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나에 대해 무어라 떠들건, 더 이상은 상관없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나라가 망하든 말든,
십여 년을 살아온 황궁이 화마의 아가리 속에 처박혀 잿더미가 되든 말든
그딴 것들, 내 알 바 아니었다.

“황궁 안의 모든 이들이, 나를 업신여겨도 괜찮아. 너만 그리 여기지 않으면 상관없어.”
“…….”
“내게는 그거면 됐어. 너만 있으면 나는 괜찮아. 전부 다.”

내게는 오직 단규, 그만이 중했다. 그를 잃느니 차라리 죽으리라.
내게서 그를 빼앗아 가려는 뉘가 있다면, 죽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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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엽미

개인 블로그로 둥지를 옮기기 전까지, 약 일 년간 공개 연재를 했었던 사이트를 오래간만에 쭉 훑어보니 첫 화를 쓴 것이 2014년 5월 29일이었습니다.
초고를 완성하고, 다듬고, 책으로 엮기까지 이 년이 걸렸네요. 그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다만 이제 바라는 것은 전작들에 비해 오래 걸린 만큼 조금 더 나은 이야기이기를.

“내가 천해 보였구나.”
눈앞이 다시 흐려졌다

“천하고 음탕한, 값싼 계집으로 보였어. 으흑…….”

“그럴 것 같습니까.”
다시 침상에 엎어지려 하던 나를, 내 어깨를 큼지막한 손이 붙들었다. 곁에 다가온 단규를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아원을 그리 여기지 않습니다.”
축축한 내 뺨을 닦는 단규의 손이 차가웠다. 오랫동안 바깥에 있다 들어온 것처럼.

“밖에 있다 들어온 게야?”

“예.”
단규의 표정은 여전히 좋다 할 수 없거늘 그가 밖에 있었다는 사실, 그가 내 눈가를 닦아주는 행위로 말미암아 안도감을 느꼈다. 더군다나 날 더럽게 여겨 차가운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이 아니라잖은가.
이제는 다른 의미로 눈에서 눈물방울이 흘러내렸다.

“흐으윽, 나를 음탕하고 지저분하다 생각한 것이 아니면, 허면 표정이 어찌 그러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지만 그렇기에 나는 외려 트집을 잡아댔다.

“좋지 못하잖아. 속으로 내 욕을 한 게 아니면 어찌 그러냐고. 어흐흑…….”
간접적으로 웃어달라, 잘 대해 달라 투정을 부리는 내게 단규는 그러나 한참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화가 난 것도 같고 속상한 것도 같은, 복잡한 얼굴로 볼품없이 우는 나를 빤히 내려다볼 뿐이었다.
거 봐. 아니긴 무어가 아니야. 나란 년을 창기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생각했으면서. 침묵에 지쳐 좋지 못한 결론을 내린 순간, 저음이 날아들었다.

“아원이 황태손에게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스스로를 위해서도, 그리고…….”
다시 침묵.
어찌 말을 하다 멈춰. 나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또 뉘를 위해 황태손에게 휘둘리지 않았으면 싶다는 거야.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저러하길 원한다는 자체가 지헌과 붙어 있는 내 꼴이 불결해 보인다는 뜻인 거잖아. 겨우 그쳤나 싶던 눈물바람을 난 또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가 더러워 보였다는 거잖아.”

“…….”

“지헌과 함께 있는 모습이 흉하니 떨어지라는 말뜻 아니냐고, 그게. 흑.”
허면 나보고 무얼 어쩌라고. 지헌 그놈이 내가 저를 거부하면 널 해하겠다, 겁박하는데 얌전히 굴지 않으면 무얼 어찌하느냔 말이야.
잠시, 실은 황태손이 너를 들먹여 나에게 협박을 가했다. 잠자리에서 저의 맘에 들지 않게 굴면 내가 유일하게 아끼는 환관인 널 죽일 거라 했다. 앞으로도 그럴 테니 나도 싫지만 어쩔 수가 없다. 그러니까 날 너무 값싸게 보지 마라, 라고 사실을 토설해 버릴까 싶은 고민이 들었다. 하지만.
어찌 말하랴. 그랬다간 단규가 불편해할 텐데. 부담과 죄책감을 느낄지 모르는데. 아니, 분명 순한 환관은 사실을 알면 기분이 좋지 못할 터였다.

“제가 싫습니다.”
결국 아무 말도 못하고 소맷부리로 눈가나 닦아내던 나는 고개를 쳐들었다.

“무어?”

“제가 싫습니다.”

“…….”

“아원이 변변찮은 자에게 휘둘리고, 그래서 눈물 흘리는 것이 싫습니다.”

“…….”

“그만 그치십시오.”
진즉부터 눈에 고여 있던 눈물이 한 박자 늦게 흘러내렸을 뿐인데 단규는 내가 또 울었다 생각한 듯, 선이 뚜렷한 얼굴에 속상한 기색을 내비치었다. 청하지도 않았건만 자진해서 침상에 앉은 그의 커다란 손이 내 뺨 위를 부지런히 오고갔다.
단규가 날 걱정한다. 날 이름으로 부르고 엉망진창일 내 얼굴을 정리해 준다……. 여러모로 기분이 좋아져 나는 얌전한 척, 꼼짝하지 않았다. 잡담 한마디 없이 공손히 눈을 내리뜬 상태로 뺨만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