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아! 고맙다.”
“녜? 뭐가요?”

“그냥… 모두 다.”
“늘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줄 알았더니 다시 봐야겠어요.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훗!”
그러나 호영은 웃지 않았다.
달빛에 비친 말숙의 옆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기에…….

“임호영 씨!”
“오빠!”

그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고집스럽게 말했다.
“하! 누구 마음대로?”
“내 맘대로.”
“이제 보니 독재자가 따로 없네.”
말숙이 불만스러운 듯 복어처럼 잔뜩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렸는데 호영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듯 그녀의 모습을 따라 흉내내며 말했다.
“이렇게 멋진 오빠 있으면 나와 보라고 그래. 체!”
말숙은 키득키득 웃음이 터져 나왔고 호영이 이때다 싶었는지 재빨리 자전거를 뺏다시피 하고 앞장섰다.
“아무래도 산에만 틀어박혀 있었더니 내 머리가 어찌 되었나 보다. 전 같으면 그쪽보다 훨씬 예쁘고 귀여운 애들이 와서 매달려도 눈길 한번 안 줬을 텐데. 흠! 영광인 줄이나 아시지, 동생!”
“음, 이제 알겠네. 어디가 아파서 왔다더니. 아프긴 아팠구나.”
“뭐?”
그가 싱글거리다 말고 놀란 듯 약간 굳은 표정으로 그녀를 보았다.
“왕자병! 그 약도 없다는 왕자병 말기네. 쯧쯧! 불쌍해서 어쩌나.”

정명희 지음
필명 : 타바스코 마녀

로망띠끄에서 수영 중.
유일한 취미는 독서와 게임.
마녀라는 별명만큼이나 엉뚱하고 사고도 잘 치지만
그래서 웃을 일도 많은 행복한 사람.

출간작

「금사화」
「불량이웃」

「내 사랑 배암골 나그네」- 이북

출간 예정작

「프로방스의 연인들」- 이북
「수상한 결혼 프로젝트」- 이북

“손님한테 잘해주라고 하신 말씀은 못 들었나 보군요?”
“손님도 손님 나름이죠. 바쁜 사람 붙들고 같이 놀자고 하는데 댁 같으면 다 들어줄 수 있겠어요?”

한마디도 지지 않고 쌕쌕거리는 양이 조금 어처구니없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나랑 못 놀아주겠다는 거예요?”

불쾌한 듯 그의 음성이 약간 하이 톤으로 변했다. 그만 움찔해진 말숙이 미처 대답을 못하고 못마땅한 듯 입술만 깨문 채 그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호영은 그러거나 말거나 마주 그녀를 빤히 쏘아볼 뿐이었다. 어차피 독경 소리만 들으며 멍멍이들과 노는 것도 은근히 질릴 즈음이라 그는 이 도발적인 미소년 같은 이미지의 산처녀에게서 어떤 야성적인 신선한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늘 예쁘게 화장하고 교태 어린 눈웃음을 살살 치며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온갖 아양을 떨거나 유혹 어린 시선을 보내는 여자들만 보았었다. 그런데 별로 화장기 없는 얼굴에 선머슴 같은 시원시원한 말투와 행동은 물론 마치 모난 돌처럼 퉁퉁거리는 여자를 보니 자꾸만 가슴 한구석이 간질간질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장난꾸러기 사춘기 소년으로 돌아간 것처럼 놀리고 싶고 괴롭히고 싶었다. 그렇다고 뭐 아직 앳된 기가 채 가시지 않아 보이는 어린애를 상대로 불장난이나 연애질을 해볼 생각은 꿈에도 없었지만, 현재 그의 주위에 스님을 제외하고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만큼 서로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나이 어린 처녀가 공양주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사뭇 특이하긴 했다.

“어! 이제 보니 입까지 붙어버린 모양이네. 왜 대답을 못할까?”
“이봐요. 나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대뜸 쨍하는 듯한 날이 선 목소리가 허공을 갈랐다.

“어? 어! 그냥… 동생 같아서. 에이, 한참 어려 보이는데 거 되게 까칠하게 구시네. 허 참! 그래도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우리 거의 매일 보는 사이 아닌가. 그러지 말고 우리 좀 잘 지내보는 게 어때요. 응?”
라고 하며 그가 불쑥 손을 내밀었다. 이맛살을 찌푸린 채 물끄러미 그 손을 바라보던 말숙이 드디어 씹어뱉듯 한마디 했다.
“어째 오늘은 아침부터 일진이 안 좋더니. 이봐요! 어디 가는지 모르지만 가던 길이나 마저 가시죠. 그리고 자꾸 그렇게 애 취급하면 나도 그쪽이랑 맞장 뜨는 수가 있으니 적당히 하세요.”

그리고는 자전거를 휙 잡아당긴 뒤 다시 비탈진 산길을 바삐 올라가 버렸다.
“어, 이봐요! 이봐! 말숙 씨! 어이, 나무 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