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신종 곤충 ‘알리페르’가 등장한다.

인간과 유사한 외향을 지녔지만, 인간을 주식이자 번식의 수단으로 삼는

그들을 토벌하기 위해 나선 인간 제국의 제2황자 이사나 넥시움.

하지만 그는 황제인 형의 계략에 의해 고립되고,

결국 알리페르의 왕, 렉사에게 붙잡혀 처참한 꼴로 귀환한다.

그러나 이사나의 배 속에는 알리페르의 알이 자라고 있었다.

결국 그의 곁에는 죽지 않은 유충 한 마리가 남는데, 이 유충…….

“잠깐 나갔다 올게.”

“삐이—! 삐이이—!”

“다시 돌아오잖아.”

“삐이이—! 삐이이—!”

엄청난 떼쟁이에 울보였다.

알리페르 토벌의 숙명을 타고난 헥사비스의 영웅 이사나.

그의 곁에 남은 알리페르 멜즈.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흘러갈까.

레베레베레

MSG 팍팍 들어간 소설 씁니다.

3권

한참을 키스하고 나자 모자란 숨을 헐떡이는 멜즈가 보였다. 그 어설픈 모습이 지나치게 사랑스러웠다. 이대로 헤어지는 게 아쉬워, 함께 있는데도 허전해져 이사나는 연신 멜즈의 입술을 쪽쪽거리며 키스했다. 곧 있을 이별을 깨달았는지 멜즈가 또 한 번 울음을 터뜨렸지만, 달래 줄 여력 따윈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깊게 키스한 이사나는 아쉬움이 들어도 입술을 떼어 냈다.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이사나는 키스로 기진맥진해진 멜즈를 억지로 자리에서 일으켰다. 멜즈는 여전히 넋 나간 얼굴로 이사나만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사나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헥사비스로 돌아가.”

“흐으, 흐으, 이사나…….”

“얼른 가지 못해!”

이사나는 짐짓 험악하게 낯을 찌푸리며 멜즈에게 소리 질렀다. 우악스럽게 뒷덜미를 잡아채고 밖으로 끌어내려 하자, 멜즈는 엉엉 울며 끌려 나가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런 멜즈를 바닥에 내동댕이친 이사나는 리볼버를 들어 멜즈의 발치에 총을 쐈다.

탕탕—!

무시무시한 굉음에 멜즈는 펄쩍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하지만 여전히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사나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이사나는 멜즈의 발치에 또 두 발을 쏘았다. 그러자 멜즈는 문가로 도망치며 혼절할 듯 크게 울어 댔다.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엉엉 우는 멜즈를 향해 다시 리볼버를 겨눈 이사나는 나직이 말했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

“흐으……! 이사나, 으……!”

“렉사만 토벌하고 곧장 따라갈 테니까 더 이상 번거롭게 굴지 마.”

냉랭한 이사나의 말에 멜즈는 문고리를 붙잡고서 서럽게 울었다. 굳게 다문 입매로 끊임없이 흐느끼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 그를 품에 안고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도닥이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다. 이제는. 이사나는 또다시 발치에 총을 쏘았다. 그러자 멜즈가 퍼드득 놀라며 문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한 발을 더 쏘자, 멜즈는 그제야 열린 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렇게 여섯 발을 전부 쏘고 나서야 멜즈를 보낼 수 있었다.

이걸로 됐다.

이사나는 속이 빈 리볼버를 아무렇게 내던지며 그렇게 생각했다. 멜즈를 지켜 냈으니 이제 더 이상 미련 같은 건 없었다.

머리 한구석으로는 멜즈와 거닐 해안가의 광경을 떠올려도.

이사나는 물밀듯이 밀려드는 아릿한 감정을 참아 내려 애를 쓰는데, 집무실 안으로 엘든이 들어왔다.

“각하! 아까의 총성은 도대체……!”

“……별일 아냐.”

“각하…….”

“그것보다 멜즈를 인부들과 함께 헥사비스로 돌려보내도록 해. 사지를 묶든 기절시키든 상관없어. 가기만 하면 돼.”

“각하?”

붉어진 눈가와 달리 침착하기 짝이 없는 이사나의 태도에 엘든은 도리어 위화감을 느꼈다. 뭐지?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엘든은 의아해하는데, 이사나가 말했다.

“멜즈를 돌려보낸 뒤 병사들을 소집해. 오늘 제국군은 선대로부터 내려왔던 염원을 이룬다.”

“……?”

“렉사를, 알리페르를 토벌하고 제국민을 해방시킨다.”

4권

그는 완전했다. 드높은 그의 기개만큼 고고하고 고독하며 강인한 그는 마치 신과 같았다. 그에게는 결점이 없었다. 아름답고 완전무결한 그 모습에 나는 본능적으로 사랑을 느꼈다.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팔을 들어 그의 등을 감쌌다. 그러자 그가 놀란 듯 흠칫 몸을 떨더니 나를 내려다보았다.

고요하면서도 다정한 갈색 눈이 금방이라도 울어 버릴 듯 일렁거렸다. 하지만 기쁨이 더 큰지 그는 눈을 휘며 내게 웃어 보였다. 그게 기뻐져 나 역시 따라 하듯 그에게 마주 웃어 보였다.

그러자 떨리는 음성으로 그가 내게 말했다.

‘멜즈.’

‘……?’

‘멜즈.’

‘메엘, 즈?’

내가 어설프게 그를 따라 하자, 그의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그는 내 어깨에 얼굴을 묻으며 죄책감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

‘너를 멜즈라고 불러서 미안해…….’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그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 흐느꼈다. 나는 연신 용서를 구하는 그를 어리둥절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는 어째서 내게 미안해하는 걸까. 나는 다 괜찮다는 듯 그를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의 울음이 더욱 커졌다.

그런 우리들을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었다.

밤하늘 같은 흑청색 머리카락을 바닥까지 늘어뜨린 밤의 여왕이 고요한 황금빛 눈을 깜빡이며 우리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중략)

멜즈는 어둡고 낯선 방을 정신없이 둘러보았다. 멀지 않은 곳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게 보였다. 마치 시체처럼 소파에 늘어져 있는 그에게서는 익숙하디익숙한 향기가 났다.

“아, 아아, 아……!”

멜즈는 부러진 팔다리를 질질 끌며 기듯이 소파로 향했다. 그러나 멜즈가 다가옴에도 소파에 앉은 이는 축 늘어져 있기만 할 뿐 반응이 없었다.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시선조차 돌리지 않았다. 어둠에 눈이 익자, 소파에 앉은 이의 행색이 눈에 들어왔다.

얼굴의 반을 뒤덮은 머리카락에 몹시 마른 몸. 그럼에도 전혀 지워지지 않는 다정하면서도 고결한 분위기. 멜즈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사나의 손을 붙잡았다.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던 연인의 손을 붙잡았건만, 이사나는 여전히 텅 빈 허공 어딘가를 바라볼 뿐 멜즈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럼에도 멜즈는 그리움에 그의 손등에 뺨을 비비며 눈물을 쏟아냈다.

늦었다.

너무, 늦게 왔다.

“이사나……. 이사나……!”

이미 이사나는 병증에 잠식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