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준은 천천히 속에 담았던 것을 끄집어낼 준비를 했다.

“작가님, 혹시 현재 애인이나 애인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 ……없는데요.”
“저도 그렇습니다.”

승준은 잠시 말을 끊고 뜸을 들였다. 각오가 필요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말을 듣고 난 혜영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님이 이번 글을 쓰면서 알 수 없었던 것, 저랑 같이 배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조은애 지음

소심한 A형.
계획에 없던 외출을 좋아함.


출 간 작
「가을 하늘에 여우비」
「블라인드」
「꿈에 이백을 보다」등 다수

출 간 예 정 작
「숲의 주인」
「아라비안 나이트」

승준의 눈동자가 책장의 중간 즈음에 이르렀을 때 문득 멈춰섰다. 다른 것들과는 다르게 혼자서 겉면이 투명 비닐로 감싸여 있는 책 한권이 눈에 띄었다.

<우리말의 이해>

‘문법책인가? 하긴.’

그저 그렇게만 생각하며 승준은 아무 생각 없이 <우리말의 이해>를 뽑아들고 좌라락 넘겨보다가 아무곳이나 짚었다.

<늘씬한 여인의 사진이 남자들을 매혹시키는 것처럼, 부드럽고 황홀한 분위기는 여자를 매료시킨다. 만약 당신이 남자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룻밤동안 함께하고픈 일생일대의 모험을 계획하고 있다면 이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승준의 눈썹이 희한하게 꿈틀거렸다. 이건 어떤 식의 문법이란 말인가? 예제인가? 다음 구절까지 죽 읽어보았지만 본문은 책 표지에 붙어있는 <우리말의 이해>와는 점점 동떨어지고 있었다. 구구절절이 설명을 해놓은 것을 보면 뭔가를 이해시키려는 것은 분명한데, 또 하나 분명한 것은 그것이 국어인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었다.

“커피 다 됐어요.”

혜영의 부름이 들려왔다. 승준은 겉과 속이 다른 그 아리송한 책을 여전히 손에 들고 있다가 책장을 더욱 뒤로 넘겨보았다. 앞에 상세히 설명해 놓은 여러 가지들이 이제는 그림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림에 제목은 없었지만, 승준은 그것이 본문에 등장했던 사랑하는 연인들이 <하룻밤동안 함께하고픈 일생일대의 모험>을 그림으로 표현해 놓은 것임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었다.

“작가님.”

다시 식탁으로 다가온 승준은 시종일관 명경같이 말간 얼굴로 겹치지 않도록 들고 있었던 책의 삽화 부분을 혜영의 눈앞으로 펼쳐 보였다.

“이게 뭡니까?”




<작가 후기>

작가후기를 쓸 때면 언제나 무슨 얘기를 써야 할까 하고 망설이게 됩니다. 작업을 하고 있을 때는 마지막에 이런 얘기도 쓰고 저런 얘기도 써야지 하고 생각도 많이 나는데, 막상 작업을 끝마치고 후기를 써야 할 시간이 오면 그때 생각했던 것들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뒤죽박죽입니다.
그러나 끝맺으면서 생각해보니, 그녀의 지침서는 저에겐 참 오래 기억될 글인 것 같습니다. 물론 여태까지 냈던 글들 전부가 오래 기억에 남겠지만, 그녀의 지침서는 그중에서도 조금 더 특별한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여태까지 만들어냈던 많은 남녀 주인공들 중에, 이번만큼 저를 닮은 주인공들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글에 등장했던 승준과 혜정은 각각 제 성격의 일부를 그대로 떼어서 탄생하게 된 캐릭터들입니다. 저의 좋고 나쁜 면들이 그대로 들어가 있지요. 저는 혜정처럼 절박하기도 했고, 승준처럼 무신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애착이 가고, 끝난 지금은 시원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합니다. 작업을 하면서 혹여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주인공들을 너무 ‘나’같이 설정한 나머지 글 속에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지면상 모든 이야기를 다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이 글이 책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준 편집자님과 출판사 관계자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제 책을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수많은 책들 사이에서 <그녀의 지침서>를 선택해 주신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의 말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