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보며 사람의 운명을 점치는 점성술사인 여자, 최미로.
지상위의 별, 스타(star)라고 불리는 남자, 주한영.

“별자리 점에 의하면요…….”
잠시 머뭇대는 듯 보였지만, 결국 미로는 다시 입을 열었다.
“주한영 씨는 이번 달,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됩니다. 반드시 그렇게 돼요.”

천연기념물 같은 사차원 톱스타와,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며 살아온 평범한 여자.
둘 사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리는 운명의 접점!

오리온자리가 수호하는 청명한 겨울 밤하늘의 별빛을 따라가세요.
그 겨울의 끝에서, 당신을 기다려온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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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화

2014년 우연찮게 시작한 글쓰기를 통해 장기 백수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인생을 살기 시작했다. 10대에는 영화, 20대에는 음악, 30대에는 글쓰기로 중독의 영역을 넓혀 왔다. 40대가 되면 알콜이나 마약중독에 빠지는 게 아닐까 생각도 해 보지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중독과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긴다. 꿈을 위해 글을 쓰기보단, 꿈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진심이 통하는 세상, 남과 다르다고 해서 소외받지 않는 세상을 꿈꾼다. 네이버 웹소설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http://blog.naver.com/kamil7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난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운명.
우주의 명운을 건 싸움의 와중, 코를 푸는 요란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이 순간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단어.

“미로 씨를 만나기 이전에도 운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어요. 그렇지만 그 상대가 누가 될지, 시기가 언제가 될지에 대해서는 몰랐어요. 그건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영역이었거든요. 그런데 미로 씨가 나한테 말했죠. 당신은 운명의 상대를 만나게 된다고. 그것도 올해가 가기 전에, 며칠 남지 않은 올해가 지나기 전에 반드시 나타날 거라고. 어쩌면 나는 그 순간부터 믿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믿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고.”

그래, 내가 화살을 쏘았지. 비록 고의는 아니었다고 해도.
하지만 아르테미스가 그러했듯이, 미로 역시 이런 결과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별이 보여주는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었다. 아르테미스가 아폴론의 말을 듣고 활시위를 당겼듯이.

“내가 믿기 시작하자, 그건 정말 운명이 되기 시작했어요.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정말로 운명 같은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거든요. 미로 씨 연락처가 뭘까 생각한 순간 미로 씨가 전화를 했어요. 미로 씨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더니 촬영이 취소되어 버렸구요. 그리고 그 수표로 말하자면, 미로 씨에게 주려던 수표는 다른 거였어요. 이서 따위는 되어있지 않은 깨끗한 10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을 준비 했었다고요. 엉뚱한 수표를 건넨 건 내 실수지만, 난 이것 역시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아…….”
미로의 입술 사이로 낮은 실소가 새어 나왔다.
그랬던 거였다. 5백만 원. 묘하게 미로의 아픈 과거를 기억하게 하는 불편한 액수의 그 수표들은 애당초 그녀의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로가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봉투를 꺼냈다.

“5백만 원이었어요. 5십만 원이 아니라. 사실 오늘, 이걸 돌려주려고 나온 거예요.”
한영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수표를 들어 액면가를 살펴보았다. 수표를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그럼 오늘, 이걸 돌려주려고 나왔던 거라구요?”
한영이 되물었다.

“그렇게 큰돈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실수로 넣었을 거란 생각은 사실 안 했지만. 그러니까 내 말은, 평범한 저 같은 사람들은 10만 원과 100만 원을 헷갈려 하지는 않으니까요.”
갑자기 한영이 씩 웃었다. 곧이어 그의 입술 사이로 굉장히 즐거운 듯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찰나의 순간, 요란하게 코를 풀어대던 얼간이는 사라지고 과거 한영을 스타로 만들었던 ‘밀크남’이 미로의 눈앞에 나타났다. 당황한 미로가 다급하게 눈을 깜빡였다.

‘뭐야 지금, 구미호도 아니고. 미모로 사람을 홀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미로가 얼빠진 표정으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한영은 수표들을 손에 쥔 채 행복해 죽겠다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이 수표가 아니었으면 미로 씨는 나한테 전화 같은 건 걸지 않았을 거야. 그렇죠?”
일단 그의 말에 틀린 점을 찾을 수는 없었으므로, 미로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전화가 아니었으면 나는 미로 씨가 운명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리고 그 수표가 아니었다면, 미로 씨는 오늘 여기 나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렇죠?”
기승전결이 아니라 ‘기승전운명’이다. 한영이 하는 모든 말들은 무엇에서 시작하든 무조건 운명으로 끝난다.

“맙소사, 한영 씨. 이건 운명이 아니에요. 그냥 우연과 실수가 대충 뒤섞인 별거 아닌 일일 뿐이라구요. 게다가 올해가 가려면 6일이나 남았어요. 남아있는 6일 중 어딘가에 당신이 그토록 원하고 찾아 헤매는 운명의 상대가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구요!”

“아하!”
갑자기 한영이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놀란 미로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 이렇게 합시다. 올해 12월 31일 밤 12시 까지 내 운명의 상대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미로 씨는 내 여자 친구가 되는 거예요. 내 앞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면 정중하게 사과할게요. 물론 평생 다시 귀찮게 할 일도 없을 거구요.”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한영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미로가 미간을 찌푸리는 사이, 한영의 입가에 제법 만족스러워 보이는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만약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내 운명의 상대는 바로 당신이 되는 거고.”
무언가에 세차게 얻어맞은 듯, 미로의 머릿속이 잠시 혼미해졌다.

12월 31일 밤 12시까지의 기묘한 내기.
차라리 돈을 거는 내기라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나마 흔쾌히 승낙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미로로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연애에 대한 내기가 될 것이다.

“잠깐만요.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좀 주세요.”
스크린 안에서는 우주를 구원하기 위한 시도가 계속되고 있었다. 멍하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미로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들이 뒤엉켜 있었다.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뜬 미로의 시선에 영화 속 한 장면이 들어왔다.
루크 스카이워커가 ‘포스’를 수련하기 위해 대 스승 요다에게 가르침을 받는 유명한 장면. 요다는 루크에게 늪에 빠진 우주선을 끌어낼 것을 요구한다. 루크가 한번 ‘Try’ 즉 해보겠다고 말하자, 요다가 대답했다.

Do, or do not. There’s no try.
하던가, 하지 않던가. 해 보겠다는 것은 없다.
무엇보다 미로는 자신이 있었다. 두 사람은 절대 서로의 운명의 상대가 아니라는 자신이.
비록 스스로의 운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그녀였지만 그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운명은 이런 식으로 황당무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한영의 복잡한 별자리가 가리키는 운명의 상대는 분명히 며칠 안에 그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곧 이 이상한 남자로부터 해방되겠지.

“그래요, 그렇게 해요. 12월 31일 밤 12시 까지.”
미로의 대답에 한영이 환호성을 질렀다. 그의 눈동자가 기쁨을 담아 반짝였다. 별빛을 닮은 눈빛. 마치 밤하늘의 금성처럼.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도 단연 존재감을 잃지 않는, 지구와 가장 가까운 행성처럼.

“그건 그렇고, 어찌 되었든 이 돈은 돌려드릴게요.”
미로가 수표를 내밀었다.

“좋아요. 대신 정당한 보수를 지불할 테니 거절하지 마세요. 그건 그렇고, 돈을 찾아 줬으니 저녁이나 한 끼 사고 싶은데, 어때요?”
잠시 망설이던 미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식사를 건너뛴지라 슬슬 허기가 지던 참이기도 했으니까.

“나 감기 걸린 것 같아서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은데. 미로 씨 혹시 삼계탕 좋아해요? 삼계탕에 소주 한잔 할까요?”
크리스마스 밤의 삼계탕이라. 미로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메뉴가 아니던가.

두 사람이 좁은 DVD 방을 떠난 이후에도 ‘스타워즈 에피소드 V - 제국의 역습’은 멈추지 않고 재생되고 있었다.
DVD 방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DVD 방 사장 아저씨는 스타워즈 시리즈의 극성팬이었다. 사장이 방을 청소하러 들어왔을 때, 화면에서는 다스 베이더가 루크 스카이워커에게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대사를 말하고 있었다. ‘I’m your father.’라고.
빗자루를 광선검처럼 휘두르며 바닥을 쓸던 DVD 방 사장이 다스 베이더의 다음 대사를 꽤나 그럴 듯하게 따라했다. 목소리를 잔뜩 깔고.

It’s your destiny.
이것이 너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