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난 누구?

분명 잠이 든 건 그녀의 오피스텔,
그러나 눈을 뜬 곳은 1918년 상해.
서문아리, 일본인, 조선인, 서양인을 접대하는 기녀가 되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잘생기고 섹시한 그러나 차가운 과거 남자, 서준우.
그래도 서문아리에게는 따듯하겠지.

그의 정체와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파헤치려는 일본인들을 피하기 위해
준우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는지.
그러나 아리를 덮치는 일본 군인에게 주먹을 날리는 순간,
그 노력은 산산이 부서져 물거품이 되었다.

엉뚱한 여자의 사차원 꿈속 세계.
그녀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멋지고 용감한 서준우가 외친다.

“이 여자야, 이건 꿈이 아니라고!”

국내 로맨스의 대모 박윤후가 돌아왔다.
해외 작품이 전부이던 그 시절, 박윤후가 『노처녀 길들이기』로 국내 로맨스의 지평을 열었다. 그리고 그 후 10년이 넘도록 그녀는 언제나 새로운 도전을 하며 로맨스의 대모로 인정받았다.
박윤후 하면, 국내 로맨스가 연상될 정도로 그녀는 국내 로맨스의 대표적 중견 작가이다.
그런 그녀가 3년 만에 신작 『시간 속으로』를 내놓았다.


1996년 신영미디어 공모전 당선작 『노처녀 길들이기』 이후『백 번째 남자』,『가을날의 동화』, 『사막의 남자』, 『악마의 바이블』, 『마누라가 되고픈 남자』, 『열애』, 『몽계』, 『마녀록』, 『리아의 계약』, 『남편을 찾아서』, 『순정 만화처럼』, 『서동요』, 『천관녀』, 『황금 신부』를 출간.

“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만난 남자와 완전 달라요.”

아리가 자연스럽게 준우의 목에 팔을 두르며 속삭이자 준우는 평소의 여유를 찾아 조용히 답했다.

“당신과 나에게는 백 년의 시간이 있으니까.”
모든 것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진짜로 준우와 백 년의 시간이 있는 것처럼, 정말로 자신이 1918년의 상해에 와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준우와 키스하는 것처럼.
아리의 허리를 붙잡은 준우는 이게 사실이라고 외치는 듯 강하게 키스해 왔다. 아리는 일말의 거부도 없이 준우의 키스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준우의 열망에 답하듯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게 꿈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단지 항상 원해 오던 로맨틱한 남자를 만났고 사랑에 빠졌을 뿐이었다.

준우는 아리의 손가락이 셔츠 단추를 풀자 소유욕을 담아 속삭였다.
“지금밖에 없어, 날 밀어낼 기회는.”
아리는 흐릿해진 눈동자로 준우를 바라보며 조용히 답했다.
“나에게는 지금밖에 없어요. 언제 깰지 모르니까.”
진작 이랬어야 했을지도 몰랐다.
꿈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 준우와 불타는 연애를 했어야 했는지도 몰랐다. 잠에서 깬 뒤 그를 잊지 못해 우는 한이 있어도 준우를 당겨야 했다. 준우는 두 팔로 아리를 안아 들고 침대로 움직였다.
이 순간을 두고두고 후회할지 몰라도 아리는 준우를 밀어낼 수 없다.
소망은 단 한 가지였다.

‘제발 이대로 잠에서 깨지만 말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