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파트너 할까?

보통 이런 말을 듣게 되면 남자의 얼굴에 침을 뱉거나 뺨을 날려야 할 테지만 그의 요술방망이의 위력을 확인했고 ‘응응’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는 32살 처녀에겐 반가운 제안이었다. 결혼은 생각이 없고 연애를 할 때도 설레지 않았던 그녀의 얼어붙은 마음이 섹스 파트너라는 제안에는 두근두근 뛴다.

빗방울이 떨어지는 저녁, 차갑고 습습하지만 거실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넓은 가슴의 남자와 키스를 하고 있으면…… 정착하지 못하고 불안하게 떠도는 32살의 외로운 영혼도 잠잠해진다.

비공식 섹스 파트너에서 공식 섹스 파트너가 되어가는 과정의 연인은 빗소리를 안주 삼아 오늘도 취한다.

진재희 [순정적 관계], [오, 마이 남편] 출간

의뢰인과 사랑에 빠지는 짓은 안 하겠다는 불굴의 의지? 그런 건 단번에 꺾어버릴 수 있었다. 반드시 꺾어야 했다. 처음으로 여자를 정복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 만남. 아무나와 해도 괜찮을 것 같았던 결혼에 열을 올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는 그녀에 대해 집중 탐구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예의를 갖춰서 그녀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 그리고 아주 후한 점수를 얻어서 결혼에 골인한다! 이것이 바로 그가 세운 기초적인 계획이었다. 거리를 두고 행동한다. 절대로 감정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그는 엘리베이터의 열림 버튼을 누르며 그녀가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렸다. 심장도 죽은 듯이 뛰었다. 그녀의 생각을 방해하면 안 되는 것처럼 숨소리도 매우 조심스럽게 내쉬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생각을 정리한 듯 미소 진 시향이 스프링노트를 덮었다. 그리고 숙였던 고개를 들다 그만 깜짝 놀랐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마음처럼. 그녀는 버튼을 누르고 있는 손의 주인을 확인하려고 몸을 돌렸다. “이후인 씨…….”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합니까?” “이후인 씨의 생각이요.” 의외의 대답에 그는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것도 잠시. 그녀의 말간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나른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기분 좋군. 내 생각을 다 하고. 그래서 결론은 어떤가? 좀 괜찮겠어?” “꿈도 크시네요. 결론을 말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근데 내려가실 건가요?” 시향은 버튼에서 손을 떼지 않은 후인에게 물었다. 마치 그녀가 길목을 막고 선 기분이 들어서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묘한 대꾸를 했다. “배웅하는 걸 깜빡해서 말이야.” 시향은 후인의 푸근한 미소에 잠시 멍한 얼굴을 하다 쿡, 하고 웃었다. 제법 그럴싸한 말을 한다. 그녀는 노트를 가방에 넣으며 그에게 물었다. “이후인 씨는 어떤 사장이 되길 바라세요?” “사장으로선 권위적이길, 남자로선 유혹적인.” “충분히 유혹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