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꼭 맞는 사람을 만나 좋아하고 설레고 사랑하고
그래서 같이 밥 먹고 영화 보고 데이트하고
행복하다고 세상을 향해 큰소리로 환호할 수 있으면
그게 바로 사랑의 홈런!

홈런은커녕 어쩌다 이런 구름다리에 올라서게 됐는지.
어쩌다 이런 높다란 성 앞에서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지.

마음에 꼭 들면 용기를 내 신데렐라가 될 수도 있으리라 기대했는데,
역시 신데렐라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닌가 보다.

효송

오늘도 낭만에 밥 말아먹는 로맨티스트.

▣ 본문 중에서

세상은 볼투성이다. 쉽게 손을 내밀었다간 헛스윙 당하기 딱 좋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스트라이크에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스트라이크를 제대로 맞춰도 안타를 만들기 쉽지 않다는 데 있다. 잘 맞춰도 아웃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파울이 되고, 또 홈런이 될 것 같다가 아쉽게 펜스 앞에서 잡히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 한 방 홈런을 꿈꾸고, 오늘도 타석에 서서 그 꿈을 맞추기 위해 눈과 마음을 빛내고 있다. 좌우지간 볼에 손이 나가선 안 된다. 세상은 온통 볼투성이에 유인구투성이니까.
그런데 마음 아프게 사랑도 그렇다는 거다. 사랑도 오나가나 볼투성이다.

* * *

딱!
재차 함성이 솟았다. 구장을 가로지르는 백구의 모습이 분명 연타석 홈런이었고, 공은 공교롭게도 다시 유경이 앉아 있는 우익수 쪽으로 날아왔다.
유경은 조금 전 학습효과 탓에 공을 빤히 쳐다보며 또 옆으로 가겠지 했는데, 별안간 주위 사람이 일제히 엉덩이를 들며 하늘로 손이며 글러브며 잠자리채를 쳐드는 것이었다.
‘어머나!’
유경은 움찔하며 누가 홈런볼을 잡나 하고 고개를 들었고, 공은 바로 옆 누군가의 글러브에 척 잡히는가 싶더니 알까기를 하듯 튀어나와 유경의 이마 한가운데를 그대로 들이받았다.
퍽!
유경은 상체가 기울어지며 맥주 캔을 놓쳤다. 사람들은 유경의 이마를 맞고 튀어나간 공을 쫓느라 아래쪽으로 우르르 몰렸고,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는 그 고독한 별들의 삐악거림 속에서 유경은 한 남성의 다급한 목소리가 팔을 잡는 걸 느꼈다.
“괜찮아요?”
유경은 정신을 잃을까 말까 하다가 그냥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별과 병아리들은 잠시 더 주위를 맴돌았고, 홈런볼에 이마를 맞은 걸 축하라도 하듯 세상엔 생뚱맞은 환호성이 가득했다.

* * *

“장유경 씨.”
유경은 깜짝 놀랐다. 그냥 스쳐간 미스터리한 인간이라 정리했던 남자가 꿈만 같은 기억속에서 튀어나와 다시금 현실을 혼란스러운 빛깔로 채색하고 있었다.
“회사 일 잘 했어요?”
남자는 유경의 회사 쪽으로 시선을 보냈고, 유경은 소름이 확 끼치며 주춤 물러섰다.
“누, 누구세요?”
“벌써 잊었어요? 제 존재감이 그 정도밖에 안 됐나요? 전 유경 씨의 이마에 난 그 발그레한 자국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공에 맞고 쓰러지던 기억이 눈앞을 스치며 유경은 침을 꼴깍 삼켰다.
“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날 호프집에서 이야기해줬잖아요. 신문로 1가 SG종합상사 총무과에 근무하는 장유경. 시간 나면 한번 찾아오라고.”
“예에?”
눈부신 노을 속에서 유경의 두 눈이 동그래지고 말았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대체 처음 만난 남자한테 무슨 소리를 해댄 건지 어처구니가 없어 절로 입이 벌어지려는데, 문득 상글거리는 남자의 볼이 시선을 끌었다.
모텔에서 그 볼을 만진 말랑한 느낌이 손끝에 찌릿 흐르며 유경은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처음 만나 모텔까지 가 한 침대에서 자버리고 이름에다 일하는 곳까지 가르쳐주며 찾아오라고 했다니 대체 이 무슨 얼빠진 상황인지 황황하기 그지없었다.
‘미쳤어, 내가 미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