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의 주인 선우재현
너는 내게 가장 비싼 제물이야.
너를 바쳐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찾겠어.
그러니까 너의 가녀림 따위로 내 눈을 가리지 마.
난 너의 1년을 샀어. 너 송채화란 여자의 전부를!

계약의 꽃 송채화
당신은, 나를 가질 수 없어요.
나는 당신과 계약을 했을 뿐, 팔지는 않았으니까.
나 송채화는 당신 안에 핀 계약의 꽃.
1년 뒤면 사라질 꽃.
그러니 나를 밟지 말아요.

윤혜인(尹惠人)

사랑하는 사람의 성으로 사람들에게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출간작]

장미의 사슬(전2권)/마리아 /8년 후에(전2권) /이어폰(달맞이봉 아이들 1) /월애(전2권, 달맞이봉 아이들 2) /당신의 식탁 /사랑이 선택하다(전2권) /당신만을 사랑해

“날 사랑해?”
“그래요.”

이제 와서 부정한들 입에서 이미 나온 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두 개 중 하나인 사랑한다는 채화 자신이 선택했으니 이제 남은 건 재현의 사랑하지 않는다 뿐이었다. 그 남은 말만 들으면 아마도 재현은 옆에 있으라는 말 따윈 다시 꺼내지 않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할 것도 없었고 이이 내뱉어진 말을 가지고 재현과 더 이상 왈가불가하고 싶지 않았다. 원목책상 위 거품이 다 빠져버린 생맥주가 자신의 처지처럼 보일 줄을 누가 알았을까.

“그랬군.”

재현은 그 하나 남은 ‘사랑하지 않는다.’의 선택을 말보다 더 잔인하게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너무도 건조한 한 마디 ‘그랬군.’을 끝으로 황망하다는 생각조치 하지 못할 정도인 채화를 남겨두고 집을 나가 버렸다.

이런 상황을 예측이라도 할 수 있는 여자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재현은 그녀가 숱하게 썼던 로맨스소설 속에 존재한 적 없는 남자였다.
최소한 사랑하지 않더라도 죽을 때까지 옆에 있으라고 윽박질렀던 남자가 비겁하게 등을 보이고 떠나다니.

채화 자신은 더 이상 벗길 껍질이 남아있지 않은 양파가 되었는데 그녀가 사랑한 남자는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자리를 뜬 것이다.

“하하……. 너무해…….”
다 식어버린 안주들. 포크 한 번 사용되지 않은 안주들이 사람이었으면 했다. 맛있든 없든 하나라도 먹어주지.
손길 한 번 닿지 않은 안주들과 거품 빠진 맥주. 채화는 아직 냉장고에 희망을 가지고 남아있는 생맥주가 든 페트병을 모두 꺼내가지고 책상위에 올려놨다.

“진짜 너무한다. 당신……. 왜 사랑 하냐고 묻기라도 하지. 사람 마음 바닥 치게 만들어놓고 도망이나 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