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이 일으킨 전쟁으로 가문을 잃은 변방 호족의 딸, 공려화.

가족을 전부 잃은 려화가 살기 위해 택한 곳은 결국 궁궐이었다.

황궁의 궁녀가 되어 살아가던 려화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황제의 호위 무사, 도휘강과 벗의 연을 맺게 된다.

위험한 비밀까지도 나누는 가장 친한 벗이 된 두 사람.

시간을 따라 스며들듯 려화는 휘강을 다른 마음으로 품게 되고.

어느 날, 숨겨 두었던 자신의 속내를 풀어놓는데…….

“난 폐하가 싫어. 폐하께서 일으키시는 전쟁이 싫어.

낮은 자리의 사람들을 괴롭게 만드는 그분이, 정말 싫어.”

그러나 말끝에 보이는 것은 비밀 친구 도휘강이 아닌

분노한 미치광이 황제 도휘강이었다.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를 만족시켜 봐라.”

“그것이……. 그것이 어찌 폐하를 능멸한 저의 벌이 됩니까?”

“짐이 만족하지 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거거든.

네 말에 따르면 무고한 자들의 목숨을 앗아 갈 것이다.”

바다뱀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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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거 재밌었는데…….’ 하고 떠오르는 글을 쓰는 게 꿈입니다.

“자결이 아니라면 법전에서 이르는 형벌을 주십시오.”

“끝까지 죽음으로 도망할 생각만 하는군.”

휘강의 턱이 파르르 떨렸다. 잠시 눈을 감았다 뜬 그의 얼굴에,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매력적인 미소가 깃들었다.

그가, 만인지상의 황제가 죄인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다.

죽이지 않고, 계집을 괴로워 울부짖게 할 방법이 떠올랐다. 더하여 제 알 수 없는 마음을 풀어놓고, 혈기를 눌러 주던 이 계집을 제대로 활용할 방법이기도 하였다.

그러니 휘강의 입에 걸린 미소는 만족의 미소였다.

“너, 전쟁이 두렵다 하였지? 그로 죽는 사람들을 가엾게 여기는 것도 같구나.”

려화에게는 휘강의 미소가 잔인하게만 보였다. 그가 자신의 속을 모두 아는 것만 같았다. 이 죽음이, 자신에게 사죄하기 위함이 아닌 것을 말이다.

려화는 모진 목숨을 직접 끊어 내며 제가 죄를 지은 많은 것들에 사죄하려 하였다. 다만 그 모든 것들에 휘강만큼은 포함되지 않았다. 그에게 지은 죄는, 진심으로는 죄가 아니라 여겼기에 그러했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 낸 가족들, 그밖에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자들, 희망을 잃고 절망만을 배운 모든 이들.

자신의 속죄는 그들을 위한 것이었기에.

전쟁을 일으킨 전쟁광, 그럼에도 폭군이라는 말은 꺼내지조차 못하도록 포악한 자. 단지 성군의 가면을 뒤집어썼을 뿐이었는데 그것을 알지 못했다. 해서 눈앞의 황제를 사랑하였다.

그가 황제인 것을 알고 연모의 마음을 품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족을 모두 죽음으로 몰고 간 전쟁을 일으킨, 자신의 인생조차 수렁으로 내몰 뻔한 전쟁을 이어 간 남자를 한눈에 알아보지 못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큰 죄다.

더욱이, 그런데도 불구하고. 내심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사금파리처럼 가라앉힌 그대로 전부 버려 내지 못하는 자신은 누구보다 큰 죄인이었다.

그러니 이 목숨 가벼이 버리고 윤회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에 존재한 바 없는 자가 되려 하는 것인데.

그것을 막은 휘강의 미소가 이리 진득하니, 려화는 자신의 이 깊은 속이 그에게 전부 읽힌 것만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지금의 휘강이 자신을 앞에 두고 이리 웃을 수 있을까. 그제야 려화는 지금의 상황이 두려웠다.

“대답해. 너는 전쟁으로 죽는 이름 모를 사람들조차 가여우냐?”

휘강은 답을 알면서도 재차 물었다. 휘강은, 감히 자신을 속였을지언정 려화가 타인의 아픔이나 고통에 민감하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라면 응당 가여움을 느끼겠지요.”

려화는 짧게 말했으나, 휘강은 그 뒤에서 당신은 그렇지 않겠지만. 하는 행간을 읽었다. 더 화낼 것도 없었다. 그러니 휘강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그의 속은 모르나 여태껏 황제가 미소와 함께 벌인 일들을 다 아는 신료들은 더욱이 눈치를 살피기에 바빴다.

“사람이라면 응당 그럴 것이다? 당장 이곳에 있는 놈들만 해도 제 목숨만 귀한 줄 알고 날뛰는 자들이 천지다. 네년처럼 짐을 제한 모든 이를 박애하는 자들은 흔치 않아.”

황궁이 복마전이라 하였으니, 그 말을 한 자가 바로 휘강이니 틀리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 모두가 어찌 타인의 아픔까지 전부 제 것인 양 굴겠는가.

모두가 이타적인 이들뿐인 세상이었더라면, 처음부터 려화가 전쟁으로 이리 아픔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려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휘강이 대관절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이기에 이리 뜸을 들이나.

그의 입술만을 쳐다보았다.

감히 황제의 용안을 똑바로 보았다.

“네년에게 내릴 아주 재미있는 벌이 생각났다.”

휘강이 손을 뻗어 려화의 턱을 거칠게 잡아채었다. 그대로 들어 올려 좌우로 휙휙 돌려보기까지 했다. 비참함과 수치심이 섞여 려화의 얼굴이 붉어졌다.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를 만족시켜 봐라.”

“그것이……. 그것이 어찌 폐하를 능멸한 저의 벌이 됩니까?”

“짐이 만족하지 못하면 전쟁을 일으킬 것이거든. 네 말에 따르면 무고한 자들의 목숨을 앗아 갈 것이다.”

휘강의 잔인한 말에 려화의 얼굴이 삽시간에 희게 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