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포식자(19세이상)(전2권) - 춈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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춈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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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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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 상세 설명

       

      완벽한 포식자’ 1권에 초판 한정 작가 친필 사인 수록(도서 1권 앞 면지 수록 / 이벤트 기간 : 초판 소진시까지) / 친필 사인 수록본에는 래핑 위에 사인본스티커가 부착되어 있어 구별 가능합니다.

       

       

       

       

      <1>

         

      사실 팔에는 수갑을 채우고 싶고, 목에는 목줄을 매어놓고 싶어.”

         

      처음엔 목적을 위해 몸 로비를 하는 그렇고 그런 여자라고 생각했다. 운호의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건 없었음에도 묘하게 신경 쓰였다.

      보호본능을 자극함과 동시에, 먹어치우고 싶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그녀를 향해 한 발 내딛는데…….

         

      나를…… 사랑하세요?”

      아뇨.”

      단호한 대답이다. 하지만 상처받지 않았다.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자신은 언젠가 떠나야 되는데 그가 사랑이라고 한다면 죄책감이 들 것 같았다. 은수가 깊게 안도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배려라는 걸 몰라요. 세상이 다 거슬려. 사실 주변의 모든 게 다 짜증스러울 뿐이야. 누가 숨만 쉬어도 불쾌하거든.”

      그런데 나는요?”

      당신은 그렇지 않아. 그래서 내 곁에 두는 거예요. 안 귀찮거든. 짜증이 안 나.”

       

       

       

       

      <2>

       

       

      그렇게 도망가면 나는 죽도록 쫓아갈 거예요.”

         

      처음엔 세상이 제 것인 줄로만 아는 차가운 남자라고 생각했다. 은수의 손길을 필요로 할 만큼 부족하지 않은 남자라 여겼는데 계속 그 주위를 맴돌게 된다.

      세상을 먹어치울 듯, 자신을 먹어치울 듯 다가오는 남자에게 이제 그녀가 움직인다.

       

       

      개같죠?”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올리는 미소가 쓸데없이 매력적이라 은수가 숨을 들이켰다.

      잘 길들여볼래요?”

      아뇨…….”

      ? 잘만 길들이면 가장 충성스러운 개가 될 텐데. 길들일 자신이 없어요?”

      달콤한 유혹이다. 잘만 길들이면 네 남자가 될 수 있다고 꼬리를 흔든다.

       

       

       

       

       

       

       

      춈춈

       

      촘촘 아닙니다. 춈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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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붙인 속눈썹이 내려앉을 것 같다.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에 은수가 힘을 줬다. 간밤에도 거의 자지 못했다.

      호텔 커피숍 안의 따뜻한 공기에 잠들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릎에 올려둔 클러치를 꽉 쥐다 문득 그 안에 들어 있는 룸키가 생각났다. 그리고 어제 이 키를 건네준 남자가 떠올랐다.

      아랫배가 욱신거린다. 기껏 아침부터 마사지와 메이크업, 머리를 세팅했는데 우습게 됐다. 생리가 시작해 이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고 하면 어떤 얼굴을 할까.

      48층 창밖에는 첫눈이 펑펑 내리고 있다. 굳이 확인 안 해도 바깥이 얼마나 추운지 알 수 있었다.

       

      유은수 씨.”

       

      낮게 울리는 부드러운 목소리.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은수는 손톱 아래 살점을 뜯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깔끔하게 뒤로 넘긴, 목소리를 닮은 부드러운 갈색 머리칼. 찢어진 눈매는 언뜻 날카로워 보인다. 눈동자 또한 선명한 갈색이다. 조금 투박하게 생긴 높은 코. 그리고 한일자로 다물어진 얇은 입술이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의 남자가 은수가 일어나기 전 손을 휙 저으며 마주 앉았다. 긴 다리를 꼬고 버릇처럼 품에서 담배를 꺼냈다. 지나가던 직원이 곤란한 얼굴로 금연이라 말하자 남자는 뒤늦게 깨달은 듯 담배 필터로 유리 테이블을 툭툭 쳤다.

       

      팔순이 코앞인 노인네와 결혼할 여자가 누군가 했더니.”

       

      남자의 얇은 입술이 비틀렸다. 노골적으로 불쾌함과 조롱을 닮고 자신을 쳐다보는데 정작 그녀는 말을 잃었다.

      채운호. 그가 왜 이 자리에? 멍한 머릿속에 물음표가 떠다녔다.

       

      유은수 씨.”

       

      그가 다시 한 번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

       

      은수가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 대답 한마디를 하다 손톱 옆 살점을 잘못 뜯어 기어이 피가 났다.

       

      다리는 잘 벌려요?”

       

      자신이 무슨 소릴 들은 건지,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상에 대해 묻듯 운호의 목소리에는 높낮이가 없었다.

      은수는 내장을 온통 쥐어짜는 듯한 통증에 인상을 찌푸렸다. 대답 대신 눈앞에 있는 아이스커피를 스트로로 죽 빨아들였다. 혀끝에서 곧장 위장까지 내려가 온몸이 차가워진다.

       

      잘 벌리니 이 자리에 나왔죠.”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은수가 무표정하게 대꾸하자 운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의 시선이 유리잔을 잡고 있는 자신의 손에 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녀가 테이블 아래로 손을 내린다.

      그와는 첫 만남이 아니다. 은수가, 그리고 운호가 속해 있는 클럽은 짧게는 주 단위로, 그렇지 않으면 한 달에 한 번은 얼굴을 비쳐야 했다. 내로라하는 2세들이 주로 모이는 모임이다. 각자 파트너까지 데리고 나오면 백여 명도 훌쩍 넘는 인파로 넘치는 그곳에서 은수는 이 남자를 종종 봐왔다. 그의 주위에는 항상 사람들이 있었다.

      그의 얼굴을 봐선 자신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다. 당연했다. 그와 인사조차 나눠본 적 없으니까.

       

      시간낭비 같으니 일어나죠.”

       

      빈속에 찬 것을 마셔서 그런가, 생리통이라 그런가. 신경줄이 바싹바싹 죄고, 위가 비틀렸다. 신경이 팽팽해지는 건 이 남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은수가 태연을 가장하며 일어났다. 그녀의 행동을 낱낱이 살펴보는 그의 눈이 싸늘했다. 남자의 시선은 칼날이 되어 이제는 쿡쿡 살점을 비집고 찌른다.

       

      .”

       

      무릎에 두었던 클러치를 미처 생각 못 했다. 자석 부분이 구두코에 닿아 열리며 내용물이 쏟아졌고, 몇 없는 내용물 중에는 이 호텔의 룸키가 있다.

      뒤늦게 일어난 운호의 시선이 은수의 발끝으로 향했다.

       

      프런트까지 갈 수고를 덜었군요.”

       

      그가 자신을 얼마나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을지 상상이 간다. 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배가 아팠다. 10센티미터가 넘는 하이힐을 신은 은수가 휘청거리지 않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립스틱 등을 줍는 은수의 벌게진 손끝에 운호가 미간을 찌푸렸다. 연핑크색 매니큐어를 발라 가지런히 정리해놓은 손톱과 달리 그 주변이 발갛고 피가 검붉게 말라붙은 자국도 있다.

       

      가죠.”

       

      스물여섯이라고 했나. 운호가 유은수의 프로필을 떠올렸다. 오늘 그는 기막힌 연유로 이 자리에 떠밀려 나왔다.

      유백상 의원의 셋째 딸. 유 의원 하면 네 겹으로 겹치는 턱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그런 우락부락한 인물 아래서 나온 것치곤 단정한 얼굴이다. 아니, 객관적으로 꽤 미인일지도.

      미용실에 다녀왔는지 컬이 들어간 머리카락은 허리께에 와 있다. 염색을 하지 않은 검은 머리는 호텔 조명에 약간 잿빛으로 보이기도 했다. 눈매가 길고 브라운 계열 섀도로 음영 준 눈은 그렇지 않아도 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다. 긴 속눈썹이 불편한지 눈꼬리 한쪽을 파르르 떠는 모습에 운호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삼켰다.

      한 손에 베이지색 캐시미어 코트를 들고 얇은 실크 블라우스와 하이웨스트 스커트를 입은 여자를 그는 감상하듯 바라봤다.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가 부드럽게 굴곡진 엉덩이로 이어진다. 그의 시선에 여자는 클러치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우고 두 손을 숨기듯 코트 아래로 넣는다. 운호는 픽 웃었다.

      제 할아버지가 후처를 들이기 위해 선을 본다는 소리에 기가 막혔다. 고작 스물여섯 먹은 계집이라니.

      한 걸음 뒤에서 그녀를 따라가던 운호의 눈에 그녀의 마른 어깨선이 들어왔다. 간헐적으로 움찔거리는 어깨가 굳이 손대지 않아도 딱딱하게 경직돼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긴장했습니까?”

       

      고집스레 앞을 바라보던 은수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곧은 목선이 드러났다. 매끄럽고, 살짝 젖어 있는 살결.

      잠깐. 젖어 있어?

       

      유은수 씨.”

       

      운호가 그녀를 불렀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겨우 멈춰 선 걸음이지만 은수는 돌아보지 않았다.

       

      당신 어디 안 좋아요?”

       

      운호는 그 질문을 던져놓고 침음을 삼켰다.

      여자에게 지나치게 가까웠다. 아마 유은수라는 여자가 저를 남자로 보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코트 아래에 숨겨진 손이 그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은수가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그 말이 의외였나 보다.

      피부가 원래 하얀 편인 줄 알았는데 이건 하얗다기보단 창백했다. 아마 저 립스틱을 지운다면 입술 또한 창백하게 질려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잔머리 몇 가닥이 관자놀이에 붙어 있었다.

       

      생리 중인데 괜찮아요?”

      ?”

       

      은수는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그 남자가 그렇게 원하는, 채운호의 말을 빌리자면 팔순이 얼마 남지 않은 한 회장이 아니라 그의 손자가 선자리에 나왔고, 그와 잤다고 하면 어떤 얼굴을 할까.

      이곳에 향하면서 어쩌면 오늘 생리를 시작한 게 다행이라고 여겼다. 한 회장이 이상한 성벽이 있는 게 아니라면 생리 중인 여자와 잘 리 없으니까. 하지만 채운호를 본 순간 하필이면 오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이 남자와 자면 일그러진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를 칠 그 사람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나는 괜찮은데.”

       

      괜찮지 않다. 괜찮을 리가 없다.

      은수가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서며 아직 바깥에 있는 남자를 똑바로 마주한 채 입을 뗐다. 그의 눈에 이거 아주 골 때리네.’ 하는 빛이 지나가자 끔찍한 생리통도 잊혔다.

       

      나는 괜찮다구요, 채운호 씨.”

       

      턱을 들고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거뜬하게 큰 그와 마주했다. 남자의 마디가 불거진, 보기 좋은 손가락이 버릇처럼 턱을 쓸었다. 아직 그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채인 담배를 보고 은수는 조금 웃었다.

      객실이 있는 층을 눌러야 하는데. 코트로 감춘 손이 꼼질거린다. 그가 뭐라도 얼른 대답해줬으면 했다. 곧 문이 닫힐 텐데, 이 엘리베이터는 어디로 가게 되는 걸까.

       

      후회하지 않겠어요?”

       

      엘리베이터가 닫히려는 순간 운호가 문 사이를 잡으며 물었다.

      후회하게 될까? 그 말을 곱씹었다.

       

      내가 그쪽 할머니가 될지도 모르는데.”

       

      이 무슨 막장드라마란 말인가. 그 소릴 뱉으면서도 웃음이 나와, 은수가 비죽 올라가려는 입술을 사리물었다.

       

      채운호 씨야말로 괜찮겠어요?”

       

      여자는 시종일관 그에게 괜찮냐 물었다. 담백한 얼굴로 무덤덤하게, 마치 모르는 사람과 간단한 인사라도 나누는 마냥. 그게 운호의 신경을 자극했다. 그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거침없이 들어서 키에 적혀 있는 번호의 층수를 눌렀다.

      .

      다른 층에서 젊은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탔지만, 은수와 운호는 서로 엘리베이터 벽의 끝과 끝에 붙어 타인처럼 정면만 바라봤다. 35층에 이르러서야 멈춘 엘리베이터. 남남처럼 보이던 두 사람이 동시에 내리려 하자 커플이 한 몸처럼 붙어 가장자리로 옮겼다.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에 뒤따르는 구둣발 소리가 들린다.

      은수가 자신이 기억하는 호수 앞에 서서 운호를 돌아봤다.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관리했지만 실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빨리 이 문을 열고 들어가 푹신한 침대에 몸을 묻고 싶다. 아무래도 좋다. 이런 식으로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이렇게 됐으니 어떻게 흘러가든, 은수는 그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싶었다.

      삐빅.

      카드키를 손잡이에 대자 방문이 열렸다. 운호가 묵직한 호텔방 문을 열면서 은수에게 먼저 들어가라 고갯짓했고, 은수는 사양 않고 들어가 불편한 하이힐에서 실내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내내 코트 아래에 숨어 있던 손이 신을 갈아신기 위해 하얀 벽을 짚는 걸 운호가 좇는다.

       

      좀 누워 있을게요.”

       

      은수가 킹사이즈 침대에 누워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은은한 조명도 지금의 자신에게는 눈부시기만 했다. 발소리도 없이 따라 들어오는 운호의 기척에 얼굴에서 손을 떼고 베개 아래 깊숙이 넣었다.

       

      난 하루 종일 씻고 왔거든요. 그러니까 채운호 씨 씻고…….”

       

      손으로 가릴 수 없어, 은수는 눈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얇은 눈꺼풀로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반사적으로 눈을 뜨자 운호의 얼굴이 가까이에 있다. 자신이 누워 있는 베개 옆을 한 손으로 짚으며 고개를 숙인다. 그에게서 따스한 내음이 풍겼다.

      향수는 아닌 것 같은데.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고 남자를 응시하며 어떻게든 다른 생각을 하려 했다.

       

      생리 중이라고 했어요?”

      …….”

      난 그런 거 안 가리는데.”

       

      그렇게 말하는 입술이 포식자의 그것처럼 호선을 그렸다. 그가 혀를 내밀어 스스로의 입술을 탐욕스럽게 핥았다. 사냥하기 전의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보고 입맛을 다시듯.

       

      블라우스 풀어봐요.”

       

      운호가 그녀와 시선을 마주하고서 속삭였다. 입술에 그의 속삭임이 닿는다. 그 자세 그대로 얼어버린 은수에게 다시 한 번 노골적으로 요구한다.

       

      내가 손대면 다 찢어버릴 거야. 유은수, 벗어봐.”

       

      이미 그의 시선은 그녀를 갈가리 찢어놓았다. 맨살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느낌이다.

       

      잠깐…….”

       

      은수가 한 손으론 입을 막고 한 손으론 그를 밀쳐냈다. 그리고 바로 욕실로 뛰어가 변기에다 게웠다.

       

      우욱!”

       

      어제부터 먹은 거라곤 아메리카노밖에 없어 쏟아낼 건 멀건 위액뿐이었다. 은수는 흡사 거식증이라도 걸린 양 변기를 붙잡고 헛구역질을 했다.

       

      ……. 그렇게 준비해주세요.”

       

      문 밖에서 운호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신경 쓸 여력이 없다. 변기 물을 내리고 입을 헹구며 거울을 보는데 창백하게 질린 여자가 그 안에 있다. 배는 아직도 아팠다. 은수가 어디로 새지 못하게끔 감시하던 기사는 약국에 들를 시간조차 주지 않고 곧장 이곳으로 그녀를 데려왔다.

       

      다 토했으면 나와요.”

       

      남자의 위험하던 목소리는 평상시대로 돌아와 있다.

      입가를 훔치고 욕실을 나서니 운호가 타이를 신경질적으로 죽 늘어트려 벗고 있었다. 그는 와이셔츠 단추를 두어 개 풀고서 은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다시 누워요.”

       

      은수는 욕실 앞에 선 채 의자에 걸터앉은 운호를 응시했다.

       

      안 잡아먹어. 앉으라구요.”

       

      그녀의 눈이 마치 사냥꾼에게 잡힌 토끼의 그것만 같아, 그는 웃으면서 나름 정중한 어조로 말했다. 은수가 조용히 걸어와 침대에 얌전히 눕는다.

       

      속이 안 좋았어요. 이제 됐으니까 해도 돼요.”

      이게 정말 까불고 있어. 무슨 십자군 전쟁이라도 나가? 그렇게 비장한 표정으로 나랑 전쟁이라도 치르자고?”

      그가 일어나선 손가락으로 은수의 콧등을 튕겼다. 따끔한 아픔에 그녀가 !” 하고 코를 쥐었다.

       

      생리 중인 여자는 안 먹어. 그것보다 생리통으로 끙끙대는 여자는 더 취향이 아니고.”

       

      일주일째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오늘 이 자리도 영감이 등 떠밀지 않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곱게 새 양복과 속옷까지 친히 들고 와 검찰청 앞에서 전화로 저를 불러낸 걸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 갈린다.

       

      네가 먼저 나가봐. 난 수줍음이 많잖아. 네 할머니 될 사람 얼굴 좀 보고 와.

       

      영감은 상대가 스물여섯 살이라고 했다. 노망난 거냐, 미쳤냐 삿대질까지 해대는 손자의 정강이를 걷어차며 천연덕스럽게 덧붙였다.

       

      네가 싫다면 새장가 안 간다니까.

       

      딩동. 벨 소리에 은수가 벌떡 일어났다. 일순 그녀의 얼굴에 스치는 두려움을, 운호는 재빠르게 눈치챘다.

       

      룸서비스예요.”

       

      그가 밖으로 나가 뭔가를 받아 왔다. 아직 침대에 앉아 있는 은수의 이마를 밀어 다시 눕힌다. 그리고 배에 수건으로 감싸인 것을 얹었다. 은수가 만져보려 하자 !” 소리를 내며 막는다.

       

      핫팩이에요. 약은 빈속이라 안 먹는 게 좋은데, 못 참겠으면 먹고.”

       

      그리고 옆 테이블에 알약 두 개를 놓는다.

      은수는 이 모든 걸 지켜만 봤다. 남자의 갑작스러운 호의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은수의 배에 그걸 얹어두고 그녀 옆에 누웠다.

       

      유 의원이 이번 대선에 출마한다더니 몸이 달았나 봐요. 생리 중인 딸까지 내보내는 것 보면.”

       

      명백한 비난이었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그는 파다한 소문을 듣지 못한 걸까. 딸이라…….

       

      친딸이 아니니까요.”

      ?”

      고아원에서 데려왔어요, .”

       

      남자가 제 옆모습을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신문에도 크게 났는데. 채운호 씨도 어렸을 때라 기억 안 나나 봐요.”

       

      대서특필이었다. 봉사단체에 정기후원을 하고 있는 유 의원의 선행을 사람들은 입을 모아 칭찬했다. 그게 다음 선거를 앞두고 라이벌에게 여론 면에서 밀리자 수를 쓴 것임을,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국민들은 몰랐다.

       

      그쪽이 범죄자도 아니고 내가 알 리가.”

       

      은수는 그의 직업을 알고 있어 작게 웃었다. 딱딱하게 뭉친 아랫배가 그가 올려준 핫팩으로 인해 따뜻해졌다. 생리통이 있다고 배에 이런 걸 놓아본 것은 처음이다. 운호의 옛날 애인이 생리통이 심했던 걸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옆을 보니 그는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채운호 씨.”

       

      고르게 울리는 숨소리가 그가 잠들었음을 알려주었다.

      말아 쥐고 있던 손을 펴자 손바닥이 뻐근할 정도다. 남자에게서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대답이 없어도 좋았다. 두 손을 살포시 배에 대자 핫팩의 열기가 손바닥에도 전해졌다.

       

      이거 꽤 따뜻하네요.”

       

      . .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진동했다. 그가 깰세라 옆을 바라봤지만 깊이 잠들었는지 미동도 없다. 은수는 서둘러 코트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곤 눈을 내리깔았다. 유 의원의 귀에 들어갈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일렀다.

       

      .”

       

      돌아오라는 소리일 게 뻔했다. 전화를 받으며 코트와 클러치를 챙긴 은수의 눈에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알약 두 알이 들어왔다. 손을 뻗어 그것까지 마저 챙겼다. 그가 깨지 않도록 가만가만 호텔방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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