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들이 하는 사랑 따윈 몰라.

내가 아는 사랑은, 오직 소모밖엔 소통의 길이 없는 감정이야.
재생이 불가능하지.
퍼내고 퍼내고, 그렇게 하염없이 퍼내기만 하다가
반드시 바닥이 드러나는 허무한 것. 그래도 할래?
언젠가는 남은 사랑이 없어 지치고 힘들 날이 올 텐데,
서로가 지긋지긋해서 치를 떨 날이 오고야 말 텐데!
그런 사랑이라도 할래?”

－그 남자, 래현


“아무려면 어때요. 어차피 난 지금,
내 자신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사랑을 떠벌리는 내 마음의 시작도 당신에게의 의지였는걸.
나 역시 100% 순수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려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래도 어쩔 수 없잖아요.
이렇게 비겁한 나 자신이 싫지만, 그런 것도 신경 쓰이지 않을 만큼……
당신을 원해요.”

－그 여자, 산주

김윤희

닉네임 콘키치.
깨으른여자들(www.romnacemoon.com)>에 가면 아주 가끔 볼 수 있을지도.

<셸 위 댄스?>, <인썸니아> 등 다수 출간.

그 남자는 대체 누구였을까?

맹세컨대 어디선가 한 번쯤이라고 의심해 볼 여지도 없을 만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니, 어차피 모르는 사람의 정체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나 무조건 14번에 걸라고 하던 그 남자, 짧은 순간 스치듯이 봤지만 누군가를 속이고 도박의 결과를 조작할 만큼 뻔뻔한 느낌은 아니었었다. 오히려 뭐랄까, 굉장히…….

[이번엔 14번에 걸어 봐요. ……내 말 믿어요.]
산주는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그 남자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여울졌다.


“신사적인?”
그래, 지극히 남성다우면서도 삿된 거칠기가 없는 묘한 울림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생겼었더라?”
참 이상하다. 카지노의 환한 조명등 아래에서 남자의 얼굴을 똑똑히 보았는데 기억에 남은 건 그 목소리뿐이었다.
“도박 결과를 원하는 대로 조작할 수 있다는 건…… 역시 카지노 사장님?”
사실 산주는 그 남자가 했던 말의 절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의 말 중 정말 제대로 이해한 것은 14번, 그리고 내 말 믿어요, 그 두 가지가 전부였다.
그녀는 문득 쿡, 하고 웃어버렸다.
믿긴 뭘 믿어. 내가 난생처음 보는 사람을 덜컥 믿을 정도로 바보로 보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