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과 동생의 친구들까지도 마음대로 부리는 악덕한 악마 강소영.
악마에게 반해버린 처세술에 능통한 국가대표 수영선수 김서준.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악마와 한 집에서 살게 되었다.
지구상에 이런 악마가 살고 있다는 것과 악마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
어느 것이 더 비극일까.

커튼을 다 치고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소영을 보니 서준은 누군지도 모를 그녀의 전 남자에 대한 분노가 커졌다.
“여기서 무너지면 악마라는 타이틀에 지장 있는 거 아닙니까.”
“……나가.”
여전히 고개를 무릎 사이에 파묻고 있는 소영에게서 울음이 섞여 있는 잔뜩 잠긴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서준은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도무지 이 여자를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했다.
“나 좋아해 달라고 안 합니다. 사랑해 달라고도 안 합니다.”
“나가라고.”
서로 말 없이 한참을 바라보고 있으니 서준은 점점 소영의 눈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심한 듯 서준이 낮은 음성을 흘렸다.
“악마의 가장 큰 장점이 뭔지 압니까.”
“…….”
“복수. 악마는 절대적으로 복수를 한다는 거죠.”
“…….”
“나 이용해요. ……충분히 이용당해 줄 테니까.”

서민영.

알파벳 S, 숫자 3, 빨간색에 미친 AB형 미녀작가


출 간 작
「여자나이 서른셋, 결혼은 늦었고 죽기엔 이르다」
「불같이 차갑게 얼음같이 뜨겁게」
「그 남자의 겨울」 - 다인북스
「햇살 한 조각」 - 다인북스

출 간 예 정 작
슈가파우더
그들만의 천국
감각의 신드롬

“누나, 서준이가 할 말 있대.”
소영이 입에 라면 면발을 넣은 채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서준을 바라보았다. 어떤 말로 화제를 넘겨야 하나 고민도 하기 전에 은현의 입에서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 쏟아졌다.
“우리 집에 남는 빈 방에서 하숙하고 싶대. 월세도 많이 내겠대. 누나, 저 빈방 서준이한테 주면 안 돼? 얘가 길바닥에서 버린 시간을 연습에 투자했다면 세계 신기록도 세웠을 걸? 나랑은 다르게 김서준은 우리나라에서 완전 촉망받는 수영선수잖아.”
너는 좀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강은현!
서준은 어떻게 해서든, 말을 아껴서라도 이 일을 보류하고 싶었다. 서준의 머릿속에서는 이 집으로 들어오는 건, 악마의 소굴로 들어오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니, 이 집이 아니라 저 여자와 함께 있는 건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얘네 부모님은 벌써 허락 하셨대.”
저 입방정. 입에 테이프를 붙여 놓을 수도 없고. 이래서 누나 있는 집에서 자란 남자들이 입방정 떤다는 이야기를 듣는 거다.
서준은 소영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현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은현은 오히려 왜 그러냐는 듯 서준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나 잘했지?󰡑 하는 표정으로. 저걸 죽일 수도 없고. 한숨만 나오는 상황이었다. 절대 이 여자와 한 집에서 살고 싶지 않았다.
“누나, 괜찮으시겠어요?”
“얘 하나 부양하는 것만으로도 피곤해.”
“역시 그렇죠?”
“더군다나 허우대 멀쩡한 다 큰 놈이 집에 와서 같이 사는 건 더더욱 불편하고. 막말로 결혼하는 것도 아닌데 외간 남자랑 같이 사는 건 좀 그렇잖아?”
서준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었다. 그리고 서준은 다짐했다.
다시는 이 집에 놀러 오지 않겠다고.
다시는 저 여자, 아니 저 악마와 마주치지 않겠다고.
“그래도 우리나라의 수영을 책임지고 있는 금메달 선수가 길바닥에서 시간을 버리는 건 용납이 안 된다.”
“네?”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희생해야지.”
그 말은 즉…….
“저 빈방 네가 써, 서준아.”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그냥 날벼락도 아니고 우르릉 쾅쾅하는 천둥을 동반한 눈앞을 캄캄하게 만다는 날벼락이 떨어졌다. 다시는 놀러오지 않겠다고 다짐한 이 집에서 빼도 박도 못하고 살게 생겼다.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두려운 저 악마와 함께.
지구상에 이런 악마가 살고 있다는 것은 굉장히 비극적인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