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요.”
자신을 보며 칭얼거리듯 말하는 여자에게 경한이 냉정하게 말했다.
“머리를 다치면서 간도 부은 모양이군.”
위압적인 말투에도 경한의 부드러움을 감지한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으로 넘기려는 잔꾀를 부렸다. 하지만 그의 굳은 입매를 보며 말꼬리를 흐렸다.
“잠시 제정신이 외출했구나, 라고 생각하면 안 될까……요?”
제 눈빛에 금세 기가 죽은 여자를 보며 경한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감돌려는 입매를 슬쩍 감추고 말을 이어갔다.
“은근슬쩍 반항하는 것은 원 성격인가? 어쩔 수가 없군. 당분간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앞일을 생각해서 미래라고 하는 게 좋겠어. 이름만 부르면 이상하니까 여기 있는 동안은 장미래라고 생각하고 살아.”
“장미래?”
“왜, 더 좋은 이름 있어?”
“아뇨.”
여자가 재빠르게 부인했다.
“함부로 집 어지럽히지 말고 얌전히 있어.”

‘내가 고양인가? 얌전히 있으라니.’

박양미
필명 : 요시미


출 간 작
「속박」
「잔인하고 뜨거운 우연」
「화려한 사냥」

경한도 알고 있었다. 미래가 가끔씩 기억에 없는 과거로 인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그럴 때면 이렇게 한 번씩 어린 아이가 응석을 부리듯 자신에게 떼를 쓴다는 것을.
경한이 부드러운 눈초리를 보이며 손을 뻗어 이제는 어깨까지 길어진 미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점점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도 자각하고 있었다. 서서히 고개 드는 자신의 소유욕이 이대로 미래를 자신의 곁에 묶어두고 싶은 욕망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결말을 낼 수밖에 없다는 현실에 대한 딜레마가 경한의 행동에 제약을 주고 있었다. 단지 지금은 이렇게밖에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는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경한이 생각에 잡혀 있을 때 미래가 경한의 무릎에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경한의 손길을 느끼면서 고개를 들던 미래가 경한의 눈빛에 불안을 감지했다.
서로의 감정이 흐트러져 있고 그리고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이미 인식하고 있는 두 사람이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움직일 수 없다는 딜레마는 두 사람을 더욱 끌어당기는 기폭제가 되기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