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여자와 침대 위에서 이러고 있으면서도…….
금욕할 남자로 보여?”

누가 들어도 이해는 하지만 공감은 할 수 없는 사정으로
가사도우미의 길을 걷게 된 아연.
언제나 우울했던 그녀의 인생에 지나치게 매력적이며 섹시한 남자,
사진작가 성희가 집주인으로 등장한 순간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
색기 발랄 그들의 유쾌하고도 야한 이야기, ‘가정부와 나’!

“내가 덮친 것도 아니고, 너도 이것저것 다 해놓고서 왜 나한테
뭐라고 하는 건데?”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요? 난 처음이었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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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커피 중독자.
고기 중독자.

▣ 출간작
A와 B의 사정(ebook)
이상한 나라의 가정부

▣ 출간예정작
문을 열고 들어서다 - 여름

아연은 눈을 반짝 떴다.

온몸에 돌돌 감겨 있는 이불이 낯설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에,
익숙한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익숙하지만, 지금 보여서는 안 되는 천장이었다.
매일매일 보지만, 자다가 눈을 떴을 때 보여서는 안 되는 천장이었다.

“으음…….”

그때 옆에서 뭔가가 출렁거렸다. 으음, 하고 신음소리도 냈다.

감히 옆을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아연은 그대로 얼음이 되었다.
아니, 얼음이 되고 싶었다.

오, 맙소사! 이것은 현실이 아니다. 현실일 수가 없다. 현실이어서는 안 된다.
뭐가 어쨌든 이런 식으로 첫 경험이라니!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다니!

성희 쪽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아연은 침대에서 내려왔다.
순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숙취다. 어제 도대체 얼마나 마셨더라?

옷, 내 옷 어디 있지?

아연의 옷은 물론 성희의 가운과 함께 바닥에 널려 있었다.

아연은 잠시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는 청바지와 셔츠, 양말,
그리고 속옷들을 한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렇게 시선을 옮기는데 성희의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들고 다녀서일까? 반듯한 어깨에는 보기 좋게
잔근육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견갑골을 따라 내려오는 등허리, 군살 하나 없이
탄탄한 근육이 보기 좋았다.

아니,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소스라치게 놀라 아연이 고개를 마구 흔들었다. 자고 일어났더니 왔다갔다하는 게
아니라 가만 앉아있는데도 왔다갔다한다. 그만하자. 그만하자. 그만하자.

그러나 등허리까지 보았으면 자연스럽게 그 아래도 보이는 법이다.
엉덩이가……, 예쁘다.

현재의 상황을 잊은 채 아연은 성희의 엉덩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남자의 엉덩이를 이렇게 리얼하게 본 건 처음이었다. 승연의 엉덩이도
애기 때 보고 못 봤으니, 그녀가 남자 엉덩이를 본 일은 별로 없는 셈이다.

그런데 남자 엉덩이가 원래 이렇게 예쁜 건가? 좌우 대칭이 완벽했고,
근육이 딱 잡혀 있어 그냥 봐도 탄력이 통통 느껴졌다. 일단 남자가
군살 하나 없이 허리선에서 엉덩이로 이어지는 라인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만 구경하고 물 좀 줘.”

그만 구경하고 물……, 으아아아악!

갑작스럽게, 그러나 정말이지 태연하게 말을 거는 성희의 목소리에
기겁한 아연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나다 털썩 주저앉았다.
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벌린 입에서는 소리가 나오지 않고,
‘허억! 허억!’ 하는 괴이한 신음소리만 흘러나왔다.

“뭐 하고 있어? 물 달라니까.”

성희는 오만상을 다 찌푸리며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다가 다시 얼굴을
시트에 묻었다. 아마 그도 지금 아연이 느끼고 있는 두통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 이래서 술 섞어 마시면 안 되는데. 특히 와인과 맥주는 섞어 마시면
쥐약이라는 거 알았는데…….”

“저, 저기요.”

몸에 감고 있던 시트를 더욱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아연이 말을 더듬었다.

“어, 어, 어제 우리……. 그러니까 우리 말이에요.”

“어제 우리……. 뭐?”

“어, 그……. 그……. 아무 일 없었죠?”

뭘 바라고 한 질문인지는 솔직히 아연도 알 수 없었다. 일단 아연의
머릿속에 저 어깨가, 저 어깨에 감겨 있는 자신의 손이 선명하게 기억나지 않는가?

“기억 안 나?”

눈을 감고 있던 성희가 눈을 뜨고 생뚱맞다는 듯이 아연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뚱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내가……. 여자와 침대 위에서 이러고 있으면서도 금욕할 남자로 보여?”

아니, 절대로 그렇게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