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아저씨를 자처한 아버지 덕분에
팔자에도 없는 다 큰 처녀를 떠맡게 된 남자 최현후.

“그런 말 있잖습니까, 왜…….”
[무슨 말?]
문장 하나가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그러니까……. 저는 남자고, 쟤는 여자고. 그러니까 왜 그런 말 있잖습니까?”
역시 입 안에서 뱅뱅 돌기만 한다.
[그런 말 없다.]

그러다가 그 문장이 너무 늦게 기억났다.
이미 사랑에 빠진 후에.
“그렇지, 남녀칠세부동석.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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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에로틱한 망상을 그리는 여자.

출간작
산타클로스는 죽었다.
특별수업
초연
사라진 마음
하얀 나비
비와 롤러코스터
숨바꼭질
태양의 신부
래그타임

“미역국은 없어.”
왜 여기냐고 의아한 눈으로 현후를 보자, 그가 동문서답을 했다.

“스테이크가 먹고 싶더라고. 사실 주문하는 김에 네 것까지 했어.”
이것으로 모든 것이 다 설명이 되었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잠깐.”
차에서 내리려는 은비를 불러 세웠다. 고개를 돌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보았다. 현후가 뒷좌석으로 몸을 틀어 돌렸다.

“장미.”
자세를 바로 잡은 현후가 커다란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 한 팔에도 다 안을 수 없는 빨간 장미가 빽빽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향수.”
이번에는 쇼핑백이 그녀의 무릎위에 안착했다. 에스쁘아 드림이었다. 그녀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향수를 어떻게 알았을까? 의아함도 잠시.

“그리고 첫키스.”
은비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현후의 입술은 생각보다 더 보드라웠다. 심장이 터져나갈 듯 비명을 질렀다. 입술을 뗀 그가 은비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보고 싶지 않아 눈을 감았다. 그럼에도 온 얼굴로 그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좀처럼 멀어지지 않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은비는 그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를 이렇게 가까이, 이렇게 자세히 그를 본 적이 없었다.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현후의 넓은 이마에는 기품마저 느껴졌고 날렵하지만 가볍지 않은 콧날과 혈색이 좋은 입술, 그리고 탄탄한 턱이 그의 용모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그는 단지 성년식을 해주고 싶은 거다.
후견인 아닌 후견인으로서의 의무에 지나지 않다.
은비는 속으로 계속 주문을 외웠다. 현후의 배려를 두고 감정을 논하며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난공불락의 벽 앞에서 느끼는 깊은 낭패감에 은비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쓸쓸하기만 했다. 알고 있었지만 은비의 머리는 여전히 퇴각을 명령하지 않았다. 아니, 머리는 명령을 하는데 가슴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 옳았다.
매력적인 그의 얼굴만 봐도 그녀의 입에서는 간질간질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그만큼 중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