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에서 거꾸로 지구를 돌아 너에게로 가는 중이야. 그때도 그곳에 네가 있다면 꼭 붙잡고 다시는 널 놓치지 않을게. 사랑해, 미란아.”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가 갑자기 사라진 건 오 년 전.
밝고 활기차게 살아가지만
마음속에선 여전히 그를 지우지 못한 채 살아가던 그녀는
뜻밖의 장소에서 그를 만난다.

자신이 사랑하던 상우와 너무도 닮은 그는,
그러나 이도라는 낯선 이름을 가진 사내.

‘분명 상우가 틀림없어.’
확고한 믿음 아래 그의 앞에 다가서지만 그럴수록 미란의 믿음은 흔들리고, 갑작스레 나타나 자신에게 성큼성큼 다가서는 알 수 없는 그녀가 이도는 신경 쓰인다.

‘그는 정말 상우가 아닌 걸까?’
‘왜 이다지도 그녀가 신경 쓰이는 걸까?’
흔들리는 두 사람의 마음, 과연 진실은?

김경순

7월 4일생.
인천거주.

출간작으로 ‘애플망고, 반얀트리 그리고 사막의 별들’, ‘그 남자의 마지막 여자’ 있음.

▣ 본문 중에서

“내가 당신의 남편인 줄 알아서 호텔에 취직했나요?”
“말하기 싫어요.”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좋아요. 그만 일어나요.”

고맙게도 이도가 레스토랑 앞에서 택시를 잡아주어 미란은 편안히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맛있는 음식에 이런 친절한 배웅까지 받은 미란이었지만 어쩐지 희망의 불꽃이 꺼져버린 것 같아 서글펐다.

“혹시 쌍둥이세요?”
“그런 드라마 같은 이야기는 소설 속에서나 나오는 거 아닌가요. 남편 찾아 삼만 리, 드디어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감격의 재회, 그러나 알고 보니 어릴 적 잃어버린 쌍둥이 형 혹은 동생. 뭐, 그걸 기대하는 건가요?”
“그냥 묻는 말이잖아요. 그렇게 심하게 말씀하실 건 없어 보이네요.”
“아직도 내가 당신 남편 같아요?”

은연 중 이도는 미란을 비꼬고 있었다. 미란도 그걸 모르는 건 아니었기에 울상을 짓고 택시에 올라탔다. 하지만 이도가 닫히려는 택시 문을 붙잡고 늘어졌다.

“말 안 해도 된다면서요?”
그녀는 벌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장미란 씨, 홍보실에서 근무 중이죠?”
“그런데요?”
“내일부터 출근하지 마세요. 당신은 해고예요.”

* * *

“문득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미지의 힘이 우리 두 사람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이런 게 운명일지도 몰라.”
“말장난하지 마. 나 장난하는 거 안 좋아해.”

그러나 누가 봐도 이도의 표정은 심각했기에 미란은 초월적인 힘의 존재를 믿기로 했다.

“너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 궁금해. 내가 풍덩 빠져도 될 만큼 깊은 것인지, 아니면 발 하나 담그기도 힘들 정도로 얕디얕은 것인지 알고 싶어.”
이도는 미란의 머리에 손을 얹으며 끌어안았다.

“세상에서 가장 깊은 바다가 어디일까? 태평양쯤 될까? 내 마음이 그보다 깊다면 곧이곧대로 믿어줄 수 있어?”
“믿을래. 믿을 거야.”
“그러면 내 사랑은 태평양보다 깊고 에베레스트보다 크다는 걸 알아줘.”

미란은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리자 들키지 않으려 이도의 앞섶으로 파고들었다. 이 순간만큼은 그가 진짜 상우처럼 느껴졌다.

“네 사랑을 함부로 대했을 때를 용서해. 그동안 이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할 수가 없었어. 네가 없고 나서 너의 소중함을 알아버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