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해, 태양아. 네 신부야.”
“신부가 뭐예요?”

태양은 그녀의 세계에서 남자라는 종족은 단 한 명, 자신만이기를 원했다.
태양의 세계에 여자는 성예빈, 그녀 단 한 사람이듯.

“그럼, 네가 꼬드겨. 뭐가 문제야?”
남편을 필사적으로 꼬드기는 아내라니!

예빈의 하늘에는 거의 이십 년 동안 오로지 태양만이 뜨고 졌다.
그렇게 사사건건 태양을 기준으로 그녀가 자전하고 공전했던 것이다.

서로 바라보지만 시선을 부딪치지 못했던 그들의 시선이 드디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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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에로틱한 망상을 그리는 여자.

출간작
산타클로스는 죽었다.
특별수업
초연
사라진 마음
하얀 나비
비와 롤러코스터
숨바꼭질

다사로운 어느 봄날이었다. 부모님과 독특한 냄새가 나는 곳으로 놀러갔다. 병원이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그곳이 바로 산부인과 병동이었다. 지금은 별세하신 태양의 모친보다는 젊어 보이는 여인이 퉁퉁 부은 얼굴로 침대에 앉아 있었다.

“태양이 왔구나?”
그녀를 태양은 이모라고 불렀고, 이날 이후로 비니이모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파요, 이모?”

“아니.”

“그런데 왜 여기에 있어요?”

“아기를 낳았거든.”

“아기요?”

“응.”

“아기는 다리 밑에서 주워 오는 게 아니었어요?”
언젠가 어머니가 말했다. 우리 형제들은 모두 다리 밑에서 주어왔다고. 나중에 그 다리 밑이 태양이 생각하는 다리 밑하고 큰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되겠지만, 지금 철석 같이 믿고 있는 중이었다.

왜? 부모님이 아들에게 사기 칠 일은 없으니까.
또한 친구들도 하나같이 그렇게 말했다. 저들도 다리 밑에서 왔다고. 한 친구 녀석은 주스와 과자를 채운 가방을 메고 말했다.

내 부모님 만나러 갈 거야.
어디에?
다리 밑에.

하지만 태양은 신경도 안 썼다. 누구나 다 다리 밑에서 왔다면 거기 가봐야 친부모를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루는 백화점에서 부모님을 잠깐 잃은 적이 있었다. 그 많은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부모님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모님을 찾아 헤매다가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그러니 부모님이 찾아 왔다. 등짝을 두들겨 맞았지만 태양은 그때 큰 인생 경험을 했다.
정말 부모님을 찾고 싶으면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것이라고.
그러니 다리 밑에 가는 것보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나았다. 가만히 집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친부모님이 언젠가는 찾아 올 것이라고 말이다.

꼭 가야겠어?
응.
그럼 그 다리 밑에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움직이지도 말아.
왜?
그래야 어른들이 널 찾을 수 있어.

다섯 살 사내들이 뭘 알겠냐마는, 친구는 태양의 말을 찰떡 같이 알아들었다. 난리가 났다. 태양의 집에까지 찾아와 아이의 행방을 찾았다. 그들이 사는 동네에 큰 다리가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냥 생활하수가 흘러가던 곳에 조악하게 걸린 통행용 건널목이었지만.

태양은 친부모가 다리 밑에 있을 거라고 했고, 친구는 그 다리 밑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아줌마가 말하는 것이다.

아기를 낳았다고.
태양은 배신감이 들었다.

“아기를 보시겠어요?”

“그럼요, 왔으니 당연히 며느릿감을 만나봐야지요.”

“이보오, 그걸 말이라고 함둥? 왔으니 보는 거이 당연하기 아입매?”
태양이 어머니와 아버지를 번갈아 보았는데, 그의 기분은 아랑곳 하지 않고 덕담을 주고받기에 여념이 없었다.

“형님 말씀이 맞습니다. 당연하지요.”
아버지는 고집스럽게 이북 사투리를 버리지 않았는데, 아저씨는 날로, 날로 말투가 변해가는 것 같았다. 몰래 연습을 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니는 태양의 이북 방언사용을 금했다. 동생에게도 말이다.
왜 그런지 이유는 모르지만, 저도 모르게 아버지를 따라하다가 볼을 꼬집힌 것이 한두 번이 아닌지라 이젠 아버지 말투를 따라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볼을 꼬집히는 일은 사내로서 당할 짓이 못 된다. 너무 창피하니까 말이다.
아기가 등장했다. 어른들이 호들갑을 떨며 왁자해졌다.

“어머, 어쩜 이렇게 예쁠 수가.”
아들 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눈에는 여자 아기가 예뻐 보였던 모양이다. 하긴 태양의 눈에도 예뻤다.

“인사해, 태양아. 네 신부야.”
이모가 말했다.

“신부?”
태양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녀와 아기를 번갈아 보았다.

“그래.”

“이모, 신부가 뭐예요?”

“응, 나중에 자라서 네 어머니와 아버지처럼 결혼 할 여자라는 말이지.”

“결혼이 뭔데요?”

“같이 사는 거.”

“같이 사는 게 결혼이에요? 그럼 저도 아빠, 엄마, 동생하고 결혼한 거예요?”

“아니…….”
은미가 당황한 얼굴로 태양의 어머니인 춘자를 올려다보았다. 이 대목에서 제발 지원을 바란다는 표정으로.

“태양아.”

“네?”

“어른들이 말하면 그런가보다 해야지. 뭔 사설이 그리 길어?”

“네에.”

치이…….
부모님은 매번 그런다. 태양은 입이 나와 어머니 춘자에게서 시선을 떼어내 아기를 보았다. 이 아기가 자신의 신부란다. 어른들이 그렇다 말하면 그런 줄 알아야 한단다. 이상하게 부아가 났는데, 태양은 사람들 앞에서 또 볼을 꼬집히고 싶지는 않았다.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기의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왕 울음을 터트렸다.

“아기가 울어요.”
일그러진 얼굴 때문인지 아기가 좀 못나 보이기도 했다.

“그렇구나. 배가 고픈 모양이야.”
어른들이 아기에게 젖병을 물렸다. 곧장 아기의 표정이 황홀해졌다. 태양은 그 순간 아이에게 넋이 나가버렸다. 너무나도 예쁘다. 먹을 것을 주니 저렇게 좋아할 수가. 나는 아기, 아니 신부를 울리지 말아야지. 돈 많이 벌어서 매일 맛있는 거 사줘야지. 태양은 눈을 감은 채 웃고 있는 신부를 보며 다짐했다.

울리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잠시, 또 운다.

“이모, 아기가 배고파요.”

“아냐, 기저귀가 젖었어. 응가 하는 모양이다.”
신부가 우는 원인이 이것보다 더 많을까? 신부를 울리지 않기 위해서는 챙겨줘야 할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니, 좀 거추장스러워지기도 했다.
신부 하지 말라고 해버릴까.
심각하게 생각하는데, 은미가 아기의 기저귀를 풀었다.

“아이고, 예쁘기도 하네. 어쩜 응가 색이 저리 예쁠까.”
태양의 어머니 춘자가 말했다. 태양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어머니를 보았다. 그가 생각하기에는 냄새나고 더럽기만 한데 말이다. 정말 예쁠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기에게 다가갔다. 노란색 변이 보였다.

“더 다가가지 말라이.”
아버지가 그를 말렸다. 다가서 보니 예쁘다던 응가가 별로 예쁘지도 않았다.

“귀 먹었슴둥?”
더 다가가면 예쁜 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태양은 고개를 들이밀었다.

“아!”
그리고는 태양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아기의 거기에서 물줄기가 분수처럼 솟았다. 뜨뜻한 것이…….

“어머!”
한동안 어른들이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거 참, 신고식 한번 거하게 합꼬망.”
아버지까지 너털웃음을 지었다. 태양은 억지로 눈물을 삼켰다. 사람들 앞에서 울고 싶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떠는데, 어른들은 좀처럼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창피해서 어디 꽁꽁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태양은 장래의 신부와 아주 인상적인 첫 인사를 나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