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야.
눈송이를 타고 내려왔니, 파도를 타고 밀려왔니?
배에 닿는 너의 숨결은, 환희의 고통…….


선천적으로 타고난 결벽증 때문에 여자를 안을 수 없었다.
어차피 여자는 딱 질색이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났다.
그녀를 안고 싶었다.
그녀를 사랑하고 싶었다.

“당신을 사랑하려고 노력할 거예요.”

서툴지만 이렇게 내 마음을 울린 고백은 처음이었다.

“난 이미 너를 사랑해…….”

그래, 난 이미 너의 미소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민초선 지음

필명 : 북벅스

이름만 4대 미인과 동명이인이고 외모나 몸매는 전혀 다른 人이다.
로망띠끄에서 활동 중이며,
줄리엣의 발코니(www.romance-juliet.com)에 몸담고 있다.


출간작

「사랑하는 나의 Dr. Lee」
「만파식적」
「사랑은 첫눈처럼」
「이요르의 꼬리 붙이기」

출간 예정작

「미리내의 반란」
「담 너머 산책」
「Do you Know Notting Hill?」

은아는 카운터 테이블을 위로 젖히고 나왔다. 재민은 그걸 보다가 확실히 뒤돌아선 그녀를 확인한 후 한 번 테이블을 들었다가 놨다. 정말 신기했다.

“과자는 이거랑 이게 잘나가요. 도시락보다도 삼각 김밥이랑 베니에서 나오는 샐러드가 잘나가고요.”

은아는 이것저것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재민은 묵묵히 그 뒤를 따르며 은아의 손길이 닿았던 것들을 집어 들었다. 너무 그를 생각하지 않고 떠들어댔다는 생각에 돌아본 은아는 놀라 손을 내밀어 짐을 덜어주었다. 재민이 순간 흠칫했지만 그녀는 눈치 채지 못했다.

“그중에서 고르시면 된다는 거였는데. 처음 드셔 보는 거세요?”
“……네.”

재민은 자신이 미숙하게 굴었다는 걸 인정했다. 그걸 아니 순순히 긍정의 대답을 돌릴 수 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지금의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그 누구도 이런 걸 가르쳐 준 적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과 손이 닿았을 때의 기분과 천지 차이였기에 그는 쉽게 알 수 없었다. 왜 은아의 손길은 더럽다고 느껴지지 않고, 아쉽게만 느껴지는 것인지.

“먹고, 가도 됩니까?”
점원으로서 누구에게든 흔쾌히 대답해야 하지만 사심을 담아 더 흔쾌히 대답을 돌렸다.
“네, 그럼요.”
은아는 편의점에서 처음 사 먹어본다는 그에게 조리법을 가르쳐 주며 여태껏 모아뒀던 잔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이거 다 드실 순 없잖아요? 제 동생이 손님보다 더 먹을 것 같지만 그 양에 맞출게요. 그렇게 해서 남으신 건 가져가시면 되고요. 아무래도 동생이 성장기 고등학생이다 보니까.”
은아는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았다. 그렇다고 침묵을 고수하는 것도 아니지만 최소한 오늘처럼 수다쟁이는 아니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았다. 긴장이 말을 불러오는 모양이었다.

(중략)

“그동안 안 가져가신 잔돈이에요. 안 그래도 오늘 드리려고 했어요.”
재민은 됐다고 하려 했지만 수줍게 건네는 모습이 꼭 선물을 전하는 것 같아 그냥 받았다. 원래 그의 돈이면 어떠랴. 받는 마음이 중요한 거지.

“안 그래도 됐는데.”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좋게 보이는’ 말을 내뱉었다. 무의식이 의식을 지배하는 것, 평소라면 질색하며 자책했을 일이지만 지금은 그저 기분 좋기만 했다. 은아가 수줍지만,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아니에요. 돌려 드리는 건 당연하죠.”
“이제, 먹어도 되는 건가요?”
재민은 더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처음 먹어보는 사발면으로 화제를 돌렸다.

“아, 네. 타이밍 잘 맞추셨어요. 좀 꼬들꼬들하게 먹는 게 맛있거든요.”
은아는 먼저 그의 사발면 뚜껑을 열어 그릇에서 완전하게 떼어냈다. 뒤이어 그녀의 사발면 그릇의 뚜껑도 떼어내었다.

“잘 먹겠습니다.”
은아는 젓가락을 든 채 기도하듯 두 손을 모으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라면을 집어 입으로 가져가려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홍재민입니다.”
재민은 일부러 명함을 건네지 않았다. 아직 학생으로 보이는 그녀에겐 명함이 없을 테니. 괜히 건네 세대 차이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의 말에 은아는 면발을 떨어트리고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제대로 그의 미소를 봤다. 재민은 웃으며 그녀처럼 두 손을 모아 조그맣게 잘 먹겠습니다, 얘기하고 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아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차창 밖을 봤다.

투명한 편의점의 유리는 세차게 휘날리는 눈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엄마를 미끄러지게 한 눈이 참 싫었는데 지금은 눈이 참 좋았다. 눈 때문에 손님이 오지 않고 있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