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밝게 빛나는 별, 슈퍼스타 지성현.
발랄한 성격의 캔디 캔들 (Candy Candle)의 사장, 조향사 향기.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남녀가 만났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 공항에서부터 죽 따라붙은 건가?”
“저기요. 혹시 정신병 있으세요? 무슨 망상증 이런 거?”
“망상증은 만사 제쳐 두고 스타 뒤나 졸졸 쫓는 당신 같은 여자들이 있는 거고.”

연예인이고 뭐고 향기에게 성현은 망상증 말기 환자일 뿐!

“이미 당신 존재 자체가 내겐 상식적이지가 않은데 어떻게 내가 상식적으로 행동하길 바라는 거지?”
“됐고! 그래, 지성현? 내가 오늘부터 그 인간 안티다!”

불협화음 속에 스미는 향기로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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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바다
완벽한 것보다 미숙한 것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

성현은 혼자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반쯤 숙인 채 한동안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의자를 밀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한쪽에 놓아 둔 토끼 탈을 머리에 썼다.
향기는 이상스러운 성현의 행동에 잠시 식사를 멈추고 두 눈을 끔뻑이며 그를 바라보았다. 쫑긋 선 토끼의 기다란 귀와 커다랗고 또랑또랑한 눈, 툭 튀어나온 이빨을 보자 쿡 하고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갑자기 탁 하고 긴장이 풀려 버리는 기분이었다.

“이러면 어떨까? 난 지금부터 지성현이 아니야. 으음…… 그래, 그냥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흰토끼 정도로 해 두자.”

“풉, 그게 무슨 소리예…….”

“안녕, 주인님? 난 흰토끼야. 항상 정신없이 바쁘지. 어제도, 오늘도 바빴고……. 아마 또 내일도 바쁠 거야.”
성현은 마치 회중시계처럼 제 손목의 시계까지 풀어 들고는 연기하듯 말했다. 급조된 역할극이었지만 천생 배우라 그런지 역시 연기 하나는 일품이었다. 금세 말투나 사소한 몸짓조차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된 듯 성현은 기가 막힌 연기를 시작했다. 어느새 향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머물렀다. 향기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제 앞의 토끼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래, 흰토끼야. 너는 뭐가 그렇게 바쁘니? 대체 왜 그렇게 이리저리 바삐 뛰어다니는 거야?”

“으응. 그건 말이지…….”
향기가 물끄러미 토끼를 바라보았다. 성현은 어두운 탈 안에서 입술을 달싹였다. 어쩐지 이렇게 토끼 탈을 쓰고 있으니 정말 다른 존재라도 된 듯 평소에 꺼내지 못했던 말들도 술술 나왔다.

“잊기 위해서야.”

“무얼?”

“괴로운 기억을.”

“무슨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니?”

“응.”

“그게 뭔데?”

“그건…….”

이내 토끼가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는 두 손으로 커다란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향기는 생경한 성현의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어쩐지 토끼 탈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을 그의 표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래 봐야 탈 때문에 그 모습조차 무척 귀여워 보였지만 말이었다.

“말하기 힘들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아.”

“…….”

“흰토끼야. 그럼 이제 굴속으로 들어갈 거지?”
망연자실해 있던 토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흰토끼야,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굴에는 왜 들어가는 거야? 거기에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니?”
향기는 가라앉은 그의 기분을 눈치채고 빙긋 웃으며 농담처럼 화제를 전환했다. 그제야 토끼도 천천히 고개를 들며 조금 기운 내어 말했다.

“음, 그건 숨기 위해서야. 세상엔 위험한 것들이 무척 많거든.”

“으응, 그래. 맞아. 작고 하얀 토끼에게 세상은 위험한 것들이 너무도 많지.”

“그리고…… 사실 숲 속에서 우연히 한 소녀를 봤거든. 어떻게 하면 그 소녀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고민했어.”

“그렇다면 사실 토끼가 먼저 소녀를 발견한 거였구나?”

“응, 맞아. 그래서 내가 굴 안으로 바삐 뛰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 주면 그 소녀가 호기심을 갖고 따라오지 않을까 하고 묘수를 짜낸 거지.”

“아, 그러네? 그렇게 된 거였구나!”
성현의 재해석에 향기가 재미있다는 듯 손뼉을 치며 반응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말꼬리를 흐리던 토끼는 이내 맑고 커다란 눈으로 향기를 바라보며 천천히 한 손을 내밀었다.

“서향기, 너…… 내 세계로 올래?”
토끼가 맑고 커다란 눈으로 향기를 빤히 바라보았다. 토끼를 마주하던 향기의 눈빛이 흔들렸다.
향기는 순진무구해 보이는 토끼의 커다란 눈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토끼는 한층 담담한 목소리로 이어 말했다.

“아마도 원래 네가 살던 세상과는 좀 다른, 이상한 세계일지도 모르겠지만…….”
향기가 연신 두 눈을 끔뻑였다. 어쩐지 나직한 토끼의 목소리가 마음속에 잔잔하게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네가 있다면 매일 이유 없이 바쁘고 온통 이상하기만 한 내 세계도…… 어쩌면 조금은 좋아질 수도 있을 거 같아. 그래서 난 말이야…….”
토끼는 담담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서향기, 네가 필요해.”
향기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대로 입술이 찰싹 붙어 버린 듯했다.

‘대체 왜 이러지…….’
기분이 이상했다. 고작 저런 귀여운 토끼의 말에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리게 될 줄이야…….
이윽고 토끼는 향기를 향해 내민 손을 조금 더 가까이 내뻗었다. 한동안 룸 안에는 고요한 적막이 흘렀다. 한동안 그의 손을 묵묵히 내려다보던 향기는 홀린 듯 천천히 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어쩐지 정말 흰토끼를 따라 이상한 세계로 향하는 첫 발걸음을 떼고 있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