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내게 여자 아냐. 나도 네게 남자 아니고! 넌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야!”
- 기주

왜 이 녀석이 낯설게 느껴지는 걸까?
지금까지는 귀여운 동생일 뿐이었는데 왜 갑자기 녀석에게서 여자라는 느낌이 든 걸까? 언제나처럼 웃어넘겨 버리자. 그래, 그러면 괜찮아질 거야.

“사랑하는 게 죄야? 그게 죄라면, 기꺼이 그 벌 받을 거야.”
- 서인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지겹게도 노래 불러 대던 그 사랑들은 모두 어디로 가 버렸지?”
- 기주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두려움의 향기에 서서히 죽어 가는 사랑. 이제 더 이상의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두려움을 그가 알게 할 수는 없다. 애써 이죽거려 본다. 그래, 어디 한번 밟아 보라지.

“사랑 노래 부르던 철없는 계집애는 이미 죽었어. 당신이 죽였잖아. 기억 안 나?”
- 서인

선우

voce21@yahoo.co.kr

신영미디어에서 ‘오해’라는 글로 연재를 시작하여 로맨스 소설과 인연을 맺음.

‘일탈’, ‘시선’, ‘해후’, ‘망부(望婦)’, ‘낙하산과 클레오파트라’, ‘소국의 창’ 출간.
현재 ‘광애’의 최호인의 사랑을 ‘GOOD BOY’라는 글에서 보여 주는 중.

▲ 신영미디어에서 출간한 작품
망부(望婦)

(1권 본문 내용 중에서)

“잘 들어!”

기주는 서인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았다. 굳이 말로 할 필요도 없었다. 그의 두 눈이 모든 말을 해 주고 있으므로.

“너 내게 여자 아냐. 나도 네게 남자 아니고! 넌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야!”

서인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서인의 눈가가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을 기주는 놓치지 않았다. 다른 이의 감정을 부숴 놓는다는 게 더러운 짓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여학생들에게서 고백을 받기 일쑤였지만 그 고백들을 거절할 땐 이런 기분이 아니었다.
왜 울며 돌아서던 그네들의 모습보다 붉어진 서인의 눈가가 그의 마음을 더 불편하게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 동생처럼 소중하게 여기던 녀석이라 그럴 것이다.

“착각 아냐! 착각 같은 거 할 정도로 머리 나쁘지 않아.”
“꼬맹이, 그만 해라! 더 이상 하면 정말 화낸다. 넌 내게 기선이나 같아.”

기선이나 같단다. 동생이란다. 서인의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싫어! 나 동생 안 해! 사랑해. 사랑한다고. 여자 남자 그렇게 좋아해! 안기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어. 사랑이란 거 그런 거잖아. 동생하고는 그런 거 안 하잖아. 난 하고 싶어. 난 안기고 싶고, 키스도……”

“그만 해!”


(2권 본문 내용 중에서)

“이 결혼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면 기꺼이 가져야 하지 않겠어?”

그의 거친 숨결이 뜨거운 그녀의 뺨으로 다가왔다. 환한 조명이 사슬처럼 뒤엉킨 두 사람의 모습을 비추었다. 서인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지만 기주의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붉게 달아오른 서인의 얼굴이 땀으로 온통 젖어들었다. 또르르, 땀 한 방울이 그녀의 관자놀이를 타고 흘러내리자 기주가 기다렸다는 듯 그 땀방울을 입술에 머금었다. 곧이어 그의 혀가 그 자리에 뜨거운 흔적을 남겼다.
서인의 몸이 물 밖으로 나온 고기처럼 퍼덕거리며 경련을 일으켰다.

“으, 싫어.”

안간힘을 다해 뱉은 말조차도 그 힘을 잃은 듯했다.

“싫다고? 그게 아닐 텐데……. 사랑, 사랑, 노래 불러 봐.”

그의 말이 칼이 되어 서인의 가슴을 찢어 놓았다. 그녀의 철없던 사랑을 비웃고 있는 그가 미웠다. 그를 증오한다. 붉게 젖은 눈으로 서인은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거친 공격을 참기 위해 베어 물었던 서인의 입술은 곧 붉은 핏방울을 쏟아 내 버릴 듯 부어올라 있었다. 그 붉은 입술이 그를 향해 열렸다.

“내 사랑은 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