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제일 잘 나간다는 대학 병원,
거기서도 무려 성형외과 전문의가 된 지 석 달 만에 첩첩산중 시골 의료원으로 유배당한 그 여자, 장시원.

“……나중에 해도 괜찮겠지 싶어서 마음을 표현하는 걸 미루는 게 후회로 남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래서 순간을 사는 거예요.”



타고난 나른함과 적당한 무심함, 약간의 우유부단함 안에 만만치 않은 열정과 달콤함을 숨겨놓은 남자. 무려 연성건설 기획실장이라는 타이틀 대신 시골학교 현장소장의 이름표를 달고 스스로를 첩첩산중에 유배한 그 남자, 강주형.

“……나는 사랑을 잘 몰라요. 그런데 지금 이 마음이, 사랑이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남자는 무조건 얼굴이라는 그녀의 직업의식에 딱 맞춤한 이 남자, 그녀는 과연 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요?

산과 바다, 들판을 아우르는 총천연색 컨트리 러브 스토리. 유배지에서 생긴 일, 지금 시작합니다.

지 윤 서


사자자리, AB형, 커피홀릭.

따뜻하고 위트 있고,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꿈이 있음.
youaretoxic@gmail.com


作 :
[내겐 너무 악랄한 그녀]
[스콜, 마음으로 내리는 비]
[눈사람을 녹이는 방법]
[문득 왼쪽을 돌아보았을 때]

“빈이 이거 보여? 이게 뭘까요? 사탕이지? 이거 진짜로 맛있는 거야. 짠, 그럼 이건 뭘까요? 이건 우리 빈이 배가 아야 하지 않으려면 꼭 먹어야 하는 거란다. 우리 빈이 이것도 먹고 사탕도 먹을까?”
시원의 현란한 손놀림과 반짝이는 사탕 포장지에 눈이 팔린 수빈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뭡니까? 함부로 주면 안 되는…….”
“아버님! 제가 의사라지 않습니까.”
“정말 의사 맞아요? 자격증 있는 진짜 의사 말입니다. 의대생이나 전공의 말고요.”
“물론 제가 어려 보인다는 건 알지만 저도 나이는 먹을 만큼 먹었거든요. 팔팔 올림픽 개막식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답니다. 이제 됐나요?”
그래도 못 미더운 듯 주형의 눈이 한껏 가늘어졌다.
“이 아버님 참 의심 많으시네. 국가고시 통과한 성형외과 전문의가 맞다니까요!”
“흠흠, 아니 뭐…….”
“이거 구충제예요. 지금이 구충제 복용 권장 기간입니다.”
애초에 의사와 환자 보호자간 신뢰 형성에 문제를 일으킨 게 누군데 왜 자기가 더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 구충제라는 말을 듣고서야 주형이 슬며시 뒤로 물러섰다.
아무리 그래도 자기 입으로 어려보인다고 하다니, 좀 오버 아닌가? 주형이 입술 끝을 늘어뜨리며 미소를 짓는 순간 영호와 수빈에게 약과 사탕을 먹인 여자가 휙 돌아섰다. 이 여자, 설마 지금 내 머릿속을 읽은 건 아니겠지? 그런 여자는 이지헌 하나로도 충분히 벅차다.
“……왜, 왜 이러는 겁니까?”
험악한 표정으로 다가서는 시원을 피해 그가 뒤로 한 걸음 더 물러섰다.
“먹어요. 그쪽이 아무리 얼굴이 반반하기로서니 인간인 이상 회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을 테니까.”
얼결에 시원이 내민 약을 받아든 그가 당황스런 표정으로 눈을 끔뻑거렸다. 뭐, 반반? 회충? 자유?
“드시라니까요. 빨리요.”
주춤거리는 손을 억지로 끌어다가 그의 입 안에 약을 털어 넣은 시원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가보세요. 대충 아물었으니까 약만 잘 발라주면 이제 안 오셔도 돼요.”
“저기…….”
“어른은 사탕 안 드립니다. 가보시라니까요.”
영호와 수빈, 주형을 한꺼번에 진료실 밖으로 쫓아내더니 문이 쾅 닫혔다.
참 묘한 여자다. 잠들었을 때는 더없이 평화로운 얼굴인데 깨어있을 때는 한없이 호전적이니까. 전쟁과 평화, 한 사람 안에 들어 있는 두 가지 이미지의 간극이 너무 커서 어느 쪽이 진짜 그녀의 모습인지도 모호했다. 머리를 갸웃거리던 주형의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번졌다.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지만 재미있는 여자인 것만은 분명하다.