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돌아왔다 - 이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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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도서출판 가하
작가명
이보나
발행일자
2018/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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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품 상세 설명

       

       

      감각적인 로맨스를 흡입력 있게 풀어내는

      이보나 작가의 아내가 돌아왔다

       

       

      이혼해요, 우리.”

       

      사랑 없는 정략결혼.

      결혼은 비즈니스일 뿐이라 생각했던 남자, 최무원.

      그런 그에게 이혼을 말한 여자, 이유래.

      3년이 지난,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낯선 관계로 재회하는데…….

       

      우리 연애할래요?”

       

      아내가 돌아왔다.

      그런데 이 여자, 그가 알던 예전의 그 여자맞아?

      멈추었던 심장이 뛰기 시작한다.

      하필이면 돌아온 아내에게.

       

       

       

       

       

       

      이보나

       

      로맨스 소설, 순정만화, TL을 쓰고 그리는 일체형 글 & 그림쟁이.

      머릿속 상상이 어떤 형태를 갖추고

      세상에 탄생하는 순간이 가장 짜릿합니다.

       

      https://blog.naver.com/libandt

       

      출간작

      메데이아의 축복

      그 남자, 처음, 로맨틱

      카인의 흉터

       

       

       

       

       

       

       

       

      자극적이고 아찔한 꿈의 상대가 하필이면 이혼한 전처일 것은 뭔가. 아무리 속궁합이 좋았다고 해도, 세상이 멸망해서 여자가 딱 하나 남았다고 해도 이건 아니지. 아니어야지. 자존심도 없냐?

      무원은 땀에 젖은 겉옷과 속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물을 머리부터 덮어쓰자 조금씩 이성이 제자리를 찾아간다. 그는 여느 때처럼 냉정하게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답은 곧 나왔다. 파일로의 새 담당자라는 여자가 문제였다. 하필이면 전처와 같은 이름, 이유래. 흔한 이름은 아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이름도 아닐 터. 그런데도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고작 이름 세 글자에 동요하는 자신이 우습다.

      아니, 어쩌면 동요가 아니라 발정인가?’

      샤워를 하고 나자 잠이 싹 달아났다.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서 그대로 출근을 했다.

      집무실 책상에는 남 실장에게 지시했던 파일로와 A사의 계약 관련 서류가 놓여 있었다. 무원은 직접 진한 커피를 한 잔 내린 뒤, 파일로의 서류부터 꺼냈다.

      파일로.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로버트 파일로가 4년 전에 창립한 신생 SPA브랜드. Zara, H&M, 유니클로로 대변되는 1세대 SPA브랜드에서 고급화, 특성화 전략을 더한 차세대 브랜드로 남성복에 특화되어 있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중저가 라인인 데다가 실용성과 고급스러움을 동시에 잡아낸 센스 덕에 미국 현지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에서도 빠르게 지점 수를 늘려가는 중이다.

      정상적으로 절차가 진행되었다면 성원백화점이 한국 1호 매장이 되었을 터였다. 사업 가치를 따지면 이대로 계약을 날리기엔 아까운 브랜드다. 영업부장이 계약해지를 두고 난감해하는 것도 당연했다. 무원은 첨부된 담당자의 명함을 꺼낸 뒤, 서류를 덮었다.

      하루 종일 바쁜 업무가 이어졌다. 다행히 문제가 된 언론기사를 대부분 차단하는 데 성공했고, 이어진 실무진 회의에서는 갑작스러운 계약해지로 리뉴얼에 들어가는 매장들의 대처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세 시간에 걸친 긴 회의를 끝내고 집무실로 돌아가자, 남 실장이 뒤따라 들어왔다. 그는 무원이 자리를 비운 동안 받은 연락과 메모에 대해 브리핑했다.

      “J물산 전무께서 주말에 라운딩 스케줄이 괜찮으신지 묻는 전화가 왔었습니다. 경제지인 U저널에서 이달의 경제인으로 대표님을 인터뷰하고 싶다는 요청이 왔었고, 본가의 성 비서님께서 연락하셨습니다.”

      표정 변화 없이 브리핑을 듣던 무원은 성 비서란 이름에 멈칫했다.

      본가의 성 비서, 성선희는 20년 넘게 아버지의 개인비서로 지내며 본가 살림을 맡아 하고 있었다. 세 번의 결혼과 한 번의 사별, 두 번의 이혼을 거친 아버지가 유일하게 오랜 세월 옆에 두는 여자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그녀와 무원의 관계는 애매하고 조심스러웠다.

      본가에 무슨 일 있습니까?”

      특별한 문제는 아니고 한번 들러주십사 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기다리신다고.”

      얼굴 본 지 오래되었으니 한번 들르라는 말이 그렇게 어려운 걸까. 직접 해도 될 말을 꼭 성 비서를 통하는 게 아버지다웠다.

      그는 수면부족으로 뻑뻑한 눈가를 누르며 업무를 지시했다.

      “J물산 전무에게는 다음으로 미루자고 좋게 전하세요. U저널과는 이미 성원건설 시절에 인터뷰했으니 이번에는 거절하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파일로 담당자와 약속 잡았습니까?”

      . 이틀 뒤로 정했습니다.”

      내일로 합시다. 시간 끌어 좋을 문제는 아니니까. 어차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그쪽 아닙니까?”

      메모를 하던 남 실장의 눈이 커졌다. 평소 급박하게 약속을 정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답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베테랑 비서답게 내색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로 정하겠습니다.”

      그 외에 내일 일정이 어떻게 됩니까?”

      오전에 임원회의가 있고 저녁에는 한경모직 한 회장님과 식사 약속이 있으십니다.”

      한 회장님과의 약속 취소하십시오. 컨디션이 안 좋습니다.”

      남 실장의 눈이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대표가 한경모직 한 회장과의 약속을 취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한 회장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성원백화점에 있어서나 무원 개인에게 있어서도. 남 실장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집무실을 나갔다.

      무원은 따로 빼두었던 파일로 담당자의 명함을 들여다보았다. 정확히는 이유래라는 이름을.

      스스로 생각해도 좀 미친 것 같지만 빨리 확인하고 넘어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명 어젯밤 같은 이상한 꿈을 꾸거나 며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게 뻔했다. 뚜렷한 원인 없이 며칠씩 잠 못 드는 날이 이어지는 것. 이혼한 뒤로 가끔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백화점을 나온 무원은 직접 차를 운전했다. 붐비는 도로, 정지신호에 멈춰 선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시계 안의 날짜로 향했다. 역시나.

      무관심한 아버지가 어쩐 일이신가 했더니 시간이 참 빠르다. 생일이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어머니의 기일이기도 했다.

      무원의 생모는 그를 낳다가 죽었다. 사인은 임신중독증. 세계적으로 매년 5만 명 이상의 산모가 사망하는 요인으로 알려진 질환이지만 남자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병이기도 했다.

      평생을 알 수 없는 병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무원의 아버지, 최중원 회장은 깊이 좌절했고 오래 방황했다. 두 번의 재혼을 하긴 했지만 성원그룹 내에서 불리한 제 입지를 보강하기 위한 비즈니스 차원이었고 자식도 두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자란 무원은 결혼에 대해 어떤 기대감도 가지지 않았다.

      결혼을 결정한 것도 철저하게 사업적인 계산 때문이었다. 무원이 원한 것은 후계자 경쟁에 이득을 줄 수 있는 처가였다. 그런데 차고 넘치는 혼처 중에서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키는 상대를 찾기가 힘들었다. 그가 원하는 집안에서는 사촌형인 이원을 원했고, 그를 원하는 집안과는 수지타산이 안 맞았다. 회장 아들이지만 장손이 아니라는 불리한 조건과 큰어머니인 윤은미 여사의 방해공작 때문이었다.

      유일하게 이원이 아닌 무원에게 관심을 보인 곳이 유성물산이었다. 당시 유성물산은 금싸라기 땅이라 불리는 P지구에 재개발 사업권을 가지고 있었다. 세계적인 불황에 따른 경제상황 악화라는 직격탄을 맞은 건설업계에서 P지구는 황금의 땅 엘도라도나 다름없었다. 어떻게든 성원건설을 키우고 싶었던 무원에게는 딱 맞는 혼처였다.

      물론 딱 맞는 혼처가 그를 찾아온 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여자는 유성물산 이 회장이 본처인 성북동 사모가 아닌 다른 여자에게서 낳은 혼외자였다.

      중매쟁이가 이 혼담을 가져왔던 날, 윤 여사는 우리 집안을 뭘로 보냐며 펄펄 뛰었다. 무원은 개의치 않고 혼담을 진행시켰다. 윤 여사를 제대로 엿 먹이는 혼사라는 데 뿌듯했고, 결혼식을 세 번이나 한 아버지를 둔 마당에 남의 집 가정사에 왈가왈부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첫 만남에서 아내 될 여자가 마음에 들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수수한 검은 원피스를 입고 나온 여자는 자신의 처지와 결혼의 의미를 정확히 알았다. 표현이 적고 무덤덤한 성격이니, 양쪽 집안의 간섭에도 그를 귀찮게 하지 않고 안주인 노릇을 할 것 같았다.

      결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내의 대학교 졸업에 맞춰 네 번 만나고 식을 올렸다. 네 번의 만남도 상견례, 결혼식과 예물, 신혼집 인테리어를 결정하기 위함이었다.

      늘 본가의 성 비서와 성북동 유성물산 사모가 동반했다. 대부분의 결정은 그들이 했고 아내가 될 여자는 지독할 정도로 의사표현이 없었다.

      결혼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생각한 대로 바라는 것도, 요구하는 것도 없는 아내였다.

       

      이혼해요, 우리.

       

      딱 하나, 빼고.

       

      ◇ ◆ ◇

       

      고급 주택과 카페가 늘어선 골목 몇 개를 지나 무원이 차를 세운 곳은 ‘Carpe diem’이란 간판 앞이다.

      볼 때마다 센스 없다고 생각하는 간판의 장소는 30년 지기인 우경이 운영하는 클리닉 겸 카페였다. 우경은 2년 전 정신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자마자 클리닉을 개원했다. 거기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카페를 함께 열었다.

       

      현대인이 앓는 온갖 질환의 90퍼센트가 왜인지 알아? 다들 Carpe diem(현재를 즐겨라)을 잊었기 때문이야.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을 롤모델로 삼은 우경은 술만 마시면 버릇처럼 그 말을 중얼거렸다.

      정원이 딸린 넓은 주택의 1층은 카페로, 2층은 클리닉과 개인공간으로 사용 중이었다. 무원을 비롯한 주위 사람 전부 우경이 1년 안에 손들고 다시 아버지 병원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모든 예상을 뒤엎고 우경의 클리닉과 카페는 제법 성업 중이다. 본업이야 원래 잘했고 부업인 카페 쪽은 사업 수완 좋은 매니저를 영입한 덕이다.

      어서 오세요.”

      정원 잔디에 물을 뿌리고 있던 매니저가 밝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무원의 모습을 확인한 그녀는 곧 입가의 미소를 거둬들였다. 큰 키에 쇼트커트가 잘 어울리는 여자의 유니폼에는 서준희라는 명찰이 달려 있었다.

      사장님은 2층에 계세요.”

      손님에게 인사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태도였다. 이런 식으로 싫은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여자는 하필이면 이혼한 아내의 친구다. 그것도 그냥 친구가 아니라 유일한 친구. 결혼할 때는 친구 보쌈해가는 도둑놈 취급을 하더니 이혼한 뒤에는 조강지처 내친 냉혈한 취급이다.

      무원은 잠시 눈살을 찌푸리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짜증스럽게 현관의 초인종을 연달아 누르자 우경이 놀란 얼굴로 문을 열었다.

      초인종 망가져! 어쩐 일이야?”

      곱슬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낀 우경은 아무리 봐도 의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팔자 편한 한량이면 모를까,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면서 의사가운조차 걸치지 않기에 더욱 그랬다. 성큼 안으로 들어간 무원은 진료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수면제 처방해줘.”

      얼마 전에 끊었잖아. 최근에 크게 스트레스 받는 일 있어?”

      무원의 머릿속에 한순간 유래의 이름이 떠올랐다 지워진다.

      신문 안 봤냐? 우리 백화점 1면에 나왔어.”

      그게 뭐? 예전에 성원건설 구조조정 때 생각 안 나? 그때는 매일 1면이었잖아. 매일 출근길 피켓 시위에다 차에 계란 한 판을 던져도 눈 하나 까딱 안 했던 너야. 그에 비하면 이번 백화점 사고는 스트레스 축에도 못 끼거든? 심한 거 아니면 운동이라도 하든가. 복싱 최근에도 해?”

      가끔. 오랜만에 스파링 한판 할까?”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한때 선수 하란 소리까지 듣던 놈과 스파링하다가 제사 치를 일 있냐. 거기다 저 몸 좀 봐. 아주 현역 해도 되겠네.”

      우경은 엄살을 부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수면제보다 안 그래도 너한테 연락하려던 참이었거든. 잘 왔어.”

      ?”

      어쩐지 불길한데. 우경은 어느새 의사의 얼굴을 하고 묻는다.

      너 대체 창규 형한테 왜 그래?”

      송창규는 요즘 제일 잘나가는 건축사무소 의 대표로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다. 우경의 낡은 이층주택을 세련된 카페 겸 클리닉으로 탈바꿈시킨 것도 모두 그의 솜씨였다.

      내가 어쨌는데?”

      어제 상담 왔는데 사람이 아주 반쪽이 됐더라. 너 때문에 환청이 들리고 원형탈모까지 왔대. 멀쩡한 한남동 집은 왜 자꾸 뜯어고치라고 하냐고. 지금 벌써 다섯 번째라며?”

      여섯 번째야.”

      우경은 무원이 정정해준 숫자에 한참을 멀뚱히 있더니 조용히 되물었다.

      미친 거지?”

      무슨 정신과의사가 미쳤단 소리를 이렇게 쉽게 하나?”

      넌 좀 들어도 싸. 왜 멀쩡한 사람을 고문하고 그래?”

      고문이라니! 한남동 집에 대해서는 무원이 창규보다 훨씬 할 말이 많았다. 못해도 백 마디쯤은 더.

      한남동 저택은 무원이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땅에 에서 심혈을 기울여 시공한 것이다. 독특하면서 고급스러운 외관과 인테리어로 세계건축상을 두 번 탄 것은 물론 국내외 크고 작은 건축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무원은 그곳에서 2년의 결혼생활을 했다.

      고문은 무슨. 스트레스는 내가 더 받고 있어. 멀쩡한 집 놔두고 호텔을 전전한 지 3년이야. 돈이고 시간이고 원하는 대로 다 맞춰줬으면 원하는 결과물을 내야 할 것 아냐.”

      아주 대단한 일이라도 맡겼다면 모르겠다. 두바이에 발전소라도 지으라고 했나? 무원이 에 맡긴 것은 고작해야 한남동 집의 리모델링이었다.

      우경은 한쪽 눈썹을 치켜올렸다.

      애초에 집 문제이긴 하냐?”

      무슨 소리야?”

      자꾸 애먼 사람 잡지 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집이 문제인지, 그 집에서 같이 살았던 사람이 문제인지. 이혼한 뒤로 너 좀 정상이 아니거든. 없던 불면증이 생기질 않나, 미친 듯이 집을 뜯어고치질 않나, 멀쩡한 건설사 두고 해보지도 않은 백화점을 한다고 고집을 부리지 않나.”

      무원은 미간을 구기며 반격했다.

      이혼 때문에 잘나가던 외과의 전공 때려치우고 정신과로 갈아탄 네가 할 소리는 아니지.”

      그렇다. 비슷한 구석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30년 지기들의 공통점은 바로 이혼남이라는 것이다.

      우경은 존스홉킨스에 다니던 도중 결혼을 했고, 졸업 무렵 이혼을 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전공을 외과에서 정신과로 바꾸어버렸다. 그걸로 모자라 지금은 심인성 기억상실이란 써먹지도 못할 분야에 심취 중이다.

      대대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나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형병원 병원장이면서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는 우경의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까무러치길 반복했다. 그런 주제에 누가 누구더러 정상 운운하는 건지.

      너하고 내가 같냐? 진지하게 충고하는데 카운슬링이라도 좀 받아봐. 내 은사님 소개해줄게. 트라우마 전문이셔. 너 이거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일 수도 있어.”

      고작 이혼이 무슨 트라우마야.”

      이혼은 무조건 변호사에게 상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거 아니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끝낸다고 끝내지는 게 아니거든. 가장 긴밀했던 연결고리 하나가 소멸하면서 크든 작든 생채기가 남는다고. 유래 씨 소식은 알고 있어?”

      몰라. 이혼하고 미국에 갔다는 것만 알아.”

      거봐. 넌 유래 씨 소식이면 무조건 회피만 하잖아.”

      여기가 할리우드야? 이혼한 전처가 뭐 하고 사는지 왜 알아야 하는데?”

      나는 혜원이랑 연락하고 잘 지내거든?”

      우경이 말하는 혜원, 그의 영원한 뮤즈. 스물다섯 살의 우경과 주위의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결혼하고 이혼까지 한 여자였다.

      왜 연락만 하냐? 아예 혜원이 카운슬링도 직접 해줄 것이지.”

      무원의 빈정거림에 우경은 대답이 없었다.

      뭐야, 이 얼굴은. 설마, 카운슬링도 해주는 건가? 무원은 30년 지기 친구를 처음 보는 외계 생명체처럼 바라보았다.

      너 설마 혜원이 만나는 건 아니지?”

      의사와 환자로 만난 거야. 요즘 새 드라마 들어갔잖아. 이런저런 소문에다 연기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렇다고 아무 의사한테나 갈 처지도 아니고.”

      무슨 오지랖일까. 전처의 스트레스까지 염려해주는 전남편이라니. 30년 지기 친구는 몸소 ‘We are the world’를 실천 중이셨다. 그러니 친구 전처의 친구를 매니저랍시고 데리고 있는 거겠지만.

      우경은 못마땅해하는 무원의 얼굴을 살피더니 안쪽 방에서 술병과 술잔을 꺼내왔다.

      수면제보다는 이게 낫지. 약은 못 주지만 술은 같이 마셔줄 수 있어. 네 얼굴 딱 봐도 약보다는 술이 더 고픈 것 같다.”

      의사 그만두고 점쟁이 하지 그래?”

      우경은 웃으며 1층 카페에 인터폰을 해서 적당한 안주를 준비해달라고 했다. 무원은 잔에 술을 따르며 우경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 언제까지 서준희 씨 데리고 있을 거냐?”

      내가, 내 돈으로, 내 직원 쓰는데 왜 참견이야?”

      몰라서 물어? 여기 올 때마다 그 여자가 나를 어떤 눈으로 보는지 알아?”

      어떤 눈으로 보긴. 친구 인생 망친 나쁜 놈으로 보겠지.”

      우경은 재미있다는 듯 킬킬거렸다. 빌어먹을. 남의 속내도 모르고 놀려먹는 우경을 노려보며 술잔을 들었다.

      시답잖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 잔, 두 잔 주거니 받거니 시작한 술자리가 제법 길게 이어졌다. 두 번째 술병이 바닥을 드러낼 때 즈음, 취기가 오른 우경이 소파에 몸을 젖혔다.

      , 최무원.”

      .”

      , 사실 유래 씨 봤어.”

      술잔을 들던 무원의 손이 멈췄다.

      누구를 봐?”

      너하고 결혼했던 이유래 씨.”

      어디서?”

      얼마 전에 세미나 있어서 중국에 갔다 왔거든. 워낙 미인이라 그런지 한눈에 알아봤지. 그쪽은 아마 나를 못 봤을 거야. 알아볼 상황도 아니었고. ……아이가 있더라.”

      ……아이가 있어?”

      갑자기 술이 확 깬다. 미국에 갔다던 사람이 중국에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아이가 있다고?

      장담하는데 최무원, 네 애는 아냐. 너희 이혼한 지 3년 넘었잖아. 그런데 아이는 아무리 잘 봐도 20개월? 그쯤 되는 갓난아이였어.”

      그럴 테지. 자신의 아이일 리 없다는 것. 누구보다 무원 자신이 잘 아는 사실이었다.

       

      그날은, 무원이 처음으로 성 비서에게 개인적인 부탁을 한 날이었다. 성북동 친정에 다녀온 아내가 감기몸살을 오래 앓았다. 처음에는 가벼운 감기몸살인 줄 알았는데 일주일이 지나도 회복될 기미가 없었다. 새벽녘, 옆에서 나는 앓는 소리에 잠을 깬 무원은 아내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야위었군.’

      어젯밤, 별생각 없이 끌어안았던 몸은 한 줌도 안 되게 가늘었다. 도우미들 말에 의하면 식사도 제대로 못 하고 토하기 일쑤라고 했다. 큰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닐까. 출근을 해서도 찜찜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고민하다가 성 비서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집사람이 요즘 몸이 안 좋습니다. 감기몸살이 지나치게 길어지는 것 같은데 한번 들러서 봐주셨으면 합니다. 임 박사님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해보든가요. 이참에 아버지 보약 짓는 곳에서 집사람 것도 제일 좋은 걸로 해주세요. 식사도 영 못 하는 모양인데, 일산댁 시켜서 입맛 날 만한 음식도 장만해주시고요.

      가만히 무원의 이야기를 듣던 성 비서가 입을 열었다.

      - 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작은 사모님…… 임신하신 것 아닙니까? 이제 슬슬 아이가 들어설 때도 된 것 같아서요.

      임신? 결혼한 지 2년쯤 되어가니 사방에서 아이 소식 없냐고 물어대는 것이 귀찮기는 했지만 생각도 못 한 단어였다.

      아닙니다.

      - 어떻게 단언하십니까?

      그 사람, 피임약 먹고 있습니다.

      신혼여행지였던 두바이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면서 무원은 아내에게 말했다. 아이를 원하지 않으니 피임을 하라고.

      정략결혼이란 이유만은 아니었다. 얼굴도 모르는 생모를 임신중독증이란 병으로 잃었던 만큼 무원에게 있어 임신이란 두려운 영역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하는 시기에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아버지는 아들에게도 평생 데면데면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관심을 끌어보고자 이런저런 사고를 치기 시작했고. 그의 성장과정은 아버지의 애정에 대한 갈구와 반항, 체념으로 요약된다.

      그렇게 자란 아이가 제대로 된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따라다녔다. 후계자 문제야 장손이 알아서 할 테니 자신과는 상관없다.

      - 100퍼센트 피임은 없습니다. 특히 경구피임약의 경우는 시간을 놓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제가 일단 한남동 집에 들르겠습니다.

      성 비서와의 통화를 끝낸 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임신이라…….’

      100퍼센트의 피임이 없다는 것은 그도 안다. 아이가 생겼다면 낳아야겠지. 두렵다는 생각과 동시에 궁금하기도 했다. 그와 아내를 닮은 아이는 어떤 모습일지. 사내아이일지, 계집아이일지,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그때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무원은 황급히 통화버튼을 눌렀다. 휴대전화에서는 언제나처럼 침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저예요. 지금 통화 가능할까요?

      그래. 무슨 일이야?

      - 혹시 오늘 집에 일찍 들어올 수 있나 해서요. 할 이야기가 있어요. 중요한 이야기예요.

      결혼 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늘 지독할 정도로 말이 없는 여자가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 것은. 무원의 머릿속에서 예정된 회의와 저녁 약속이 차곡차곡 지워졌다. 비서실장은 울상을 지으며 예정된 일정을 전부 취소시켰다.

      그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내를 찾았다.

      할 이야기가 뭐지?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일산댁 아주머니가 해물탕 준비하고 가셨어요.

      그녀는 평소처럼 드레스룸으로 따라와 그의 옷을 받아들고 가지런히 걸었다. 중요한 이야기라더니 왜 이렇게 뜸을 들이나. 무원은 조금 불만스럽게 옷을 벗고 손을 씻었다. 식당으로 가자, 식탁에는 수저가 한 벌만 놓여 있었다.

      나 혼자 먹으라고?

      속이 별로 안 좋아서요. 미안하지만 혼자 드세요.

      하는 수 없이 무원은 수저를 들었다. 평소에 무척 좋아하는 해물탕이지만 맛을 모르겠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의 신경은 자꾸만 맞은편에 앉은 유래의 배에 쏠렸다. 최근 유래는 식사 중에 헛구역질을 하거나 구토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게 입덧이었던 모양이다.

      낮에 성 비서에게 좀 들르라고 했는데.

      . 그렇지 않아도 오셨기에, 같이 임 박사님 병원 다녀왔어요.

      평소와 달리 급하게 밥그릇을 비우고 수저를 내려놓자, 유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장했어요? 좀 더 가져올까요?

      아니, 됐어.

      그럼 과일 내올까요? 오렌지가 아주 달아요.

      유래는 다시 주방으로 가려는 듯 몸을 일으켰다. 지금 밥이나 오렌지가 중요한 일인가? 무원은 남의 속도 모르고 자꾸 뭔가 내오려는 여자의 팔을 붙들었다.

      됐으니까, 하려던 이야기 해.

      ?

      중요한 이야기라며.

      그가 채근했다. 유래는 잠시 선 채로 무원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잡힌 팔을 뺐다.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유래는 곧장 침실로 향했다. 무엇인가를 가지러 가는 듯한 모습에 무원은 설레는 마음 반, 초조한 마음 반으로 기다렸다. 진단서? 아니면 초음파 사진?

      그러나 잠시 뒤, 그녀가 내민 서류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협의이혼신청서.

      유래는 담담하게 시선을 들며 입을 열었다.

      이혼해요, 우리.

      입덧이라 생각했던 증상은 스트레스성 위염이었다. 성 비서는 최근 유래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스트레스? 당연히 받았겠지. 혼자 이혼서류를 준비할 정도면.

       

      그때도 없었던 아이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무원은 힘들게 입 밖으로 말을 밀어냈다.

      남편은? 남편 봤어?”

      못 봤어. 그래도 아이가 있으니 결혼하지 않았을까.”

      결혼을 했다, . 술기운이 단번에 밀어닥치는 기분에 눈을 감자, 하늘빛이 눈앞에 되살아났다. 과음을 한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신 것이 언제였더라? 이혼서류를 법원에 제출하고 한 달의 숙려기간이 끝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술이 센 편이 아니라 늘 조심하는데 그날따라 식사에서 이어진 반주에 절제를 잃어버렸다. 무원은 무작정 술기운에 기대어 준희의 집에서 지내는 유래를 찾아갔다. 그녀는 이혼서류를 내놓은 다음 날,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캐리어 하나만 들고 집을 나갔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아내가 사라진 한남동 집이 그에게는 너무나 낯설었다. 달래든, 설득을 하든, 손목을 붙들고 끌고 가든 한남동 집으로 데려올 생각이었다. 다음 일은 그때 생각하자.

      그러나 준희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참을 아파트 입구가 보이는 놀이터에서 서성거리는데 익숙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늘색 원피스를 입은 아내가 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저런 색의 옷도 있었나?

      결혼생활 내내 그녀는 검은색이나 흰색 옷만 입었다. 거기에 어쩌다 회색이나 아이보리가 포인트로 더해지는 정도였다. 그런데 하늘색이라니 상상도 못 했다.

      유래를 부르려던 무원은 우뚝 멈춰 섰다. 상상도 못 한 일이 하나 더 있었다. 아내의 옆에 남자가 있었다. 훤칠하게 큰 키에 다정한 인상의 남자와 유래는 차에서 내려 이야기를 나누었다.

      잠시 후, 유래는 남자에게 손을 흔들었다. 2년을 남편이란 이름으로 산 무원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웃는 얼굴로.

      문제 될 건 없었다. 조건을 보고 한 정략결혼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못 박았던 사항 아닌가. 상대의 집안이나 명예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애인을 두어도 상관없다고. 그럼에도 욕지기가 올라왔다. 무원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 ◆ ◇

       

      머리가 지끈거린다. 모니터의 차트를 보던 무원은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잔뜩 취해서 주량을 오버한 대가는 지독한 두통이었다. 뒤집어진 속은 옵션이었고.

       

      , 최무원. 정신 차려. 아무리 한남동 집을 뜯어고치고 큰어머니를 들들 볶아도 끝난 건 끝난 거라고. 이제 그만 인정해.

       

      30년 지기는 정확히 무원의 속내를 꿰뚫고 있었다. 무한재생버튼을 클릭한 것처럼 우경의 말이 머릿속을 떠돌았다. 아이가 있어? 결혼을 했다고? 참다못한 무원은 서랍에서 아스피린을 꺼내 씹었다.

      - 파일로 담당자인 이유래 씨 오셨습니다.

      약기운이 퍼질 때까지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무원은 시계를 확인했다. 어느새 약속시간이었다.

      그는 들어오라고 한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빨리 동의서에 사인이나 받고 끝내야겠다. 이 이름과 더 이상 엮이는 일은 사절이다.

      집무실의 문이 열리고 막내인 정 비서가 들어왔다. 뒤를 따라 파일로의 담당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여자가 입고 있는 연하늘색의 블라우스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무원은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꿈속에서, 아찔한 절정을 맛보며 몇 번이나 마주쳤던 눈이다. 깊고 깊게, 그를 안고 품었던 눈. 이번에는 꿈이 아니라 진짜였다. 새하얀 피부에 동그란 이마, 깊은 눈매와 가느다란 목선, 오뚝한 콧날.

      무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긴 생머리가 웨이브가 들어간 세미롱으로 바뀐 것만 빼면 기억 속 그대로 아내가 돌아왔다.

       

      하필이면 그 망할 하늘색 옷을 입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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