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불만이 있는지 시종일관 무표정,
자기 할 말만 해 버리고 냉큼 사라져 버리는 센스,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탈 정도로 못 들은 척 연기의 대가. 선우신 선생님과 친해지기 위한 권현수의 프로젝트가 시작되다.

먹을 걸로 유혹해 보겠다며 커피를 사 왔지만 다른 사람 눈치 보다가 식은 커피 건네주고. 모처럼 정면으로 부딪쳐 인사를 했으나 입에 빵 부스러기 묻은 걸 지적당하고. 창피한 모습 좀 모른 척해 주면 안 되냐 구시렁대다 그 남자 선우신에게 딱 걸렸다.

그러나 권현수는 그와 손만 닿아도 찌릿찌릿,
심장은 콩닥콩닥, 얼굴은 화끈화끈.
이성 문제 해결사이자 예비 의사 권이수의 진단에 따르면 연애 초기 증상이라는데, 말이 되는 소리냐고!

선우신은 난공불락, 권현수는 사생결단.
쇼팽의 <발라드>와 함께 두 사람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뛴다.

김성희

무엇이든 예쁘고, 즐겁고, 재미있는 것이 좋은 사람.
글 쓰면서 스트레스를 받고,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

홈페이지 http://sweets.ohpy.com

출간작
「카푸치노」, 「언제나 둘이서」, 「레몬 캔디」, 「초콜릿」, 「운명의 힘」

<책내용>

선우신은 18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하고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주목 받던 천재였다. 그러나 청중은 감동시킬 수 있을망정 자신은 불감증에 걸린 듯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시작한 피아노라 도망치고만 싶었다. 그것을 정확하게 짚어 비난한 한 남자가 있었다.
그의 음악은 진짜가 아니라며, 그런 마음으로 할 거면 피아노를 그만두라고 말이다. 정곡을 찔린 그는 결국 무대를 떠났다.
피아노를 전부 버리고 싶었으나,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피아노밖에 없었다.
재즈 바를 전전하다 사촌 형수가 하는 피아노 학원으로 끌려와 강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곳에 새롭게 나타난 권현수 선생님은 정말 대책 없이 명랑하여 가끔은 말리고 싶었다.

음대 4학년인 권현수는 유학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피아노 강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듣게 된 쇼팽의 발라드 연주는 현수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어린 나이에도 그녀를 감동시켰던 그 연주와 지금의 음악은 너무도 닮아 있었다.

연주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하여 탐색에 들어간 현수는 그 사람이 또 다른 피아노 강사 선우신인 것을 알아내고는 그와 친해지기로 결심한다.

그는 시베리아 북풍보다 더 차가운 성격의 소유자라, 어디 빈 구석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운명의 장난인지, 농간인지. 꼭 현수가 삽질을 할 때마다 이 사람이 나타나 말을 건다.
예를 들면 채점하면서 만화영화 주제곡을 부른다든지, 아니면 핫도그 물고 있을 때라든지. 성숙하고 예쁜 모습만을 보여 주고 싶은데, 꼭 망가져 있을 때만 마주친다.

게다가 그와 손만 닿아도 전기 스파크가 난다. 심장은 뛰고, 얼굴은 붉어지고……. 혹시나 싶어 남동생을 손을 만져 봤는데 아무 느낌이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신은 화가 났다. 이 여자, 이름을 알려 줬는데도 자꾸 ‘저기요.’라고 부른다. 화가 나서, 뭐라고 부를까요라고 묻는 그녀에게 ‘사장님이요.’라고 대답해 줬다. 아주 근엄하게…….

“사장님이라 부르십시오.”
본래 명랑한 건지, 아니면 순진한 건지. 그 뒤부터 권현수 선생님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불렀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

“사장님이 좋아요. 피아노를 잘 치시니까요. 저의 라이벌이에요.”
선우신은 현수를 피하고 싶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열정을 가지고 있어서. 권현수는 신과 친하고 싶다.
너무나 예쁜 피아노를 곁에서 듣고 싶다.
그리고 두 사람은…….

<캐릭터 소개>

선우신 : 7살에 시작하여 국내 콩쿠르를 모두 석권하고 19살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화려한 테크닉을 가진 차세대 피아니스트로 모든 이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선우신.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무대에서 사라졌다. 음반 한 장 남기지 않고. 그는 무슨 이유로 피아노를 떠난 것일까?

권현수 : 서인 대학교 피아노과 4학년에 재학 중임. 어릴 적 엄마를 따라갔던 공연장에서 들은 쇼팽의 <발라드>가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쇼팽의 <발라드>를 너무 예쁘게 쳤던 오빠처럼, 아름다운 연주를 하는 것이 꿈이자 목표다. 좋아하는 것은 군것질. 취미는 싸움 걸기. 현재 목표는 함께 일하는 선우신 선생님과 친해져서 그의 피아노를 듣는 것이다. 근데 이 선생님 만날 나를 무시하고. 엉엉. 그렇다고 해서 기죽을 내가 아니다. 선우신 선생님이 열 번 찍어 안 넘어 가면 열한 번 찍자!

<본문 중에서>
“어이. 권현수 선생님.”
신이 허리를 숙이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현수는 정신이 들었다.
“에…… 헉! 사, 사장님!”

현수는 깜짝 놀라 신에게서 한 발짝 물러섰다. 단지 신의 얼굴을 대한 것뿐인데 멋대로 얼굴에 열이 오르고 심장이 무박자의 연주를 시작했다. 그 고동이 신에게 전해질 새라 현수는 슬쩍 한 발짝 더 물러섰다. 아니, 가능하면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싶었다.

“뭐지, 지금?”
“네, 네?”
“왜 또 슬금슬금 도망가요?”
“제가요? 제가? 언제?”

현수가 시치미를 떼며 오히려 의아하게 되묻자, 신은 짧은 한숨을 흘리면서 허리를 곧게 폈다.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지? 무슨 일 있었어요?”
“아, 아뇨.”

고개까지 휙휙 내저으며 부인했지만 신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가 빤히 바라다보자 현수는 결국 그의 시선을 슬그머니 피했다. 도저히 눈을 마주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사실 당장이라도 신에게 고백하고 싶었다. 좋아한다고. 당신이 좋아져 버렸다고. 하지만 현수는 조심스러웠다. 신의 옆에 혜련의 존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탓이었다. 선정도 말했지. 이 두 사람, 지나치게 친하다고. 더구나 신은 현수에게 그녀를 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한데…….”
신이 눈살을 찌푸린 채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는 건 현수 자신도 알고 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글쎄요? 전 하나도 안 이상한데……. 빨리 청소 끝내고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어요. 아, 배고파.”
“그렇군요.”
“네?”
“배가 고프다고요.”

신은 씨익 웃더니 현수에게서 대걸레를 빼앗아 갔다. 그리고 힘차게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다.

“청소 빨리 하고 밥 먹으러 가죠. 오늘 회식을 합시다. 사장님이 특별히 한턱낼 테니.”
“…….”
“메뉴는 뭐가 좋겠어요? 뭘 좋아하시죠?”

영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신은 잠시 손을 멈추고 현수를 돌아보았다. 현수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신을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권 선생님?”
“왜…… 왜 이렇게 잘해 주세요? 피하고 싶다고 했으면서……. 저보고 어떻게 하라고요. 이렇게 잘해 주시면, 전 어떡하라고요.”

현수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있는 것이 안쓰럽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지만, 신은 섣불리 거리를 좁히지도, 손을 내밀지도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그만큼 거리가 있었다.
신은 나직하게 말했다.

“딱히 잘해 준 것 없어요. 권 선생님이 그렇게 느꼈다면 오히려 내가 미안하군요. 난 의식하지 못했거든요.”
“…….”
“내가…… 잘해 준 겁니까?”
“……그러지 마세요.”

한참 끝에 현수의 입에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어쩐지 아까와는 다른, 단단해진 목소리였다.
신은 의아하게 되물었다.

“네? 무슨…….”
“사장님이…… 누구에게나 잘해 주시는 건 상관없지만 저한텐 이제 그러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요.”
“왜죠? 왜 권 선생님한테 잘하면 안 되는 겁니까?”
‘왜냐하면 제가 사장님께 특별하다고 착각하게 되어 버리니까요.’
현수는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