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선두에 서서 월드 스타의 길을 걷고 있던 그의 앞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너무나도 평범한 여자, 진혜린.

5년간 마음의 벽을 높게 쌓고 그 뒤에 숨어 살던 그녀 앞에 자신을 한번 믿어 보라고 나타난 세계적인 배우, 강인우.

“인우 씨와 나, 절대 안 어울려요. 우리는 살고 있는 세계부터가 달라요. 당신 같은 사람이 나 좋다고 내 마음을 흔들어 놓으면, 나 정말 숨 막히고 어지러워 죽어요. 나 정말 자신 없어요.”
“뭐가 그렇게 복잡해요? 아무 생각하지 말고 진혜린 한 사람의 감정에만 충실하면 안 돼요? 혜린 씬 자신이 얼마나 아름답고 특별한 사람인지 몰라요. 난 그게 너무 화가 나요.”

아름다운 밴쿠버의 하늘 아래서
모든 것을 가진 남자와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여자의
잔잔한 사랑 이야기.

박혜성

로맨스 소설과 트렌디 드라마,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며, 만성 귀차니즘에 시달리고 있지만, 언제나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에 호기심을 느끼며 개척자 정신이 투철한 전형적인 O형. 살아온 인생의 절반을 외국에서 보내고, 한국에서는 통․번역사 및 스포츠마케터로 일하다가 캐나다로 이주, 이제까지 경험한 다양하고 독특한 직업과 도시들을 토대로 차기작 준비 중.

▣ 본문 중에서

“진혜린 씨, 우리 한번 사귀어 볼래요?”

혜린의 두 눈은 배로 커지고, 입술은 놀람으로 벌어졌다. 어지간히 놀란 모양이다. 생생했던 그녀의 얼굴은 금세 핏기가 사라지는 듯했고, 초롱초롱하던 그녀의 눈은 커지면서 심하게 떨렸다. 혜린은 제 귀를 의심했다. 이 남자가 지금 뭐라는 거야? 내가 요즘 일 때문에 피곤해서 환청이 들리나? 그런데 이런 환청이면 강도가 심각하다……. 그가 워낙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기 때문에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가 없다. 그냥 장난으로 하는 말인가? 많은 생각이 몇 초 만에 그녀의 뇌리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인우는 한참 동안 당황한 기색이 뚜렷한 혜린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 의지랑 상관없이 스캔들과 이성 관계 추측 기사가 수없이 많긴 했지만, 나 아무에게나 사귀자고 하는 그렇게 가벼운 사람 아니에요…….”
“…….”

혜린은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무심히 그를 바라봤다. 이건 아니다. 절대 안 된다. 부모님의 사고 이후 상훈과 끝내면서 그녀는 제 자신에게 다짐했었다.
부모님에게 사죄하는 뜻으로 제 자신이 용서가 될 때까지, 혹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면 평생을 혼자 하기로…….
그래서 지난 5년 동안 연애나 결혼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고, 이런 제 결심을 동생 혜인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가 자신에게 내리는 벌이었으니까…….
위험했다. 혜린의 머릿속에서 붉은색 경고등이 번쩍 들어왔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가 그 결심을 깨려고 한다. 이런 복잡한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그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첫눈에 반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처음부터 한 남자로서 한 여자에게 호감을 느낀 건 사실이에요. 나 혜린 씨에게 관심 많아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로 인해 주눅이 든다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어도, 내가 어떤 사람에 의해 하찮다고 느껴지고 주눅이 든 경우는 한 번도 없었는데, 혜린 씨가 날 주눅 들게 만들어요. 당신의 그 무언가가 나를 잡고 놓아주질 않고 있어요.”

더는 안 된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제멋대로 가슴이 요동을 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린은 조금 매정할 정도로 그의 마음을 딱 끊어 버리고 싶었다. 만일 훗날 그녀가 제 자신을 용서하게 된다면, 그땐 지금처럼 유명 배우가 아닌 평범한 사람과 조용하고 평범한 연애를 하고 싶었다.
강인우는 지금 보지 않아도 뻔한 힘들고 벅찬 연애를 하자고 제안하고 있었고, 혜린은 그런 사랑을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겁쟁이라고 해도 상관없었다. 이제까지 그녀는 그렇게 제 철칙대로 살아왔다.

잠시 동안 마음을 가다듬던 그녀가 심호흡을 한차례 하더니 간신히 말을 꺼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처음 만나서도 말한 것같이 난 강인우 씨가 부담스러워요. 난 평범하지 않은 당신이랑 엮여서 사람들 앞에 내 사생활이, 나란 사람의 모든 것이 이리저리 노출되는 거 원치 않아요. 그냥 조용히 살고 싶어요.”
“혜린 씬 내가 싫어요?”
“인우 씨가 좋은 사람이란 건 알지만 친구 이상으로 가까워지는 건 싫어요.”
“지금 그것을 묻는 게 아니잖아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대답 해봐요. 혜린 씨, 나 싫어해요?”

혜린은 인우의 눈을 피하지 않은 채 고개를 저었다. 머리는 절대 안 된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지만, 그가 싫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오히려 너무 좋았다. 좋아서 문제였다. 너무 좋아서 두려웠다. 그녀의 고개가 흔들리자 안심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가 말했다.

“그럼 아무 문제없어요. 우리 천천히 시작해요. 그냥 도망만 가지 말아요. 나 혜린 씨 마음 절대로 강요하지 않을게요. 혜린 씨가 확신이 안 서면 그냥 그대로 있기만 해요. 내가 혜린 씨에게 다가갈 테니. 단지 밀어내지만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