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입은 옷과 머리에 쓴 화관으로 봐서 수많은 공기의 요정 중 하나가 분명했다.
한 줌 되지도 않을 가냘픈 모습에, 금세라도 아스라하게 사라질 것 같은 분위기를 봐도 분명했다.

저 여자는 요정이라기보다는 요부라고 불러야 옳았다. 온몸에서 남자를 유혹하는 페로몬을 내뿜는 듯 관능적인 몸짓이 끝없이 이어졌다.

이 여자는 볼 때마다 다른 모습이었다. 지금은 겨우 여고생 정도로 보인다.
단정하게 묶은 머리와 입고있는 옷과 뭉툭한 부츠까지 모두가 검정 일색이었다.
검은색 덕분에 오히려 하얀 얼굴이 더욱 빛나보였다. 그 덕일까?
정말로 앳된 소녀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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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림(曉林)

새벽안개가 낀 숲을 좋아하고, 글을 쓰는 일이 즐겁고, 읽는 일이 행복한 사람.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세상에 좀 더 많아지기를 늘 원하는 사람.
그래서 오늘도 열심히 안 좋은 머리를 짜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후는 주먹을 쥐었다.
몰래 숨을 삼키고, 입을 떼기까지 마치 영원이 흐른 것 같았다. 도저히 말을 나올 것 같지 않았다.

“이제 그만 만나자.”

갑갑한 침묵에 진저리친 지후가 숨을 들이키는 순간, 그 만큼이나 간결한 대답이 들려왔다. 더 차갑다.

“알았어.”

텅 빈 복도로 나서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질풍처럼 불어와 가슴을 헤집고 지나갔다. 꽁꽁 얼어 있는 줄 알았던 심장이 미친 듯이 펄떡거리기 시작했다. 가슴에 격통이 느껴졌다. 턱,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예민하고 섬뜩한 손끝의 감각.
손바닥을 펴서 바라보았다. 난데없는 물기가 어려 있었다. 당황스러웠다.

우리는 사랑하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즐거웠지만, 그 뿐이었다. 시작할 때부터 누구라도 원하면 그대로 끝내기로 약속한 관계…….
처음, 쉽게 만났던 것처럼 헤어지는 이 순간도 어려울 것은 없었다. 그랬다……. 그러니 눈물 따윈 흐를 리가 없다…….

굵은 눈물방울들이 쉼 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이 아닌 심장에서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검붉은 핏물처럼 슬프고 아픈 눈물이 그녀의 얼굴을 온통 적셨다.

이수는 슬펐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누가 가져가 버렸는지를 말이다.


여섯 살 때까지는 아버지 호적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채 그저 마리아의 어린 아들 크리스로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태어난 처음 본 아버지는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몇 차례의 친자 확인 검사를 거쳐 그의 아들일 확률이 99.9%라는 결과가 나와서야 비로소 그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름을 갖게 되었다.

‘김지후’라는 이름은 그가 김진명의 아들이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증명서 같은 거였다.

처음 가져 보는 가정에 지후는 가슴이 설�다. 하지만 그곳은 살면서 단 한 번도 그에게 집이 되어주질 못했다.

“상관하지 마.”
싸늘한 이수의 말에 지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을 노려보는 그녀의 눈길이 너무나 강렬했다. 절대 자기를 받아들여주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기만 한 이수의 차가운 심장.

처음 지후가 자신을 떠났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이수는 후회했다. 제대로 된 이유를 듣지 못한 것을, 애초에 어쩌자고 그런 말도 안 되는 룰 아닌 룰을 만들었던 것인지를. 마음 한구석에는 그가 자기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 같은 게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떠났다.

3년 내내 그를 붙잡지 못한 것을 무엇보다 후회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난 일이었다. 지후가 다시 앞에 나타났다고 해서 이제 와서 달라질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야 했다.

“그래, 당신은 항상 이런 식이지. 언제나 뭐든지 제멋대로. 마음대로 사라지고, 나타나고.”

혼자 울지 말라고 해서 당신한테 전화했어. 헤어지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어. 그래서 내가 우스웠어? 그렇게 우스워? 이제 와서 또 당신한테 휘둘리라고? 그래서 또다시 죽을 만큼 아파야 해? 그러기 싫어. 이젠 견딜 수 없단 말이야…….
끝없는 지옥이었다. 그를 잃고, 그걸 견디고. 이미 알아버린 고통을 반복하는 건 끔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