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 사랑에 오늘 한 여자와 한 남자가
서로를 태우는 불나방이 된다.

“누군가를 저주해 본 적 있어?”
“그럼. 저주의 힘으로 여태 살아왔는걸.”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어떤 목적인지 안다며? 물론 내 목표는 강은연이야. 오빠와 강은연이 약혼했다는 사실을 접하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거지. 강씨 집안이라면 두 사람을 꼭 묶어줄 거라고 생각했거든.”
“날 이용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강은연에게서 내 육체라도 빼앗았다는 현실을 은연이에게 보이기 위해서?”

복수를 위해 사랑을 이용한 여자 초혜와
그 복수에 희생자가 되어 또 다른 복수를 준비한 후성.
두 사람의 복수는 서로를 증오하는 마음보다
욕망에 휘둘린 눈물이 되어 재회의 문 앞에서 서게 하고.

김지영

이북
<그대 눈물 빛이 되어>, <두 번째 남자, 첫 번째 사랑>, <강탈>, <빛이 드는 그들의 사랑>, <바람속의 꽃잎>, <그대와의 거리>, <그대를 향한 마음>, <달빛속의 미소>, <무지개속의 미소>, <소유의 조건>

종이책
<흔들리는 영혼>, <강탈>, <달빛속의 미소>, <무지개속의 미소>, <여름을 바다에 묻다>, <소유의 조건>, <이중계약>, <회색빛 열망>, <애증의 심판>

▣ 본문 중에서

“내가 널 그리워하고 애틋하게 기다렸다고 생각하는 거야? 정초혜. 그래, 난 널 한순간도 잊지 않았어. 아무 예고도 없이 내 품으로 달려들어 온 청순한 향기의 너라는 아이를 잊을 수가 없었어. 너도 날 잊지 못했었지? 어떤 목적을 품고 있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날 이용하려는 거, 이미 간파했어. 어쨌든 잘 와줬어. 무료한 삶에 재미를 부여해 줄 것 같으니까 환영해.”

아직 멀었군. 독의 효과가 덜 나타나고 있었다. 이럴 때 비장한 킬러가 되어 더욱 냉정한 이성으로 그를 대해야 하는 것이 정상인데 그의 말에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보여 주었던 그의 순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의 생일날, 생일선물을 달라며 조르던 사랑스러웠던 그의 앙탈도 머릿속을 배회했다. 받고 싶은 선물이 따로 있었기에 생일인 것을 말하지 않았다며 원하는 선물이 키스라고 했을 때 터져버릴 듯이 쿵쾅거리던 애틋했던 자신의 감정. 그리고 첫 키스의 살랑거리던, 풋풋하면서 달달했던 달콤함의 느낌.

이런 쓸데없는 것들은 벌써 버렸다고 생각했는데 이 중요한 순간에 어째서 기억상실에서 벗어난 듯 그런 기억들이 물밀듯이 밀려드는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자신보다 더 딱딱하고 메말라 버린 그를 보는 것이 결코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었다. 자신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아 죄책감도 느끼고 있다. 재회 후 더욱 애틋해지는 감정.

불필요한 요소는 대의를 그르치게 한다. 제일 위험한 것이 바로 감정, 손에 잡히지 않는 그것일 것이다. 10년 만에 그의 앞에 섰을 때 심장이 가슴에서 떨어질 것처럼 떨리고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는 너무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하면서도 잊힌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척 힘들었었는데 이제 또다시 그를 놓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만들었던 퇴색돼 버린 추억이 멈춰 버린 시간의 고열을 능가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 재회한 지 한 달 좀 넘었나? 침대에 누운 건 세 번.”
“처녀성을 나한테 던진 건 일말의 양심선언인가?”
“그동안 내 처녀성을 줄만한 남자를 못 만났기 때문이겠지.”

* * * * *

“거래하자.”
“거래? 무슨 말이야?”
“이거 건네주는 대신 한 달 동안 내가 하자는 대로 해.”
“그게 뭔데?”
“진성기업의 채무관계 및 강신태 비리와 관련된 서류.”

두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이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나 궁리를 하고 있는 자신 앞에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그가 증거물을 내놓은 것이다. 한 달이라는 시간을 조건으로. 솔깃한 조건이긴 하지만 함정인 것을 모를 리 없는 초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서류를 도로 주머니에 집어넣으려 했다. 그녀는 얼른 그의 팔을 잡았다.

“뭐하는 거야?”
“망설이는 것 같아서.”
“한 달 동안 뭘 할 건데?”
“그건 내 마음이지. 그때그때에 따라서 뭘 할지는 나도 몰라. 뭘 시킬지, 어떤 걸 같이 할지는 나도 아직은 몰라.”
“비겁해.”
“네가 할 소리라고 생각해? 선택해.”
“한 달이 지난 후에 뭐가 남는데?”
“내가 하자는 일에 절대로 토를 달아서는 안 되고 무조건 따라와야 해. 단, 24시간 내 옆에 붙어 있으라고는 하지 않겠어. 하지만 난초는 쉬어야 해. 그렇게 하고 나서 우리에게 남는 건 선택이지. 그때에도 네 마음이 변하지 않고 날 떠나겠다고 하면 받아들일게. 대신 한 달 내내 떠나겠다는 마음을 그 가슴에 묻고 있으면 안 돼. 이건 너의 본질만을 믿는 거야.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속일 생각하지 말고. 처음부터 안 된다는 생각은 접어. 알아들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