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덜 익은 풋사과와 같다.
그 시큼한 맛에 인상을 찌푸리게 되지만 또한 그 아릿한 맛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왜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거야, 난 오빠를 너무너무 사랑했는데. 정말로 사랑했는데. 지금도. 난 왜 오빠를 잊을 수 없는 걸까. 잊어버렸으면 훨씬 더 인생이 편했을 텐데.”

“네가 돌아오면 말하려고 했었어, 다시 시작하자고. 다시 돌아가자고.”

양복을 입고 있어도 그의 등은 여전히 넓었다. 이런 식으로 그를 쫓아갔던 적이 몇 번이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렇게 떠나갔을 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끝나버린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이아나

1978년 서울생
<내겐 너무 어린 그이>를 출판했다.

세월은 참 빠르다. 인천국제공항을 둘러보며 은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인천공항은 어딘지 모르게 LA공항을 닮았다. 김포공항 쪽이 훨씬 더 정이 갔는데. 하지만 그것은 김포공항과 그녀의 추억이 맞물려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포공항을 떠올리면 눈물을 지으며 헤어지는 사람들이 떠오르지만, 인천공항을 보면 그저 웃으며 해외 관광을 나가는 사람들과 세련된 부호들밖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이제는 한쪽 구석으로 밀려난 가엾은 김포공항. 짐을 끌고 나오며 그녀는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10년 만이었다. 자신이 영구귀국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살 생각이었는데. 하지만 조건이 좋았다. 회사도 유망한 곳이었고. 어차피 돌아올 거라면 괜찮은 곳에서 스카우트를 받고 들어오는 편이 좋겠지.

“피곤하네.”
1등석이라고 해도 비행기에서 열 시간 이상 앉아 있는 것은 피곤한 일이다. 뻣뻣한 팔다리를 쭉 펴고 그녀는 검색대를 통과한 다음 바깥으로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행을 기다리느라 문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한진개발에서는 분명히 누군가를 보낸다고 했었다.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으니 최소한 종이에 써서 들고 있기라도 하겠지.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팻말 하나 찾기도 힘들었다.
뒤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사람들 때문에 그녀는 짐가방을 끌고 간신히 바깥쪽까지 나왔다. 출구 근처를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녀를 맞이하러 온 사람을 찾기에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내서 막 번호를 누르는데 누군가가 그녀의 가방을 붙잡았다. 은성은 깜짝 놀라서 돌아보았다.

“What the hell…….”
그녀는 끝까지 말을 맺지 못했다. 짐가방을 잡고 있는 남자는 컸다. 하이힐을 신은 그녀보다도 거의 20㎝는 큰 것 같았다. 양복 아래의 어깨는 널찍하고, 깎은 듯한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머리는 깔끔하게 빗어 올렸고, 이마로는 두어 가닥만이 일부러 세심하게 내려놓은 듯 흘러 내려와 있다.

검은 두 눈이 그녀를 똑바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귀를 울렸다.

“오랜만이다.”

지독하게.
그를 만난 것이 11년 만인가? 아니, 12년 만인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너무나 오래됐다. 그는…….
변했다.

물론 그녀 역시 변했다. 하지만 마음속의 일부는 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를 보는 순간 가슴이 내려앉았으니까.

“오랜만이네.”
목소리가 떨리지 않는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은성은 눈을 재빨리 깜박이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날 알아본 거야? 나 꽤 변했다고 자부하고 있는데. 오빠도 꽤 변했고.”
“그런가.”
그는 낮게 중얼거리며 미소를 지었다. 입 끝에만 살짝 걸리는 미소였다. 그가 짐가방을 끌고 걸어가기 시작하자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고 가방을 붙잡았다.

“저기, 미안하지만 나 기다리는 사람이 있거든. 옛이야기라도 하고 싶은 거라면 자판기 커피라도 마시면서 할래?”
“너 진짜로 모르고 온 거야?”
“뭐가?”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가 양복 안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은성은 그것을 받아 들고 멍하니 쳐다보았다.

<한진개발 사장 민우진.>

“내가 너 마중 온 거야.”
농담이겠지. 그녀는 명함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빠네 회사는 재신건설 아니었어?”
“이건 자회사야.”
몰랐다. 정말로 몰랐다.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그렇진 않아. 알았다고 해도, 조건은 좋으니까. 왔을지도 몰라. 어차피 지나간 일이니까. 10년도 더 전에.

그가 몸을 돌려 걸어가기 시작했다. 양복을 입고 있어도 그의 등은 여전히 넓었다. 이런 식으로 그를 쫓아갔던 적이 몇 번이더라?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렇게 떠나갔을 때, 그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그렇게 끝나버린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다.

- 본문 내용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