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 보내지 않겠어!”

부와 명예를 가진 영국 최고의 귀족 칼 에블라엠.
그가 바라는 건, 사랑스런 아내와 따뜻한 가족. 항상 외로워서 괴팍해지고 독단적인 남자의 뒷모습은 언제나 고독.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맹독은, 고독이었다.
고독…….
그리고 사랑.

“날 보내주세요! 난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

검은 머리카락, 검은 눈동자의 동양인 진사혜.
당당하게 사표 쓰고, 떠난 여행에서 파란 눈의 남자를 만났다.
파란 수염을 연상시키는 그는 독재자였다. 친절한 영국신사는 알고 보니 미치광이. 아내를 몇 명이나 갈아치운 남자. 가두고, 억지로 안고, 사랑을 강요한다.
포기하지 않아.
도망칠 거야.
칼 에블라엠에게서, 갇힌 성에서 나는 떠날 거야.
난 도망칠 거야!

마승리

처음 ‘칼의 노예’를 구상했을 땐, 그저 농담이었습니다. 친한 작가님과 함께 메신저를 하다가 ‘여주가 만날 도망만 치는 거야~ 그런데 여주가 번번이 잡히는 거지. 내용은 무겁지 않게 코믹으로.’라는 말이 계기가 되고 막말로 ‘필’ 받아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죠.
칼의 노예와 비슷한 소재는 대부분이 눈살을 찌푸리며 읽게 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는 그저 코믹한 부분을 많이 첨가하고 싶었습니다.
사실, 사혜와 같은 일을 당하면 그 자리에서 거품 물고 (-_-;;) 돌아버리겠지만.

로맨스 소설이기에.
남주와 여주의 만남과 사랑이기에. 읽는 순간만큼은 재밌고 아련한 이야기로 읽힐 수 있게 하고 싶은 마음에!
전혀 무겁지 않게(?) 진행을 해봤습니다. 부디 재밌게 읽어주시고, 많이 웃으셨으면 바랄 게 없겠습니다.

출간작으로 ‘그놈의 바람 잡아라.’가 있으며 로망띠끄/ 로맨틱 가든에서 활동 중.

연재작: 그놈의 바람 잡아라, 시즌 2. <그대 고민하지 말지어다!>
완결작: 장하다, 홍이!

▣ 줄거리

과장과의 사소한 말다툼으로 홧김에 회사에 사표를 제출한 사혜는 미래를 다시 계획할 생각에 영국으로 향한다.
비가 오는 날, 우산도 없이 길거리에 서 있던 그녀의 앞에 난데없이 등장한 잘생긴 영국남자 칼은 그녀에게 호의를 베풀며 자신의 집에서 머물라고 말한다. 간단한 회화밖에 되지 않는 그녀는 얼결에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 그의 집에서 머물게 되는데.
칼은 영국에서도 유명한 귀족으로, 막대한 재산과 스물여덟의 나이에 벌써 4번이나 부인을 갈아치운 경력으로 유명한, ‘푸른 수염’이라고 불리는 사내.
칼은 과거 어머니의 외도로 인한 충격으로 여자를 믿지 못하고 그의 돈을 보고 접근한 전 부인들은 모두 그에게 실망만 안긴 채 그에게 이혼당하고 만다.

그러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동양 여자 사혜에게 칼은 점차 호감을 느끼고, 반면 사혜는 친절하다고만 생각했던 칼이 사실은 부인을 네 번이나 갈아치운 경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경악한다.
이곳에서 나가겠다는 사혜의 말에 칼은 일주일만 머물라고 말하고 급기야 계속해서 탈출을 시도하는 사혜를 막기 위해 칼은 외딴 섬에 있는 성으로 사혜를 데리고 가는데…….

무인도의 고성에 갇힌 사혜는 의지의 한국인으로서 필사의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이 칼에게 덜미를 잡히고, 쫓고 쫓기는 과정에서 두 사람의 심리에 작은 변동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늘 외로움을 느끼는 칼은 사혜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사혜는 칼의 사랑을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을 듯 위태롭기만 한데…….


▣ 본문 중에서

5번째 아내니까.
심장이 떨어져 나가고 절망의 쓰나미가 몰려와 숨이 턱턱 막힌다. 지금 아내라고 한 게 분명하지? 사혜는 황급히 일어나 그와 거리를 최대한 벌리고 인상을 찌푸렸다.

“난 아니야. 당신은 내 남편이 아니야!”

손가락 끝이 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놀란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할근거리는 숨소리마저 고통스럽다.

“아내로 삼기로 했어.”
“난 한국인이야! 당신은 영국인이고!”
“문제 될 것 없어.”

칼의 목소리는 덤덤했고 홍차 향기 또한 그러했다.

“난 문제가 돼! 우리 부모, 내 형제는……, 아니 내가 문제라고! 내 마음.”
“마음?”
“내 마음!”

마음이라…….
칼은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잠시 멍청한 눈으로 그녀를 보다 피식 웃었다. 그런 게 뭐 중요하나 싶었다. 그가 아내를 택할 땐 마음으로 정하는 게 아니라 배경이나 외모를 보고 정하곤 했다. 물론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는 배경도 모르고, 생김새도 아름답지 않다.
그냥 원숭이 닮았다. 동양 원숭이. 혈기왕성하고 어디로 튈지 몰라서 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없다. 시선을 잘못 두면 아주 멀리 달아나 있어서 무조건 눈앞에 앉혀 감시해야 할 만큼. 그런데 그게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러니 곁에 두고 아내로 삼아야겠다. 평생 심심하지 않을 것도 같고, 그녀만큼은 정정당당할 것 같았다. 배신하지 않을 여자.

“기다리지. 네 마음이 열릴 때까지.”

* * *

칼은 파라솔 아래 누워 사혜의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눈을 감았다. 그리고 커다란 소라를 귀에 가져다 댔다. 파도소리가 난다.
쏴아, 쏴아, 먼 바다 소리…….

“파도 소리.”

칼이 사혜의 귀에 소라를 댔다.
그의 말대로 멀리서 파도치는 소리가 들린다.

“좋지?”
“네.”

사혜는 꾸욱 다물었던 입에 호선을 그리며 감상에 빠졌다. 지상 파라다이스 부럽지 않을 곳에서 낙원의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자유롭지 못한 마음과 육신으로 인해 낙원에 구름이 낀 것처럼 어둡다.
파란 눈의 남자는 자신만 아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
검은 눈의 여자는 자유를 갈망하며 도망칠 궁리만 하는 사람.
등을 맞대고 저마다 다른 곳을 보는 사람들.
사혜는 거칠어지는 바람 소리에 나뭇잎들이 나부끼는 걸 가만히 들으며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이렇게……, 이런 상태가 아니라면 지금의 피크닉은 최고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