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엄마 친구 아들은 훌륭하다.
그런데 왜 우리 엄마 친구 아들은 이따위인 거야!

어느 날 날벼락 같은 소식에 눈앞이 캄캄해진 한소희.
말 잘 듣고 착한 배우들도 많건만
스캔들 메이커 유상혁의 매니저가 되다니!

시작과 동시에 연타로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 소희는 오늘도 마음을 다잡는다.
집에도 못 들어갈 정도로 바쁘지만, 유상혁은 회사에게 돈을 벌어 주는 소중한 상품.
그가 자신을 괴롭히기 위해 유혹해도 참을 수 있다.
오래전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두근거려도, 그에게는 그저 장난일 뿐이니까.

소희에게 상혁은 단지 소중한 ‘상품’일까?
아니면 소중한…….

현사혜

19**년 02월 19일 생.
e북 「은매화」출간.
로망띠끄 연재중.

“아니야. 당신이 모르는 바쁜 일이 어디에 있겠어? 없어. 절대 없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숨통 좀 놔주지?”
“저지른 죄가 있는데 그리 쉽게 놔줄 리 있어요? 그러니까 이거 잘 간수하고 다녀요.”
탁! 탁자 위로 빛나는 물체가 가만히 놓여졌다. 은근한 은빛으로 빛을 내는 그것은……
“뭐야?”
상혁은 탁자 위에 떨어진 것을 집어 들고 소희를 향해 반문했다.

“보면 몰라요? 당신 휴대전화.”
“뭐? 이 해괴한 물건이 내 거라고?”
“상혁 씨, 벨 울리면 즉각 받아요.”
“싫어. 이건 족쇄라고. 족쇄는 노예한테나 채우는 거지 난 자유인이야. 그러니까 저런 괴상한 건 필요 없어.”
상혁은 휴대전화가 무슨 병균이라도 되는 듯 자신에게서 되도록 멀리 밀어 버렸다.

“자유인? 어쩌죠? 이제 당신의 자유인 시대는 끝났어요. 당신에게 족쇄를 채울 필요성을 느꼈거든요. 그러게 누가 잠수 타래요? 어쨌든 벨 울리면 즉각 받아요. 만약에 받지 않는다면……. 뭐 그 다음은 알아서 생각하세요.”
소희는 끔직하다는 표정의 상혁을 보며 어깨를 으쓱하더니 결국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는 상혁의 손안에 고이 감싸 쥐게 했다.

“참! 나 아직까지 가위 갈고 있어요. 그리고 내 능력 시험하고 싶으면 또 도망가 봐요. 이미 경험했지만 난 정보력도 좋거든요. 당신이 어디를 도망가든 길어 봐야 일주일?”
저 여자는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 그녀는 분명 매니저가 아닌 연기자가 되어야 했다. 어떻게 사람 좋아 보이는 표정을 하고 저리 잔인한 협박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상혁은 자신의 손안에 쥐어진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오만상을 찌푸리고는 다시 한 번 태연자약한 소희의 표정을 살폈다.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그런데 그녀는 두 어머니들의 모의를 알고 있을까?

“그런데 한 실장, 당신은 알고 있나? 어머니께서 무슨 말씀 없었어?”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눈을 치켜뜬 소희의 표정에서도 알 수 있었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그것을 알고 있었다면 절대 그냥 넘어갈 리 없었을 것이다.
‘그래! 협박을 했겠지. 자꾸 말썽 부리면 당신과 결혼해 버릴 거예요.’

“무슨……? 내가 알아야 할 일이 있는 거예요?”
상혁은 아주 잠깐 동안 그녀와 상의해야 할까 고민했지만 그만두었다. 결국 자신의 약점 하나를 더 잡게 하는 꼴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상혁은 그녀와 같은 편이 되어 위기를 극복한다는 생각을 포기하고 태연스레 그녀에게 핀잔을 늘어놓았다.

“아니. 당신이 얼마나 고약한 여자인지 알고 있나 해서……. 아니 그보다 당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 해서 말이야. 사실은 여자가 아니지, 당신?”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의 눈빛에 싸늘한 한기가 돌았다.
“도무지 난 당신이 여자로 보이지 않아. 내 평생 여자가 여자로 안 보이는 경우는 처음이거든. 아마도 유상혁은 한소희에게 관심 같은 건 생기지 않을 것 같아, 평생!”
“고맙군요. 칭찬으로 들을게요. 그리고 설사 당신이 그런 관심을 보였다 하더라도 사양했을 거예요. 당신이 날 여자로 보지 않는 것처럼 나 역시 당신을 남자로 보지 않아요.”
“남자로 보지 않아?”

그냥 싸늘하게 못 들은 척 넘겨 버릴 거라 예상했던 상혁은 소희가 반격을 해 오자 잠시 당황했다. 그러다 슬그머니 기분이 나빠졌다. 소희의 반응이 한편으로는 다행스러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분이 묘해졌다. 그녀의 입에서 ‘유상혁은 매력적인 남자다.’란 말을 꼭 듣고 싶은 반발심이랄까?

“그래요, 다행스럽게도.”
“그럼. 대체 날 뭐로 보고 있는 거야?”
다행스러워? 대체 무슨 이유로 이렇게 기분이 나빠지는 거지. 이런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옳은 것인지? 남자로서의 자존심?
항시 사람들의 관심을 차지하던 상혁이 한 사람에게, 그것도 여자에게서 관심 없단 소릴 들어 자존심이 상한 것인가? 단지 그 이유뿐인가?
상혁은 갈피를 못 잡고 날뛰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한 번 엉켜 버린 마음은 쉽사리 정리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대답은 펑 소리와 함께 그의 마음 깊숙이 자리 잡아 버렸다.

“소중한 존재!”
잠시 침묵이 흘렀다. 마침 아무도 없는 사무실, 따스하게 쏟아지는 햇살을 조명으로, 그리고 큰 창으로 내다보이는 하늘의 푸름을 배경으로 상혁은 지금 소희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 하나 쉽사리 입술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제 사춘기에 접어든 소년이 누군가에게 고백을 받고는 어쩔 줄 모르는 것처럼 상혁의 머리는 온통 하얗게 물들어 갔다.
“소, 소중한 존재?”
예상치 못한 답변은 당황함을 넘어서 나이에 맞지 않은 쑥스러움까지 동반했다.
“몰랐어, 당신이 날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은.”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당신으로 인해 밥을 먹잖아요. 그러니까 당신은 나와 회사의 소중한 상품. 돈으로 보여요, 난.”
와장창!
행복한 그 순간이 깨어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