아니. 싫은 거니? 아니, 아니. 그럼 뭔데? 모르겠어. 모르겠어. 나도 모르겠어. 갈등이 마음속에서 소리쳤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여전히 등을 보이고 있는 그가 싫다는 거다. 날 봐 줘, 찬영아. 내게 등을 보이지 말아 줘.

“정말 가도 되는 거니?”

바르르 떨리는 물음에 찬영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응, 이라는 그 간단한 한마디면 그녀는 떠날 것이다. 매정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릴 거다. 예전에도 갔으니 이번엔 더 쉬울 것이다.

“가기만 해 봐.”

“가 버리라며.”

“어디 갈 테면 가 봐.”

“…….”

돌아본 연우의 모습은 몹시도 퇴폐적이었다. 열린 블라우스 사이로 드러난 어깨와 브래지어 사이로 반쯤 튀어나온 가슴. 허리까지 말려 올라간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찢긴 스타킹. 지워진 립스틱 대신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붉게 부풀어 오른 입술이 지나칠 만큼 선정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예뻤구나. 연우 네가 이렇게 예쁜 여자였구나.

“네가 원한 게 정말 이런 거였니?”

“그래, 재미있잖아? 10년 만에 만난 부부가 할 게 또 뭐가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