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절실하게(전2권) - 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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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청어람
작가명
이령
발행일자
2018/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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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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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 상세 설명

       

       

      불우한 가정환경에도 대나무 근성으로 악착같이 살아가는 의대생 이수. 수 겹의 베일에 싸여 정체를 알 수 없는 편입생, 호랑이 같은 남자 주도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인 그 남자가 불현듯 그녀의 인생에 끼어든 순간, 폭풍 같은 감정이 시작되었다.

       

      네가 시작한 거야.”

       

      감춰져 있던 도은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날수록 둘은 서로에게 절실해져만 가고, 잔인한 현실은 그들의 발목을 점점 옥죈다.

       

      이수. 네가 날 붙잡아줄 거란 확신이 들었으니까. 난 너한테 그 정도 믿음이 있거든.”

      무슨 배짱으로?”

      네가 나 좋아하는 거. 난 그걸 믿지.”

       

      그럼에도 둘은, 지독하게…… 사랑할 수 있을까?

       

       

       

       

       

       

      이령

       

      동네에 한 번쯤 봤음직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글 쓰는 재주는 슬프게도 꽝이지만 제가 사랑하는 일이니 어쩌겠어요, 후회 없이 죽어라 덤벼보는 수밖에. 그렇기에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특별한 당신들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기를. 앞으로 자주 찾아뵐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끔 굽은다리역 카페에서 미친 듯이 타자 치며 앉아 있는 여자를 보시거든 저인 줄 알고 한 번 웃어주세요. 차갑게 생겼지만 물진 않으니 걱정 마시구요.

       

       

       

       

       

       

       

      수야. , 그렇게 하자 우리.”

       

      기억 속 음성이었다. 낮고 부드러운, 기억 저편 케케묵은 상자 안 깊숙이 넣어둔 공허함이었다.

      잠에서 깬 수는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아직 버스 안이었고, 안내 음성은 목적지 바로 한 정거장 전을 연거푸 말하고 있었다. 더운 여름이라 버스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뜨거운 바람이 숨통을 죄였다. 평일 낮 시간임에도 사람들로 꽉 들어찬 여의도 한복판의 버스엔 강으로 틀어놓은 에어컨 바람이 무색하게 비지땀을 흘리는 자들로 가득했다. 뒷자리에 앉아 잠에 취해 창문에 기대었던 머리를 뗀 수는 이마에 난 식은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비단 더워서 흘린 땀은 아니었다. 그 잠깐 사이에 꾼 꿈 때문이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린 수는 뜨거운 햇살과 그보다 더 뜨거운 공기에 헛숨을 내뱉었다. 올 여름 중 가장 폭염이라는 오늘의 정오는 그야말로 지옥이었다. 수는 쇄골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질끈 잡아 팔목에 껴둔 검은 고무줄로 묶었다. 짧아서 채 묶이지 못한 머리가 주르륵 목덜미로 흘러내렸지만 아까보단 좀 덜 더운 것 같아 만족이었다.

      수는 어렵사리 힘든 걸음을 옮겨 여의도 한복판에 자리 잡은 빌딩 앞에 섰다. 정확히는 빌딩에 들어가기 전 건물을 감싸고 있는 높다란 장벽 한가운데 위용 있는 철제문 앞에 섰다. ‘주아제약이라 새겨진 멋들어진 대형 돌 조형물이 철문 창살 사이로 언뜻 보였고 수는 자신을 발견한 입구 경비원이 붙잡기 전 먼저 명함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국병원 신경외과 전문의 이수, 라 쓰인 명함과 사진을 그녀와 번갈아 보던 경비원은 꾸벅 인사와 함께 철제문을 열어주었다.

      로비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여비서가 꾸벅 인사를 했다. 마주 인사를 하며 비서를 따라 들어간 빌딩 내부는 역시 대기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했다. 블랙 앤 화이트로 모던하고 깔끔하게 꾸민 내부와 그 건물에 어울릴 법한 단정한 사원들이 로비 옆 마련된 카페테리아에 그득했다. 사원증을 대야만 열리는 게이트를 지나 열 대는 넘어 보이는 엘리베이터 중 임원용을 탔다. 비서가 터치용 번호판 밑에 제 사원증을 찍자 보이지 않았던 최상층 버튼이 나타났고 엘리베이터는 그제야 올라갔다. 그걸 신기하게 바라보는 수에 비서는 웃으며 마주 보았다.

      전 박하진이라고 합니다. 약속시간은 1시 반인데 십오 분이나 일찍 오셨네요. 미리 마중 나온 보람이 있게 해주셨어요.”

      비서의 상냥한 말씨와 웃음에 그녀는 따라 미소를 띠었다. 아리따운 외모와 높은 톤이지만 부드러운 말씨만큼이나 구불구불 내려오는 긴 웨이브 머리가 인상적인 여성이었다. 더불어 오피스레이디에 걸맞은 단정하고 딱 붙는 펜슬 스커트와 킬힐은 비서의 아름다운 몸매를 한껏 부각시키고 있었다.

      최상층은 임원들만의 공간이었다. 자 복도식 사무실들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어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었다. 사무실 앞마다 이름이 기재되어 있었고 사무실 옆 외부 데스크마다 비서로 보이는 사람들이 묵묵히 자신의 상사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대표님은 지금 회의 중이시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차는 아메리카노, 잉글랜드 애프터눈 티, 보이차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어떤 게 좋으신가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깔끔한 비서의 대사에 수는 안내해 준 사무실 안 갈색 가죽 소파에 앉으며 커피요, 라고 간단히 말했다. 비서는 고개를 꾸벅 숙이곤 미소를 지은 채 문을 닫았다.

      그제야 수는 마음 놓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대표이사실이라 그런지 웬만한 집과 같은 규모의 널찍한 사무실이었다. 블라인드를 걷어놓은 전면 통 유리창엔 여의도 한강의 아름다운 뷰가 펼쳐졌다. 가습기는 희뿌연 연기를 부드럽게 내뱉고 있었고 그 옆 공기청정기는 맑은 공기를 위해 쉼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로비의 공기와는 약간 다르다 싶었는데 그 이유를 찾은 셈이었다.

      수는 비서가 가져다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슬렁슬렁 사무실을 걸어 다녔다. 대표가 앉아 업무를 보는 마호가니 책상은 그녀의 집 입구조차 통과하지 못할 만큼 컸고 뒤에 빌트인으로 자리 잡은 목재 책장에 꽂힌 수많은 서적들의 반은 전문의인 그녀도 접한 적 없는 의료 전문 서적들이었다. 소파 역시 통가죽에 뒷면까지 목각이 조각된 윤기 흐르는 것이고 대리석 테이블, 벽면에 걸린 평생 한 번은 봤음직한 유명한 그림들, 코너마다 놓여 있는 이름 모를 작가들의 조각품, 하물며 손에 든 커피까지 모든 게 비싼 것으로 중무장된 공간이었다. 그래서 이 공간이 불편하고 이질감이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수는 다시금 소파에 앉으며 때마침 울리는 핸드폰을 꺼냈고 액정에 뜬 썬이라는 이름을 보곤 소리 죽여 전화를 받았다.

      , .”

      [너 결국 거길 간 거야?! 부원장님이 나하고 킹까지 잡고 지금까지 얼마나 들들 볶았는지 몰라. 킹은 지금 점심 먹은 게 얹혀서 변기통 부여잡고 있고. 부원장이 그 조그만 눈을 반짝이면서 주아제약 대표랑 동문 맞냐고, 네가 실패하면 다음은 우리가 가라고!]

      그래서, 지금 나보고 목숨 다해 성공하라고 응원 전화한 거야?”

      [그게 아니라 멍뭉아…… 너 괜찮아?]

      선우의 음성이 울먹거리며 조심스러웠고 수는 고등학교 때부터의 친구인 그를 향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욕지거리를 내뱉곤 일방적으로 통화를 끝냈다.

      괜찮지…… 않아.”

      수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 청심환을 얼마나 씹어 먹어댄지 몰랐다. 잠깐 잔 선잠에 악몽을 꾸고 식은땀을 흘렸지만 그게 숨이 턱턱 막힐 것 같은 폭염의 뜨거운 공기 때문이 아니라는 걸 자신은 알고 있었다.

      보통은 제약회사에서 자신의 제품을 써주십사 병원 높은 고위직들에게 로비를 하기 마련이었다. 그게 통상 관례였다. 대학병원 의사가, 그것도 임원진이 아닌 일반 전문의가 신약의 물량이 딸리니 자신의 병원에 우선 지원해 달라는 말을 하러 제약회사 대표를 찾아가는 일은 아마도 극히 드물 것이었다. 그리고 그 드문 일을 하기 위해, 자신이 온 거였다. 자신이 대표와 동문이라는 소문을 들은 뒤 찾아온 부원장의 지시를, 일개 의사인 그녀가 거절할 명목은 없었다.

      약속시간을 지나 한참을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기다릴 무렵이었다. 순간, 등 뒤로 사무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뚜벅뚜벅 차분한 발걸음으로 마호가니 책상을 향해 가는 누군가의 인기척에도 수는 쉽사리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시선 하나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은 채 굳은 듯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누군가는 다시 저벅저벅 걸어와 상석인 1인용 소파에 앉았다. 몸을 느슨하게 등받이에 기댄 채 긴 다리를 꼬던 그는 손에 든 담배를 입에 물며 지포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회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중저음의 음성이 고막을 파고들어 심장까지 도달했다.

      뿌연 담배 연기가 그의 한숨처럼 허공에 퍼졌고 공기청정기가 돌아갔다. 2시를 향해 달리는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릴 만큼 실내는 적막했다.

      수는 그제야 고개를 서서히 들어 상석에 앉은 그를 마주했다.

      긴장하지 않으려 아침부터 갖은 애를 썼던 심장은 다시금 미친 듯 뛰어대고 있었다. 숨이 가쁘고, 커피 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는 손은 잘게 떨렸다. 멀쩡하게 행동하려 일부러 이곳에 도착해 사무실 구석구석을 구경하던 노력까지 모두 수포로 돌아간 순간이었다.

      용건만 간단히 하죠. 무슨 일로 바쁘신 의..분께서 이곳까지 왔습니까.”

      의사를 강조하는 그의 낮은 음성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수의 흰 피부가 더욱 희어졌다. 이마엔 식은땀이 흘렀다. 그녀는 검은 가죽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그의 앞에 놓았다.

      작년 9월에 주아제약에서 출시된 폐암 치료제 vx 때문에 왔습니다. 자료 읽어보시면 저희 병원에선 귀사의 약의 효능을 배로 올릴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을…….”

      물량이 딸리는 걸 아니 한국병원에 우선 지급해 달라.”

      수의 말을 칼같이 끊은 그는 마지막 담배 연기를 내뱉곤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의 숨이 섞인 연기가 허공에 퍼지며 그녀와 그 사이를 장막처럼 지나갔다. 그 흐릿한 시야 너머 그의 긴 눈매에 담긴 칠흑의 검은 눈동자는 맹수의 날카로움을 띠고 형형히 빛났다. 그 시선은 오롯이 그녀에게 쏠려 있었다.

      외국 대형 병원들에 지급할 물량도 일 년치나 밀린 상황에서, 고작 한국병원에 우선 지급을 해달라니.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어디가 더 수지타산에 맞겠습니까.”

      그의 뜻은 명확했다. 뭐라 반론을 하지 못하는 수를 보며 그의 큰 입매가 시니컬하게 휘었다. 그는 팔걸이에 팔을 댄 채 느슨하게 두 손을 깍지 꼈다. 한 번도 그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은 채 반쯤 시선을 테이블로 깔고 있던 그녀의 시선이 그의 손에 멈췄다.

      순간 심장이 지끈 아프다 비명을 내질렀다.

      엉망이었다. 그 표현이 맞았다. 양손 마디마디에 거미줄처럼 불규칙하게 그려진 긴 상흔들은 아직도 붉게 흉이 되어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을 느낀 듯 그의 시니컬한 입술이 더욱 짙게 휘었다.

      구 년 전 사고였죠. 다행히 손 구실은 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거나 의사처럼 수술할 만큼 섬세한 작업은 못합니다만.”

      또다시 강조하는 그 미묘한 뉘앙스를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이미 그녀의 귀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수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그 행동 하나에도 그녀의 시선은 패닉이 온 듯 부정확했고 머리는 식은땀에 젖어 있었다.

      뜻은 잘 알았습니다. 가보겠습니다.”

      수는 나가면서까지 그를 바로 보지 않았다. 그의 범 같은 검은 눈동자가 끊임없이 자신을 칼로 찌르듯 바라보는 통에 심장이 멎기 일보 직전이었다.

      신경외과라던데.”

      그의 나지막한 음성에 문고리를 잡은 수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마주보았다. 그는 그녀가 아닌 창밖의 유려하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형외과가 더 돈을 잘 벌 텐데. 왜 굳이 의사들이 기피하는 신경외과를. 공부도 어렵고 환자도 힘든 케이스들뿐이고. 메리트가 전혀 없을 텐데?”

       

      성형외과라니 아깝다. 넌 분명 우리나라 최고의 의사가 될 수 있을 텐데.”

       

      뇌리를 스치는 기억 속 음성에 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시야가 어지러웠다.

      저한텐 꼭 가야만 하는 곳이었거든요.”

      수의 음성이 갈라졌다. 다시금 그녀가 고개를 돌려 이번엔 진짜 나가려 할 때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곤 긴 다리로 천천히 걸어와 그녀의 앞에 섰다.

      그는 흉터투성이인 손을 허공에 내밀었다.

      통성명도 안 했네요. 주도은입니다.”

      수는 도은을 올려다보았다. 오늘 처음으로 정면으로 마주하는 그의 얼굴이었다. 세월의 흐름이 보였다. 어렸던 그때와는 미묘하게 다른 얼굴의 진정한 성인이 눈앞에 있었다. 여전히 조각 같은 수려한 외모와 긴 눈매 속 검은 눈동자의 강인함이 여실히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수입니다.”

      그가 내민 손을 맞잡은 그녀의 시선이 무수하게 흔들렸다. 맞닿은 손에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는 여전했다. 여름에도 찬 자신의 손에 더욱 따갑게 온기가 파고들었다.

      이수.”

      도은이 손을 떼고 나지막이 그녀를 바라보며 내뱉었다. 나른한 숨처럼 내뱉는 그 음성과 더불어 지독히도 검은 시선에 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방을 뛰쳐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로비를 나가는 걸음걸음이 비틀거렸다. 건물을 나가 철제문 앞에서 주저앉아 버리고 만 그녀에게 경비원이 급히 다가와 안부를 물었다.

       

      수야.”

       

      눈물이 흘렀다. 심장이 발치로 떨어지며 나 죽겠다 소리치고 있었다. 흐릿한 의식 속 누군가가 부르는 음성에 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머리에서 지우고, 가슴에 묻으려 처절하게 발버둥 쳤음에도 아직 여전히 그대로인 누군가였다. 그렇기에 더욱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누군가였다.

      도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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