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황제를 모욕한 죄로 황제궁 곁에 유배된 려화.

탱자나무 가시로 두른 유배지에서는 밤마다 신음이 끊이질 않는다.

거칠고 모진 말과 행동으로 려화를 대하는 휘강이지만,

그에게서 언뜻 보이는 다정함은 려화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폐하께서는 절 죽이지 않으실 거예요.”

“건방진 계집.”

“아니, 절 죽이지 못하실 거예요.”

한편 조모인 태황태후는 노 승상의 계략에 빠져

휘강이 려화와의 사이에서 후사라도 보게 될까 걱정하여

후궁 후보를 들이라 명한다.

“첩지를 내릴 여인은 황상께서 직접 고르면 됩니다.”

“아무에게도 첩지를 내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 그 죄인이 좋으십니까?”

휘강 또한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제 마음에 당혹해하는 사이

노 승상은 추후 위험 요소가 될지 모를 려화를 처리하고자

후궁 후보들을 이용하여 살해 사건을 꾸미는데…….

바다뱀자리

kitchsky.jm@gmail.com

가끔 ‘그거 재밌었는데…….’ 하고 떠오르는 글을 쓰는 게 꿈입니다.

“황상. 이 할미는 황족을, 그것도 황제를 모욕하고 능멸한 죄인의 몸에 잉태된 아이를 후사로 두고 싶지 않아요.”

“……모든 이의 걸음을 끊고 몸져누워 계시던 할마마마께서 궁내 상황을 참으로 잘 알고 계시는군요.”

“다른 것은 모릅니다. 하나, 황후가 들어오지 않은 이상 황상께서 취하는 모든 여인은 전부 내명부를 다스리는 내 소관의 일입니다. 몰라서야 되겠습니까?”

휘강이 이마를 짚었다. 태황태후의 말이 전부 옳았으나, 다만 의아한 것이 있었다. 태황태후가 칩거한 것은 건강 문제였다. 하여 모든 일선에서 손을 떼고 물러나 있었다. 사사로운 것부터 큰일까지 어느 하나 신경 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노쇠해 있었단 말이다.

그런데 태황태후는 지금, 자신이 려화를 찾아 배를 맞추고 그 사이에서 후사라도 보게 될까 걱정하여 후궁 후보를 궁으로 들이라 명했다고 밝혔다.

어떻게 알고? 누구에게 듣고?

가는 날을 받아 놓은 것처럼 병색이 완연하고 노쇠한 태황태후에게 감히 누가 입을 열었단 말인가. 마음 쓸 것이 있거든 살날을 더욱 단축할 것처럼 보이던 노인에게 말이다.

“적어도 소손에게 말은 하고 일을 벌이셨어야죠. 이리해서야 일국의 황제라는 자리가 우스워지지 않았습니까.”

“후궁 첩지를 멋대로 내리겠다 한 것도 아니고, 그저 후보가 될 여인들을 뽑아 궁으로 들이라 한 것뿐입니다. 이리 사사로운 일까지 황상께 아뢰고 진행해야 합니까? 이 할미가요?”

“됐습니다. 손주를 이리 궁내의 상황조차 제대로 모르는 천치로 만들어 참 좋으시겠습니다.”

휘강의 비꼼에도 태황태후의 얼굴에 다시금 부드러운 미소가 돌아왔다. 주름진 얼굴이 인자한 인상으로 변했다. 휘강이 한풀 꺾여 준 것을 아는 까닭이다.

처음부터 내명부의 일이니 간섭하지 말라고만 했으면 휘강은 절대로 이리 곱게 숙여 주지 않았을 것이다. 휘강은 결코 내명부의 일이니 참견하지 않겠다고 딱 선을 그어 줄 성군은 아니었다.

아무렴 저의 적손이자 유일하게 남은 친혈육이라 하여도 휘강은 폭군이었다. 그것을 태황태후는 잘 알았다.

다만 어려운 시절을 같이 버텨 준 자에게 고마움은 아는 귀여운 손자이기도 했다. 태황태후에게는 말이다. 그녀에게 영악한 방법으로 서찰을 전한 자 또한, 휘강이 이러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찌 그러세요. 첩지를 내릴 여인은 황상께서 직접 고르면 됩니다.”

“아무에게도 첩지를 내릴 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리 그 죄인이 좋으십니까?”

허를 찔렸다. 휘강이 짜증 섞인 눈으로 감히 조모인 태황태후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태황태후는 휘강의 날 선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태황태후의 시선은 오히려 탁자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아, 곤룡포 사이로 드러난 작은 주머니에 닿았다. 바느질은 차지하고 그 작은 주머니에 그려진 그림이 필시 여인의 솜씨였다.

“죄인이 올린 물건을 몸에 지니고 다니실 정도니 말입니다. 그 죄인이 좋으세요?”

좋으냐 싫으냐 물으면, 어느 쪽인지는 휘강도 잘 몰랐다. 그러니 흔치 않게 말문이 막혔다. 참으로 웃긴 일이었다. 제 앞에서 자신을 모욕한 여인을 두고 싫으냐 좋으냐는 물음에 말문이 막히다니.

딱 잘라 싫다, 끔찍하다 하지 못하는 연유야…….

찾으면 없을 것도 없었다. 광증을 불식시킬 정도로 딱 맞아떨어지는 살성. 몸정이 든 것이리라.

휘강의 자기합리화는 빨랐다. 다만 그것이 늙은 조모의 앞에서 말할 내용은 아닌지라, 그는 말을 돌렸다.

“죄인을 두고 좋고 싫고가 어디 있습니까? 그저 약조한 벌을 주는 과정입니다.”

화가 식지 않았으니 퉁명스레 나오는 휘강의 답에 태황태후는 코웃음을 쳤다. 불우한 소년기에 광증까지 지닌 제 손주가 참으로 많이도 유해졌다. 그나마도 저의 뜻을 거스른 일에, 제아무리 할미가 벌인 일이라도 이리 퉁명스러운 한 두 마디로 넘어가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러니 그 속이 제게는 다 읽히건만. 다른 이들의 눈에도 보이건만 정작 당사자인 휘강은 제 마음이 어디로, 어떻게 향하는지 하나도 모르는 듯 굴었다.

이립을 앞두고도 이리 철이 없어서야. 국정을 논하고 백성을 살핌에 있어서는 살벌할지언정 철두철미하기 그지없는 손주였으나.

태황태후가 보기에 그밖에는 너무나 맹탕이었다. 어찌 이러나 싶을 정도로.

“……황상께서 그러하시다면 그런 것으로 알고 있겠습니다. 일단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