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타난 멀쩡한 남자가 자신을 사가란다. 그것도 5천 원에.
“저기 혹시 집이 하얀색으로 칠해진 건물 아니에요? 그것도 언덕 위에.”

지애는 미치지 않았냐는 질문을 흔히 쓰는 표현으로 바꾸어 물었다. 중세 시대의 노예매매시장도 아닌데 길거리에서 사람을 판매하려고 운을 뗀다?
올바른 정신 갖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차라리 호스트라는 쪽이 더 설득력 있어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호객행위가 설치는 밤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밑지는 장사는 아니라고 보는데. 단돈 5천 원에 이만한 머슴을 얻는다는 건 그야말로 옥상에서 떨어지는 만 원짜리를 줍는 일보다 더한 행운이지 않나?”

그렇게 장난처럼 시작된 인연.
지애는 그의 마음을 몇 번이고 확인하려 했다. 자신에게 다가온 것이 그 흔한 삼류잡지에서 지겹게 다뤄지는 사랑일 리 없었다.
하지만 석준에게는 서른 해를 기다려온 운명의 상대였다.
남들 눈에는 하찮게 보이는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여자라 해도,
부모에게 버림받고 지친 몸뚱어리 하나 기댈 곳 없는 가난한 존재라 해도 그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단 하나의 사랑이었다.

“열심히 사랑해줄게. 넌 지금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아도 좋으니까.”
그녀의 가슴을 녹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사랑을 품는 것뿐이었다.

“죽어서도 널 사랑할 내가 있겠지. 사랑일 수 없더라도 늘 곁에 있을 테니까.”

공은주

3월 26일 생. 덤덤한 A형.
영원히 독자로 남고 싶은 어설픈 몽상가.
좌초될 뻔한 뗏목을 뚝딱뚝딱 고쳐 다시 항해에 나섬.
열심히 노를 젓다 보면 언젠가는 능숙한 선장이 되어 있지 않을까?
검푸른 바다를 유영하고 싶은 간 큰 햇병아리.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질리도록 사랑한다면 어떨까?”

“그건 좀 슬플 것 같아요. 질리도록 사랑한 뒤에 남아 있는 두 사람은 행복할 것 같지 않거든요.”

“그렇지 않아, 지애야. 질리도록 사랑한 후에 남아 있는 것도 결국은 다른 형태의 사랑일 뿐이니까. 어쩌면 그보다 더 화려하고 짙은 사랑일 테지. 왜냐면 질릴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사람들은 영원히 식지 않을 뜨거운 가슴을 가지고 있거든.”

-본문 내용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