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채집에 평생을 바친 지호와,
수줍은 검은 나비 아가씨 혜진의 사랑 이야기.

지호는 계속해서 달래듯이 말했다.
“나한테 말하면 좀 편해질지도 모르잖아. 들어줄게. 응?”
어지러웠다.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아보고 이러는 것일까.
“내가 어떻게 해 주면 안 울 거니?”
사실은 이미 울고 있지 않은데. 놀라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을 뿐인데.
“좋아하는 곡이 있으면 말해 봐. 내가 쳐 줄게.”
그렇게 물어본들 곡명이라고는 단 하나도 모른다.
“제발 그렇게 울지 마. 나, 네가 이렇게 울고 있으니까 연습도 못하겠단 말이야.”
혜진이 좀처럼 고개를 들지 않자 지호는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눈치였다. 안타까운 듯이 머리칼에 살짝 손을 댔다가는 자신도 놀란 듯이 흠칫 손을 떼고, 토닥이려는 듯이 어깨에 가볍게 손을 얹었다가는 또다시 멀어진다.

“정 나하고 말하기 싫거든, 그냥 고개만 끄덕여 줘.”
어딘가 간절하게까지 들리는 말투에 혜진은 여전히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 피아노, 좋아하니?”
끄덕끄덕.
“그럼 내가 널 위해서 연주하면 울음 그쳐 줄 거야?”
끄덕끄덕.
“곡은 내가 알아서 쳐도 돼?”
끄덕끄덕.
“좋아. 여기 그대로 있어. 끝나도 어디 가 버리면 안 돼. 알았지?”
이번에는 아까보다 좀 더 빠르게 풀잎 밟는 소리.

박수정(방울마마)

출간작: ‘사랑 정비 중 1,2’ ‘파트너’ ‘악마와 유리구두’
‘두 얼굴의 왕자님’ ‘나의 검은 공주님’ ‘내 사랑 윤자 씨’

혜진이 책상 앞에 앉아 현우가 건네준 신작 게임의 콘셉트에 대한 파일을 열어 읽고 있는데, 작업 표시줄에 작은 창이 뜨며 반짝였다.
열어 보니 사내에서 업무용으로 쓰는 메신저 창이었다.

[아직 일하는 중?-정지호(사장/사장실)]
혜진은 깜짝 놀라 얼른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다들 자기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네.-송혜진(사원/게임아트실/프로젝트 S팀)]

금세 다음 말이 날아왔다.
[끝나면 회사 건너편 건물에 있는 커피숍으로 와.]
혜진은 주위의 눈치를 살피며 얼른 키보드를 두드렸다.
[안 돼요. 오늘 팀 회식한대요. 내일 만나요.]
[나도 안 돼. 중요한 미팅이 있어서 내일 저녁에 중국 갔다가 월요일에나 온단 말이야.]
[그럼 다음 주에 보면 되죠.]
[싫어. 팀장 누구지? 회식 미루라고 내가 말할게.]
혜진은 그만 모니터 앞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미쳤어요?
그때, 파티션 너머에서 팀장이 혜진을 불렀다.
“혜진 씨, 이제 슬슬 나갑시다.”
“네!”
혜진은 목소리를 높여 대답하고 황급히 메시지를 작성했다.
[저 팀장님이 불러서 가야 돼요. 그리고 제발 일하는 도중에 자꾸 이렇게 말 좀 걸지 마세요!!!!!!!!!!!!!!!!!!!]
느낌표를 열 개도 넘게 붙이고 엔터키를 쾅 눌러 메시지를 띄운 후, 얼른 컴퓨터 전원을 꺼 버리고 혜진은 퇴근을 위해 가방을 챙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