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환향 - 유엽미

상품 옵션
소비자가격
13,000원
적립금
585원
포인트
117point
출판사
청어람
작가명
유엽미
발행일자
2019/02/01
판매가격
11,700
      총 상품 금액 0
      특이사항
      최상급 책입니다.
      바로구매 장바구니 위시리스트

      Product info

      | 상품 상세 설명

       

       

      나라가 짓밟혔다. 왕이 제 백성을 포기했다.

      재신들과 대군들 또한 민초들을 외면했다.

       

      뺨을 타고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끌려가다 보면, 어제 같은 일을 또 겪지 말란 법이 없었다.

      설령 겁탈당하지 않고, 배척과 추위, 굶주림을 이겨내고 청에 도착한들 그것은 그것대로 문제였다.

       

      네가 내게 온다 하면 생각을 달리하겠다.”

       

      기연은 손을 내민 오랑캐를 올려다보았다. 고향 땅을 짓밟은, 사람도 능히 잡아먹을 성싶은 눈빛을 해 보이던 오랑캐.

       

      오랑캐, 남자.

       

      저 손을 잡아야 할까? 잡아도 될까?

      고민, 결심, 번복이 되풀이되는 동안 새벽어둠이 옅어졌다.

      이윽고 붉은 해가 타오르며 동이 텄을 때, 두 사람의 살결이 스쳤다.

       

       

       

       

       

       

      유엽미

       

       

       

       

       

      163611월 청나라, 허투알라(赫圖阿拉)

      타타라 잉굴다이는 말고삐를 잡아당겨 한 사저의 대문 앞에 멈춰 섰다. 그는 형을 만나기 위해 묵던(선양)에서 이곳 허투알라까지 전속력으로 말을 몰아 왔다.

      형 타이바이는 오래전, 명과의 묵던 전투를 치르는 와중 말에서 떨어져 허리 부상을 당한 이후 이곳에서 조용히 살고 있었다. 허투알라는 태조 누르하치께서 대청을 일으키신 곳이자 대청의 첫 번째 수도였다. 게다가 타타라 가문 조상들이 대대로 살아온 자쿠무와 가까우니 노년을 보내기에 이만한 곳도 없었다.

      방문객의 기척을 눈치채 쏜살같이 튀어나온 마구간지기가 고삐를 붙들며 인사했다.

      대인, 오셨습니까.”

      고개를 끄덕인 잉굴다이는 대문을 넘어 사저 안에 들어갔다. 안뜰에 서 하늘을 올려다보던 젊은 사내가 잉굴다이에게 눈길을 던졌다. 안개가 낀 산속 같은 젊은 사내의 고요한 눈동자와 웅장한 파도 같은 잉굴다이의 눈동자가 마주쳤다.

      숙부님.”

      룽거, 너도 예 와 있었구나. 미리 형님께 인사를 하러 온…….”

      말끝을 흐린 잉굴다이의 입매가 굳었다. 조카의 늠름한 얼굴에 떠오른 근심을 읽은 그는 부러 엄히 말했다.

      룽거, 내달에 대청국은 다시 한 번 조선국을 침공한다. 준비는 모두 끝났다. 돌이킬 수 없어. 알잖느냐?”

      저는 조선국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너는 내 조카다. 형님과 나를 뒤이어 가문의 수장이 될 대장부다. 그런 네가 어찌 불명예스러운 말을 하느냐?”

      …….”

      또한 나만큼이나 조선국을 잘 아는 너는 조선국 침공에 반드시 필요한 인재다. 그러니 무기력한 태도를 보이지 말고 자부심과 열의를 가져라.”

      조선국을 잘 알지 않습니다. 잘 안다 착각했을 뿐입니다.”

      ……룽거.”

      저는 전쟁도, 조선국도 지겹습니다.”

      허튼 소리!”

      분노가 깃든 고함이 울렸다. 허리에 복대를 두른 타이바이가 지팡이에 기대 처소 밖으로 나오며 아들을 타박했다.

      네가 만주인이 맞느냐? 싸우는 것이 그리 무섭더냐? 그것도 몽골인도 아닌, 작은 땅에 사는 조선국 놈들이 무서워 계집만도 못한 소릴 하느냐?”

      타이바이는 냅다 지팡이를 휘둘러 아들의 허벅지를 후려쳤다.

      아니면 네놈, 조선국 놈들이 아니라 조선국 계집이 무서우냐? 이 못난 놈 같으니!”

      분이 풀리지 않은 아비는 아들의 뺨을 쳤다. 룽거의 입술에서 흘러내린 피가 아래턱을 타고 땅에 떨어졌다.

      형님, 고정하십시오!”

      잉굴다이가 부자 사이를 가로막았다. 그러나 타박은 멈추지 않았다.

      ? 조선국에 가고 싶지 않아? 어디 가서 기인(旗人)이라 하지 마라, 한인 것들이 비웃을 테니까.”

      형님, 그만하십시오. 룽거는 출전을 앞뒀습니다. 지금 비록 형님께서 화를 내시지만, 마음이 가라앉으면 필시 오늘 일을 후회하실 겁니다. 룽거가 조선국에 나가 있는 동안 얼마나 미안해하려 이러십니까.”

      그 계집의 망령이 쫓아올까 봐 무서워 조선국에 가기 싫다 하는 저런 겁쟁이 놈에게 나는 미안해하지 않을 거다!”

      아버님, 그 얘기는 그만하십시오!”

      뭐야? 아비한테 소리치는 패악은 어디서 배웠느냐? 한인들에게 배웠더냐?”

      숙부님의 아들 잉수도, 아버님의 장자 랑수 형님도 전쟁터에서 죽었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부상 탓에 반 시진을 서 있기 힘든 몸이 되셨습니다. 그런데도 두 분, 전쟁이 지겹지 않으십니까.”

      닥치어라, 닥쳐! 네 형을 핑계 삼을 생각 말고 어찌하면 전장에서 공을 세울지 계획이나 세워라! 그리고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 네놈 집은 묵던에 있으니 내 집에서 썩 꺼지고 돌아가란 말이다!”

      마지막으로 외친 타이바이가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침묵하는 조카를 바라보는 잉굴다이의 눈에 안쓰러움이 비쳤다.

      룽거, 나라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가 즐겁겠느냐.”

      …….”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폐하의 욕심을 위해서겠지요.”

      그런 말은 절대 해선 안 된다. 너는 젊으면서 생에 미련이 없느냐? 네 형과 내 아들의 몫까지 더해 오래도록 살아야 되지 않겠느냐.”

      숙부님께서 말씀하신 대의를 위해 청군은 다시 조선인들을 죽이고 포로 삼고 겁간할 테지요.”

      …….”

      먼저 묵던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잉굴다이는 대문을 나서는 조카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163612월 조선, 개성

      진작 첫눈을 뿌린 겨울 날씨가 매서웠지만 기연은 추운 줄을 몰랐다. 쏟아지는 발길질을 방 한구석에서 몸을 웅크리고 받아내던 기연이 휘청거리더니, 아정이가 뒷머리를 부딪쳤던 바로 그 이불장 모서리에 이마를 박았다. 기연은 뭔가가 이마로부터 흘러내리는 것을 눈치챘다.

      우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녜요. 떠나야 해요. 앞집 사는 강 씨 말이 곧 전쟁이 날 거래요.”

      이년이 또 남자를 홀리고 다녔어?!”

      …….”

      국조의 정신머리에 전쟁은 없었다. 첩실이 앞집 강 씨, 다른 외간 사내와 말을 붙였다는 사실만이 떠돌았다. 금세 방 밖에 나갔다 들어온 국조는 움켜쥔 빨랫방망이로 소실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 아픔과 놀람이 뒤섞인 신음이 울렸지만 매질은 점점 거세졌다.

      , 무서우냐? 임금님이 사시는 한양이 이 개성 바로 밑인데 더러운 오랑캐들이 여기까지 내려오게 할까 봐?”

      지난번에도 오랑캐들이 개성에 내려올 뻔했다고, 개성 바로 위 평산에서 겨우 멈췄다고 했잖아요.”

      지난번 오랑캐들이 쳐들어왔을 때, 기연은 국조의 첩실이 아니었고 개성에 있지 않았었다. 당시에는 저 아래 남쪽, 전주에 있었다.

      겁 많은 년이 개성에는 왜 왔으며 다른 놈팡이한테는 어찌 치근댔대? 서방한테 도망가자 부탁하면서 한 번을 서방님이라 안 부르는 버르장머리는 뭐고?”

      서방님은 무슨. 개새끼만도 못한 게.

      욕지거리를 삼키고 조용히 있는 기연의 헝클어진 머리채를 붙잡은 국조는 곧장 마른 몸뚱이를 반대편 벽 쪽으로 내던졌다. 나동그라진 기연의 배를 국조는 숨 돌릴 틈 없이 걷어찼다.

      너 이년! 남필형 그놈과 뭔 짓 했어? 아정이 그 새끼 씨였던 거 아니야?”

      기연은 고개를 치켜들어 국조를 노려봤다. 매끄러운 비단옷이 못난 인성을 포장하지는 못한다. 송국조 놈은 살인자요, 망나니요, 오랑캐보다 상스러운 자다.

      흘러내린 머리칼 사이로 빛나는 기연의 두 눈에서 욕설을 읽은 국조가 얼굴을 울긋불긋 붉혔다.

      이년이 감히 누구를 그 따위로 홉떠 봐?!”

      철썩 소리가 울렸다. 퉤 방바닥에 침을 뱉은 국조가 밖으로 사라졌다.

      혼자 남은 기연은 뜨거운 뺨을 감싸 쥔 채 웅크려 앉았다. 맞은 곳이 아파서인지 억울하게 죽은 아정이가 생각나 분해서인지, 몸에 경련이 일었다.

      경련이 가라앉자 걸레로 바닥에 흩뿌려진 침을 닦은 기연은 대충 머리를 가다듬었다. 며칠 전, 시집 간 딸을 보러 안주에 갔다 온 앞집 강 씨가 분명 말했다. 전쟁이 일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안주는 구 년 전 오랑캐들에게 이미 짓밟힌 전적이 있기에 그곳 사람들은 전쟁 기미에 민감하다 했다. 만약 안주에 떠도는 소문이 사실이라 조만간 진짜 전쟁이 일어난다면 큰일이었다. 이대로 앉아 죽을 수 없었다. 어미처럼, 언니처럼, 아정이처럼, 허무하게 죽어선 안 됐다.

      별당에서 나온 기연은 안채로 향했다. 지나다니는 하인들이 또 맞았나, 불쌍하다, 속으로 혀를 차는 것이 느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마님.”

      …….”

      마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

      형님,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제야 안채 방문이 열렸다. 기생 부럽지 않게 화려히 차려입은 순명이 기연을 노려보며 밖에 나왔다.

      누가 형님이야?”

      순명은 잠깐 기연을 살펴봤다. 한쪽 눈두덩은 멍이 들어 퉁퉁 부었다. 이마에 덜 닦은 핏자국이 남았다. 어떻게든 추스른 흔적이 보이지만 그럼에도 머리가 엉망이었다.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순명은 다시 쏘아붙였다.

      주제를 알아야지, 첩실이 정실인 나를 언니 대하듯 해? 몇 번씩이나 그러지 말라 했는데 아직까지 말귀를 못 알아들은 걸 보면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거지? 그렇지?”

      그게 아니라 제가 형님이라 불러야 화를 내시면서도 나오시니까요.”

      뭐야? 이 건방진 계집이, 나한테도 맞아야 정신 차릴래? 어디서 말대꾸야?”

      ……마님, 북쪽에 전쟁이 날 거란 소문이 돈답니다. 남쪽으로 피난을 가야 해요. 서방님께서 떠나실 기미가 없는 것 같아서…… 마님께서 말씀 좀 잘 해주세요.”

      그런 소문이 한두 해 있었어? 왜놈들과 오랑캐들한테 당한 기억 때문에 조선에는 지난 수십 년간 걸핏하면 전쟁 날 거란 소문이 떠돌았어!”

      앞집 강 씨가 이번에는 정말일 거 같다 했어요.”

      강 씨가 무당이야? 하여간 귀만 얇아서는. 지난번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피난을 갔다가 얼마나 집안이 손실을 입었는지 알긴 해?”

      저는 시집오기 전이었으니 모르지요.”

      그때는 나도 시집오기 전이었어. 그래도 시어머님과 하인들, 서방님 얘기를 들었을 거 아니야?”

      …….”

      대충 여비를 챙겨 한양에 내려갔는데 오랑캐들은 개성까지 오지도 않았지, 집에 돌아오니까 곳간이며 돌아가신 시아버님과 시어머님 방 귀중품들은 물론이고 하다못해 부엌 부지깽이까지 훔쳐 갔지, 뉘인지 모를 작자들이 원래부터 저들이 이 집에 살았다 억지를 부렸지, 정말 끔찍했다 누누이 말씀하셨잖아. 말씀 안 듣고 졸았니? 아니면 귀도 장식이니?”

      듣는 것과 실제로 겪는 것은 다르니까요.”

      입만 살아서는. 여하간 그런 일을 겪고도 시어머님과 서방님이 쉬이 피난을 가시겠어?”

      아무렴 재산이 사람 목숨보다 중하지 않잖아요.”

      네 아비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던데?”

      …….”

      그리 겁나면 남필형한테 가 도망가자 매달리든지.”

      그 사람과 제가 무슨 상관이라고요.”

      ? 남필형이가 그랬잖아, 네가 저한테 치근댔다고.”

      …….”

      거짓말. 순 거짓말. 기연은 억울함을 삼켰다. 남필형이 얼굴을 붉히며 함께 송악산에 오르지 않겠냐.’ 묻는 모습을 동네 사람 누군가가 봤고, 그것을 송국조 개만도 못한 놈에게 일렀다. 송국조가 바로 남필형에게 따지러 갔더니 남필형 그 뻔뻔스러운 작자는 네 첩실이 내게 먼저 눈웃음을 쳤다 거짓말을 했고, 이후부터 호된 구타가 시작됐다. 그렇지만 정말이지 남필형이 거짓말을 늘어놓은 거였다. 기연은 맹세코 눈웃음을 친 적이 없었다.

      그 사람이 서방님에게 맞을 게 무서워 거짓말을 한 거예요.”

      순명은 귀찮은 파리를 쫓듯 손을 내저었다.

      알 게 뭐야. 그만 귀찮게 하고 얼굴 보이지 마.”

      …….”

      기연이 버티고 있자 순명은 짜증스럽게 말했다.

      , 알았어, 알았어. 네가 듣고 싶은 얘기를 해줄게. 전쟁 나 죽을 걱정 할 필요 없어. 서방님도 주변 소식통에 귀를 기울이고 계시니까 상황이 진짜 심각해지는 듯싶으면 밑으로 내려가실 거야. 안 그래도 제일 값나가는 물건들 위주로 짐을 몇 개 싸실 거라 이틀 전에 말씀하셨어. 이제 됐지?”

      홱 돌아선 순명이 안채 방 안으로 들어갔다. 기연은 더 토를 달아 봐야 소용이 없을 듯해 사저 밖에 나왔다. 때마침 절뚝거리며 앞을 지나가던 박 씨 부인이 기연을 발견해 가까이 다가왔다.

      또 맞았어요?”

      …….”

      …….”

      두 여자는 서로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박 씨 부인의 이름이 무엇인지 개성 사는 누구도 몰랐다. 동네 누군가가 이름을 물어보면 부인은 그저 한 번 웃고 말았다. 그러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어도 암암리에 소문이 퍼지길, 사람들은 박 씨 부인이 지난번에 오랑캐가 쳐들어왔을 때 청나라에 끌려갔다가 친정에서 값을 치르고 데려온 여자라 했다. 또한 지아비와 시부모에게 정절을 잃었다 쫓겨나, 친정 부모와 이 개성에 거처를 옮겨 온 거라 했다. 이러한 소문은 부인과 식구들이 통 해명을 하지 않아 기정사실화된 지가 오래였다.

      기연은 내심으로 떠도는 소문을 믿었지만 그렇다 해서 다른 동네 사람들처럼 박 씨 부인을 속으로 더럽다 여기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할 여유가 없었다.

      박 씨 부인은 조심스럽게 소매 끝으로 기연의 이마에 남은 핏자국을 닦아내며 말했다.

      저는 부모님께 그쪽이 제게 해준 이야기를 말씀드렸어요. 부모님께서 그러면 혹시 모르니 아래로 내려가자 하셔서 돌아오는 새벽에 떠날 예정이에요.”

      저희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맞고 살 바에는 차라리 우리랑 가요, 그럼.”

      …….”

      몸 귀한 줄 모르고 언제까지 맞고 살려고요.”

      일단은 아버지한테 가보려고요. 들어가세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인 박 씨 부인을 뒤로하고 기연은 송악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Product Review

      | 상품 후기
      전체보기
      review 작성 폼
      review board
      이 름 :
      :      
      내 용 :
      후기쓰기
      review 리스트
      이름
      내용
      평점
      날짜

      Product QnA

      | 상품 문의
      글쓰기 리스트
      QnA 리스트
      등록된 문의가 없습니다.

      Product Review

      | 상품 후기
      review 리스트
      등록된 리뷰가 없습니다.


      비밀번호 확인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