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순간 눈앞에 나타난 남자.
그리고 운명의 기로에서 시작된 치명적인 사랑.

“우리가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어?”
언젠가는 사랑으로 얼룩진 눈동자를 깨뜨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보리는 조금 더 그를 지켜보고 싶었다. 그녀가 느꼈던 고통을 그가 느끼게. 사랑 때문에 괴롭고 배신감으로 잠 못 이루던 그 밤의 고통을, 그는 미처 상상도 못할 아픔을 천천히 알려줄 생각이었다.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그래서 돌아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어. 이건 내 선택이 아니었거든.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거야. 그러니까 억지 부리지 말고 돌아가.”
“정말 여기서 사는 게 행복해?”

사납게 물어오는 시혼의 음성에 보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적어도 당신처럼 날 아프게 하거나, 울리진 않아.”
시혼에게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다만 무섭게 부딪혀오는 검푸른 눈동자 속 침식된 오만이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우린 지독한 악연(惡緣)이야.’

혼란한 세상 속에서 반복된 예고된 운명, 진실의 끝에는 복수의 칼날만이 도사리고 있을 뿐이다.
우연과 필연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이야기. 붉은 실.

이난주

게자리 B형
감정을 기록하는 일을 좋아하는 여자
음악과 글 작업을 반복하며 행복을 느끼는 여자
홈페이지 로망띠끄에서 꽃물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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