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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

“황제의 자비에 이치를 따지는 것은 강상의 도리에 맞는 일인가?”

휘강의 선언으로 려화는 죄인의 신분에서는 벗어났으나

신료들의 반발로 첩지를 받지 못해 채선궁 부인으로 살아간다.

황궁 안엔 려화가 황제의 총애를 받는다는 소문이 자자하지만

정작 려화의 마음은 휘강에게 열리지 않고, 싸늘하기만 하다.

그러던 중 궁녀 시절, 달리 좋은 사이는 아니었던 공영이

제 아랫배를 끌어안고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는데.

“아이를……. 아이를 살려 줘.”

노 시중의 사람이었던 아이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고,

그 자신과 아이의 안위까지도 위험에 처할 것임을 직감한 공영.

그녀를 통해 노 시중이 사람을 부려 찾고자 하는 내용이

제 과거와 관련이 있단 사실을 알게 된 려화는

공영과 아이의 목숨을 지키고, 진실을 좇기 위해 휘강에게 향한다.

“후궁을 들여 주세요.”

4권

려화는 어린 시절 죽은 줄로만 알았던 동생과도 재회하고,

언제나 제 곁을 지켜 주는 휘강에게도 서서히 마음을 열어 간다.

이리, 마냥 행복하기만 하여야 하는 때.

연심에 휘둘리던 과거와 빛바랜 사랑에 상처받을지 모를 미래.

사건에 연루되어 처벌을 앞둔 태황태후의 모습에서

이를 발견한 려화의 얼굴은 어둡기만 하다.

“폐하, 저는 폐하를 미워하고 원망하기 전에…….

폐하를 연모했습니다.”

다시 시작된 감정은, 조금은 조심스럽고 섬세하기만 한데.

“이제는 다시, 폐하를 미워하면서도 버릴 수 없었던

저의 사랑을 인정해 보려 합니다.”

휘강은 여태 세상 가장 강한 것은 자신이라 여겼다.

그러나 아니었다.

누구보다 강한 것은 다름 아닌 제 품에 안긴 려화였다.

<폭군의 뜰에 핀 꽃> 대서사시의 최종장!

바다뱀자리

kitchsky.jm@gmail.com

가끔 ‘그거 재밌었는데…….’ 하고 떠오르는 글을 쓰는 게 꿈입니다.

3권

“내가 네게 줄 수 있는 자비는, 당장은 이것이 전부야.”

공영이 가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직도 제가 무엇을 해야 옳은지 파악하지 못하고 몸에 익은 대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공영에게 해 줄 말은 없었다.

려화의 단호함에 공영이 정신을 차렸다. 흐려졌던 눈에 제빛이 돌아왔다. 다시, 공영이 고개를 숙여 제 아랫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은 목소리가 공영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왔다.

“……도와줘.”

“뭘?”

“염치없지만, 날 좀 도와다오.”

“그러니까, 무엇을?”

공영은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지엄한 국법을 어기고 천륜을 저버린 행위를 했음에, 그것을 섣불리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운 것이리라. 더군다나 눈앞의 제 동기 려화에게 정말로 부탁할 염치가 없기도 했다.

작금 려화를 힘들게 하는 그 모든 행위에 공영 또한 동참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아니, 직접 입을 놀리지 않았을 뿐 윗전과 그들의 연이 닿은 신료들의 명을 전하고 일해 왔던 자신이었다. 누구보다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은 일신을 살리고자 자신이 힘들게 한 려화를 찾아왔으니 제 꼴이 우스웠다. 몰염치한 사람은 자신을 이름이라.

그러나 제 한 몸 죽고 마는 것이면 모를까.

공영의 배 속에 움트고 있는 것은 어쩌면 연인의 마지막 흔적일지도 몰랐다.

“아이를……. 아이를 살려 줘.”

공영이 모든 것을 포기하듯, 그러나 어떠한 희망의 끈을 놓지 못한 목소리로 말했다. 려화는 담담한 얼굴로 공영의 충격적인 발언을 받아들였다.

공영 또한 려화가 그리 놀라지 않는 것에 당황하지 않았다. 려화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제게 알고 있다는 실마리 또한 주었다.

그저 입을 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장, 어려웠으나. 그저 기댈 곳이라곤 없는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발악이니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누구의 아이지?”

“그건…….”

“폐하께서 승은을 내리신 거라면 네가 이리 찾아올 일이 없지. 그러나 필부의 씨 또한 아닐 것이 자명한데.”

공영이 입을 꾹 다물었다. 차마 거기까지 입을 열기는 어려웠다. 이리, 려화에게 배 속의 아이를 살려 달라 애원하러 온 처지에도 말이다.

오히려 그러하기에 더욱 입을 열 수 없었다. 공영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거둘 길 없는 분노와 자신을 향한 환멸을 담아 질척해진 땅을 노려보았다.

그러한 공영의 머리 위로 청천벽력 같은 려화의 말이 떨어졌다.

“시중의 사람인가?”

정답이었다.

4권

“태황태후께 벌이 내려진단 말이니?”

의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께서 자리를 비우셨던 중 노필상 그자의 말에 홀려 일선을 휘저은 정황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해서 그를 벌하기로 정하셨고요.”

“대관절 무슨 벌이야. 그분께서는 노후하셔서…….”

려화는 태황태후를 마주했을 때, 그녀가 중증 치매를 앓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 태황태후가 멀쩡한 정신으로 나쁜 의도를 가진 채 일을 벌인 것이 아님을 알았다.

해서 그것을 전하려다가, 의준에게 할 말이 아님을 깨닫곤 입을 다물었다.

말을 끝까지 듣지 못했으니 의준은 려화가 어찌 이리 대경하여 반문하는지 알지 못했다. 하여, 그저 전하고자 했던 말을 읊을 따름이었다.

“폐하께서도 그 점을 미루어 벌을 정하긴 하셨으나……. 연로하신 분이나 죄가 덮이는 것은 아니라셨습니다.”

“해서?”

“봄이 오기 전 도능서원으로 보내 여생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본디 출궁하여 사가로 보내도록 하려 하셨지만, 태황태후께서는 마땅히 사가라 할 곳이 남지 않으셨다고요.”

려화가 아연한 얼굴로 되물었다.

“도능서원이라니, 봄이 오기도 전에 연로하신 분을 그 먼 곳으로 보낸다셨다고? 정말이니?”

“예? 예……. 그리되었습니다. 아마 신년에 공표하시고 그대로 실행하실 것입니다만…….”

“신년이라니! 신년이라 해도 사흘밖에 남지 않았잖아!”

기어이 려화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고야 말았다. 태황태후는 휘강의 친조모이자 그가 어렵던 시절을 함께해 주었던 아군이었다. 당장에 몇 번의 실수가 있었다 하여 이리할 수는 없었다.

태황태후에게도, 휘강에게도 좋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리 생각했다. 도국 황실의 역사가 같은 핏줄이라도 쉬이 죽이고 없애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 하여도,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언제고 물어뜯길 약점이 되리라. 아니더라도 훗날 휘강이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어떤 것이든 싫었다. 무엇보다 그 가련한 사람이, 사랑받고자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여 모든 것을 포기한 태황태후의 끝이 그리 씁쓸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폐하를……, 폐하를 뵈어야겠다.”

그리 말하는 려화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마치 태황태후가 아니라 자신이 곧 출궁당하기라도 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