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걱정한대요? 바보 같이…….
그런데 마음이 아파.
분명히 당신은 남인데, 내가 싫어하는 단점은 다 가진 사람인데
언제부턴가 당신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지금도.

난봉꾼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사채 빚에 허덕이는 준희.
비에 질퍽해진 길의 진흙을 뒤집어쓴 것과 같은 그녀의 발걸음은 강남의 바 ‘클럽 젠’으로 향한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만난
어울리지 않는 남자, 민준.
바람둥이에 한량.
준희가 제일 싫어하는 한심한 인간형.

상처를 떠안은 야누스 같은 그가 자꾸만 손을 내민다.

“나도 냉정한 놈이라면 냉정한 놈인데, 이상하게 넌 마음에 걸리더라. 지금껏 살면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그런데 넌 아냐.”

강한 코롱 향처럼 다가와 억지로 입술을 훔치고는
슬픈 눈빛으로 보다가 이내 장난기 가득한 말로 놀리며 웃는 종잡을 수 없는 그. 남자를 혐오하는 준희지만 그 사람만은 밀어내지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장밋빛 미래를 꿈꿔 보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다.
그녀는 잠시나마 유토피아에 젖었다.
그런데 정말 꿈을 꾸어도 되는 걸까?

진여진

로맨스는 변치않는 꿈. 오랜 꿈인 로맨스 소설을 쓸 수 있어 더는 바랄 게 없다.
출간작은 <불꽃의 페르소나> <안개의 거리>

“다시 원점이네요. 그렇죠?”
“그런다고 다시 널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과거의 일이야.”


“사실상 이렇게 당신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말할 일은 없었겠죠. 그런데도 난 당신을 생각했어요. 잊지 못했어요. 하다못해 그 후로 다른 남자들에게서도 당신의 모습을 찾았어요. 겉으로는 괜찮다 했지만, 난 나도 모르게 당신의 모습을 찾아 헤매고 있었어요. 막상 세상엔 없는 죽은 남자의 그림자를 말이죠.”

죽은 사람이라고 여겼다. 그래도 기적처럼 나타나주길 바랐다.
아니라고, 살아 있을 거라고. 꼭 돌아올 거라고.

“시간이 많이 흘렀어. 가깝게는 일 년 전 일도 멀게 느껴질 수 있는데. 과거의 감정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면 거짓이 아닐까? 아직도 그때의 감정이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나?”

10년 만에 나타나 한다는 말이 고작 그런 것이라니.
기나긴 기다림의 대가가 이런 것이라니.
준희는 절망했다. 무너졌다.

“그거 알아요? 애써 무시하고 애써 담담하게 지워버리려는 당신의 태도가 날 화나게 해요. 이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단 것처럼 구는 당신이 미워요. 말해 봐요, 내가 정말 당신에게 이런 존재밖에 안 되는 여자였나요?”

“그럼 정리하죠. 당신은 나름대로의 사정으로 날 떠났고, 난 결혼할 남자도 있으니까. 잘 살고 있으니 이제 다 잊으란 거죠? 지난 상처와 아픔쯤은 철없던 스무 살 일로 잊으란 건가요?”

그의 진심을 알 수 없었다. 무엇이 그를 변하게 만든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